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내가 찾는 노래

제목 친구 이야기...
번호 306 분류   조회/추천 423  /  78
글쓴이 두꺼비    
작성일 2001년 01월 14일 03시 10분 37초
친구 이야기 하나 해드릴게요.

재일교포입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조총련계 학교만 줄곧 다녔습니다.
스스로 '조선민족'임을 늘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니고, 그것을 지킬려고 애쓰는 친구입니다.
그저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이다가 우연한 기회에 종군위안부 문제에 눈을
뜨게 되고 그래서 인권활동가가 되기로 이미 마음을 먹은 친구입니다.

사실 그 친구는 국제법상 무국적자입니다. 북한정부가 국적을 인정하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외국에 나갈 땐 여권 대신 '재입국허가서'라는
일본 정부에서 내 준 이상한 서류를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공항에서 출입국 스탬프를 받을 때 마다 공항 직원들은 여권도 아닌
이상한 서류를 이리 저리 쳐다 보고 한참 질문들을 해댄 후에야 스탬프를
찍어 준답니다.
대한민국 여권 맨 앞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지요.
'대한민국 국민인 이 여권 소지인이 아무 지장 없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필요한 모든 편의 및 보호를 베풀어 주실 것을 관계자
여러분께 요청합니다. 대한민국 외교통상부장관'
'*** 정권 반대'를 데모 나갈 때 마다 늘상 외쳐 왔지만,
사실 여권 앞에 적혀 있는 그 한 마디는 좀 마음 든든하기도 하답니다.
그 친구 '재입국허가서' 맨 앞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당신이 이 재입국허가서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일본국민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게 다입니다.
왜 그랬는 지 그걸 보고는 눈물이 핑 돌더라구요...

그 친구랑 꽤 친하게 지내지만, 가끔씩 불편할 때도 있답니다.
가끔씩 생각이 다를 때도 많고, 문화적으로는 이미 많이 다르다는 걸
느끼고... 말도 좀 다를 때가 많고...
그래도 그 친구는 남한 말을 배울려고 애쓴답니다.
책상 앞에는 남한 친구들 한테 배운 몇마디 남한 슬랭들을 써 붙여
놓았더군요. '왕타'라고 써 놓은 걸 보고 한참 웃었는데, 사실
좀 씁쓸해 지더군요.
스스로 '조선민족'으로 살고자 하는데, 그 친구 앞에선 말 못하지만,
사실 그 '조선민족'이 도대체 누구인지가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사실 그 친군 일본말이 더 편해 보일때도 많고...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는 나는 누군가 싶기도 하고...

그 친구 얼굴이 한동안 아주 어두웠습니다. 물어 보기도 힘들고
그랬는데,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된건...
그 친구의 친구하나가 며칠 전에 죽었답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모르는 일본 젊은이들 한테 맞아서...
일본에서, 그 친구가 조총련계 학교 교복인 '치미저고리'를 입고
다니다가, 지하철 역에서 떠밀려 떨어질 뻔 한 적도 허다했답니다.
국가보안법도 없고, 경찰 폭력도 없지만,
세상살이 하루하루를 그런 보이지 않는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한답니다...

그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한 구석엔 지독한 갑갑함이 남습니다.
깊게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그저, 통일, 민족... 그런 단어들이
혼란스럽게 머릿 속에서 뒤엉켜 맴돕니다.

그 친구도 '꽃다지'를 좋아한답니다. 검정색 자켓의 '꽃다지 1집' 테이프를
보여주면서, 슬며시 웃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전화카드 한장', '민들레처럼'을 좋아 한다구요...
그 친구랑 같이 듣고 싶어서 인터넷을 한참 뒤져 내가 자주 듣던
노래들을 다운로드 시켜 놓았는데, 같이 들을 기회를 잘 못 내겠네요.
내가 좋아하던 그런 노래들을 들려 주면, 그 친구는 또 어떤 표정을 지을지...

헷갈립니다. 통일운동이 뭔지...
갑작스런 통일 이후에 생겨나게 될지도 모르는 엄청난 차별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복잡한 경제적, 정치적 문제는 접어 두고 서라도,
사람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생겨날 수많은 문제들...
오해, 불신, 차별... 남한 사람들이 중국에 가서 조선족들과 살면서
생긴 수많은 문제들을 들으면 짐작이 갈만도 합니다.
자본주의에 찌들릴 대로 찌든 남한 사람들과
아직 순수한 마음인 조선족들, 북한 주민들,
더 복잡한 건, 자본주의적 삶에 재빠르게 편승하려고 하는, 또는
그렇게 강요당하는 다른 한 부류의 중국 조선족들...
그리고 다시 그들에 대한 남한사람들의 불신...
그리고 여전히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만 하는 조총련계 재일교포들,
그래서 일본국적을 거부하는 무국적 교포들,
하지만, 또 그것을 이미 포기하고 일본국적을 받아 낸 교포들,
그렇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그들에 대한 일본정부의 '신일본인'이라는
이름의 차별

막연하게 이상적으로만 생각해 왔던 통일의 문제는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에 가로 막혀 있다는...
근데 요즘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조국'이란 노래를 가끔 듣습니다.
학교 다닐땐 잘 알지도 못했던 노래였는데...
그냥 복잡했던 생각들을 잠시 잊고 싶어서...

주님께서 그 노래를 들려 주신담 그 친구와 같이 듣고도 싶은데,
잘 모르겠네요... (참, 그러고 보니 주님?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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