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컴을 연결할 수 없는 관계로
집 근처에 있는 pc방에 어색하게 들어와서 한 자리를 차지해 앉았습니다.
지난 겨울방학에 자주 들었었는데...
학기중에는 또 듣지 못하다가 방학이 되어서
다시 들었습니다.
오늘은 "매향리로 농활가자" 편을 듣고 있는데...
zoo님은 제 한 두학번 선배님인 것 같아요.
농활병...
그렇게 이름붙이셨군요.
6월 말 7월초만 되면
차밖에 잠깐 잠깐 보이는 논만 보아도
다리를 걷어부치고 허리가 아프도록 피를 뽑고
그리고 건네주시는 막걸리를 감히 원샷을 하고
맨발로 함께 일나갔던 친구들과 마을회관으로 돌아오고 싶어지는
일어나서 애들을 깨우고
하루일과 다짐을 나누고
누가 보지 않아도
누구나 다 보는 듯
열심히 땀을 흘리고
마을 어른들을 찾아뵐때 하고픈 말을 정리하고
아이들과 분반활동을 하고
마을 잔치를 계획하고
농활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지 새벽 1~2시를 넘기도록
머리를 싸매고
가슴을 내 놓고 얘기하던
그 농활이
너무도 가고 싶어져
목이 빠지는 그 걸...
농활병이라 부를 수도 있구나...
그리고
그렇게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이렇게 존재하고 있구나. 그렇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농활을 5년동안 갔었어요.
그만큼 농활은 제게 참으로 소중한 것들을 가르쳐 주었던
저를 살아있게 했던
활동이었죠.
정말..
오랜만에
눈이 뜨거워졌습니다.
이한열 열사 장례식에서 울려퍼지던 문익환 목사님의 음성도...
아스팔트 농사를 아느냐구요?
^^ 알다마다요.
일년내내 씨 뿌리고~
뼈빠지게 거두어서...
(앗 여기가 가물가물 하네요)
남은 것은 쭉정이뿐...
....
zoo님, 혹시 쳥년농활대는 안 부르셨나요?
우린 그것도 많이 불렀었거든요.
청/ 년/ 농!활!대!
농활이 너무 가고 싶습니다.
근데... 학기중이라 대학 후배들을 따라갈 수도 없습니다.
근데.... 혹 갈 수 있더라도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제가 같을 까요?
그렇게 치열할 수 있을까요?
동지를 앞에 나의 삶은
이 노래를 어느 술자리에서건
제 노래라 말하며
불렀던 때가 있었는데..
그랬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기만인 것 같아
그 시절에 부끄러워지는 것 같아
...
차마 부르지 못하는 노래...
왜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쓰고 있는지...
다시 "내가 찾는 노래'에 들어가서
노래를 연결해 보아야 겠습니다.
그럼...
zoo 님의 마음들이 생생한 현장감으로 지금처럼 언제나 살아있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바라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