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세
임채희
아직도 어떤 나라들에선
혁명세를 받는다는군요
참 신기하지요
정말 머언 나라 이야기 같아요
하지만 우리도 한때는 받았던 기억이 나요
가까이만 해도
팔십년대와 구십년대초
그 치열하던 현장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혁명할 때
너 나 없이 혁명세를 냈지요
어떨 땐 자진해서
어떨 땐 반 강제로
좋은 세상 만드는데
모두 혁명세를 냈지요
그러나 지금
얼마 지나지 않은 세월 사이에
팔십년대와 구십년대초 지나
혁명의 역사는 막을 내린 것 같아 보였지요
아 그많던 전사들은
모두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요
이제는 자신의 일신을 위하여
아니면 세상이 많이 변해서
좀 안전하고 편한 시민운동이나
합법 정당에 헌신하기 위하여
혁명을 버린 걸까요
얼마전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을 무색케
아주 생색내기 개정만 한다는데
이젠 그것마저 하지 않겠다는데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직도 이땅에
온천지 썩은 냄새 피냄새 진동하는 이 땅에
불만세력 체제전복세력
아직도 무수히 많아서
너무나 걱정돼 그런 것은 아닐까요
아직도 혁명의 두려움에 떠는
그런 세력이 이 땅에
권력의 주변에 가득하기 때문 아닐까요
한번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세요
무엇이 얼마나 변했는지 자세히 보세요
노동자가 얼마나 변했습니까
농민이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도시에 허천나게 널려있는
빈민의 가난은 어떠합니까
생각 가지고 사는 사람들한테
얼마나 더 자유가 주어졌습니까
이제 혁명이 다 끝났다고요
당신의 생활이나 생각이
혹시 변한 건 아닐까요
혹시 한대 당신이 추구한 혁명
그것은 젊음의 치기였나요
자신의 내면과 민중의 생활을 보세요
우리의 처지는 어떤지도요
아직도 저와 같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셨나요
아직도 이 땅에서
혁명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셨나요
세월따라 사는 게 이치인데
그 이치가 잘못되었나요
당신같은 불평불만하는 자들은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에나 있다구요
혁명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고
그렇게 몰아 부치면 되나요
제가 비정상적이라고 하면 되나요
그러면 당신은 정상적인가요
이 세상 어느 한 부분
온전한 데가 있습니까
우리가 삶이 이전보다
나아진 게 있습니까
더 열악해졌다곤 생각지 않으세요
비록 당신이 혁명에 더 이상
관심이 없을지라도
현실의 변화에 대해선
아직도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겠죠
우리 남은 사람은 다시 시작합니다
세상의 가장 쓰라린 맛을 본 사람들
아직도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 땅의 노동자 농민
빈민과 청년학생
혁명에 동의하는 사람들
이제부터 다시
당신은 혁명세를 내세요
나라를 바로 세우고
세상을 정의로 일으키고
민중의 고난에 동참하는 뜻으로
이제부터 혁명세를 내세요
조금은 편히 사는 당신이
우리의 자손들의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고 생각하시고
반드시 혁명세를 내세요
그리하면 세월이 흐른 뒤에
당신의 후손들이 당신을 기억하리라
우리의 혁명이 완수되는 날에
필자: 1960년 생. 전남 승주 생. 시집으로 <나는 누구인가>(1999년 간행)가 있음. 문학동인 <다솜과 혜윰> 대표. 오랫동안 러시아 문학연구를 해옴. 현재 대학강사로 일하고 있고,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활동 중.
..............[삶이 보이는 창] 2000년 6.7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