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벗들을 믿는다
정진헌
나의 많은 벗들은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서른도 다 지나 아이도 낳고 팔자 드센 놈은 이혼도 하고
회오리 폭탄주에 주식 시세 안주 삼으며
제테크와 벤처 창업을 고민한다
리포트와 시험보다 가두투쟁이 더 정당했던
그런 시대의 친구들이다
지랄탄 껍데기를 툭툭 차며 날마다 비장해지던
그런 시대의 친구들이다
선배로서 우리는 얼마나 모범적이고 신화적이었나
후배로서 우리는 얼마나 투쟁적이고 기특하였나
그런 시대의 친구들이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갔다
허나 그 누가 동지의 손에 나를 맡기던 숱한 밤을 박제하겠는가
매운 연기 가득하던 교정의 북소리를 잊을 수 있겠는가
하여 나는 믿기로 한다
조국이니 민족이니 그런 가창한 단어를 조금씩 잊어가고 있지만
나는 나의 벗들을 믿기로 한다
나는 나의 벗들이
아내 위에 군림하지 않고 남편에게 종! 속되지 않으며
고향과 출신 학교를 출세의 발판으로 삼지 않을 것을 믿는다
나는 나의 벗들이
노동 이외의 댓가에 눈길 주지 않으며
자신과 다른 생각을 존중하고 이해하되
비판과 토론에 적극적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내 안에 숨어서 나를 조정하는 분단 파시즘으로부터
나를 끊임없이 자유롭게 하는 일상의 투쟁
아, 그렇게 나의 벗들은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80년대를 전설로 만들지 않고 20대를 추억 속에 가두지 않으며
뜨거운 청춘의 심장 그대로 역사 앞에 당당한
그런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어른이 되어 가는 나의 벗들을 믿는다
나는 그런 나의 벗들이 바꾸어 갈 조국의 운명 또한 굳건하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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