참세상

내가 찾는 노래

제목 3월 29일이 돌아옵니다.
번호 126 분류   조회/추천 322  /  186
글쓴이 정진호    
작성일 2000년 03월 21일 11시 07분 49초
다른분 들도 기억하고 있을텐데 혼자 유난 떠는 것 같아 매우 쑥스럽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는 3월 29일은 지난 96년 종로에서 시위도중 사망한 노수석 학우의 4주기 입니다.



그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학내집회와 학교앞 투쟁을 마치고 달려간 종로에는 이미 많은 학생들이 와 있었습니다.

긴장된 기다림의 순간이 지나고 동이 뜨고 내달리고...

제가 잡고 뛰는 96학번 새내기의 땀 흥건한 손이 그날따라 왜그리 부담스러웠던지요.



우린 웃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의 진압의 양상이란

"짜고 치는 것 아니냐?(?)"

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정말로 해산 위주의 진압이었기 때문에.



지랄탄의 매캐함이야 참을 수 있었습니다. 또 반갑기도 했고요.(이 때문에 최루탄에 중독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떠돌았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긴장해야 되는 날이었습니다.

비가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맨앞이었슴에도 불구하고 시야가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최루탄과 물이 결합되면 수포가 생기기때문에 3년째 거리를 다닌 저로서도 상황 판단이 어려웠습니다.

96학번 새내기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 그래도 비가 오니까 쏘지는 않을꺼야."



그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이 몰려왔습니다.

검은 아스팔트색 옷에 얼굴도 보기 힘든 방독면을 쓰고 사방에서 예고도 없이 그들이 튀어 나왔습니다. 소위 칙칙이를 쏘며.곤봉을 휘두르며.

돌아서 뛰었으나 이미 몇몇 백골은 제앞을 지나 뛰고 잇었습니다.

제 앞에 있던 여학생에게 뿌려지는 곤봉을 보았습니다.

꼬꾸라지는 학우들을 보았구요.

뒤쪽에 차량이 소개되어 있지 않아 대열은 정체되고 있었습니다.

그래 정말 그것이 토끼몰이 였습니다.

종묘에서 동대문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뛰어 도망가고. 2차 택이 명성이었던 것을 기억하고 그쪽으로 갔으나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울먹이는 후배를 겨우 달래고 술한잔 먹고 집에 가던 도중 버스에서

한 학생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노 수 석 '



갑자기 놀람과 당황함. 그리고 걷잡을수 없는 분노와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급하게 달려간 국립의료원에는 수많은 학생과 경찰들이 와 있었구요.

밤을 새고 들어가려는 전경과 밤새 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을 시작으로 무려 20일이 넘도록 반은 정신이 나간채로 거리를헤매었습니다.

노수석을 시작으로 진철원, 황혜인, 권희정, 오영권...

1주일이 멀다하고 학생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대자보에 속보가 속보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수석이에게 경찰은 사인불명. 그 다음은 심장마비라고 그들은 그렇게 쉽게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더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았고 겨우 수석이의 장례식을 치뤄낸 그날.

선배와 술을 마시다가 서러워서 엉엉 울었습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그였습니다.

얼굴도 몰랐고 이름도 몰랐습니다.

그냥 눈물이 났고 다른 열사들이 생각나고 화가 나고,내가 수석이에게 해줄수 있는것이 이것밖에 없는지 한심하기도 하고.

울음과 한숨끝에 소설처럼 다짐한 맹세.



'우리 진정 수석이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자.'



바로 그말이 제 대학 6년의 좌표가 되었습니다.



노래 가사처럼, 시처럼. 김영삼은 수석이 하나를 죽였지만 그뒤에 수만의 투사가 열심히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29일은 수석이의 4주기 입니다.

오늘도 보니까 여전히 학교에서는 교육재정 확보가 주된 구호이고, 등록금은 말도 안되게 오르고 있고, 김영삼 개새끼는 정치 한다고 그러더군요.



정말이지 열심히 살겁니다.

수석이와 수석이를 대신해 살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을 위해 말입니다.



정말 투쟁. 투쟁입니다.

모든 이들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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