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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두 추석 잘보냈지요, <오월의 노래>에 관한 추측 - 퍼온글
번호 450 분류   조회/추천 1024  /  23
글쓴이 不二    
작성일 2001년 10월 07일 02시 33분 57초
링크 첨부   -사랑의추억.mp3(0 Byte)
추석때 들렀더니 zoo님께서 "무심한 사람" 이라며 글이있더니
오늘에 또 들러보니 아직 글쓰기를 시도한 사람이 한분도 없내요
모두가 바쁜가 싶어 좀 덜바쁜 저가 많이 늦어지만 인사만 하고 갑니다.

zoo 님과 모든 분들 추석잘보냈지요??.

그리고 범능스님의 홈페이지에서 아래의 글이있어 여기를 찿으시는 분들이 한번 보아 볼만도 해서 퍼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래에 언급되어있는 박인희씨의 <사랑의 추억> MP3를 힘들게 찾아 첨부하오니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오월의 노래>에 관한 추측 - 이세길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피 /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뿐 너의 젖가슴 /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가슴에 붉은피 솟네…. 이 노래는 <님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한 전선에서 빠질 수 없는 불후의 명곡이었다. 움츠린 대중의 가슴을 열어제치고 대오를 함께 하며 적들의 바리케이드를 넘어서며 목이 터져라 불렀던 노래들이었다. 특히 <오월의 노래>는 학살의 리얼리티를 가감 없이 전달하고 있는 가사의 선명함이 너무나 '민중적'이어서 함부로(?) 따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 노래가 80년 5월 이후 이런저런 시위 현장에서 급속히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아마도 가사가 담고 있는 명료한 의미와 쉬운 멜로디 탓이었을 것이다. 민중가수 범능스님의 회고에 따르면, 82년 어름에 이 노래를 처음 들었고, 당시 대학가를 중심으로 급속히 대중 속으로 퍼져 나갔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선된 가사와 쉽고도 선동적인 멜로디는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당시에 이 노래의 출처를 두고 말들이 많았는데, 80년대 중반이었을까? 오창규 당시 MBC 광주방송 아나운서가 자신의 프로에서 5월 18일을 맞아 이 노래의 원곡을 들려주며 우회적으로 <오월의 노래>를 상기시키던 기억이 내게 남아 있다. 오월 그 날을 맞아 방송을 통해 <오월의 노래> 원곡을 들으며 떨리는 가슴을 짓누르던 기억과 함께 뛰어난 선곡 능력을 가진 음악가가 대체 누굴까 적이 궁금해 했었다.

알려진 대로 <오월의 노래> 원곡은 등으로 유명한 프랑스 샹송가수 미쉘 뽈나레프 Michel Polnareff의 라는 노래였다. 제목이 <어느 할머니의 죽음>이라 번역되어 소개되던 그 노래는 샹송 특유의 뛰어난 서정성 때문에 당시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오월의 상흔을 <오월의 노래>와는 또 다른 의미로 흔들어 놓곤 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거센 행진곡풍의 <오월의 노래>와 뽈나레프의 서정성 짙은 그 노래가 분위기나 흐름이 상당히 편차가 있어 아마도 대단한 능력을 가진 이름 모를 뮤지션이 우리 곁에 몰래 '암약'하고 있나 보다고 최근까지도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도 작사자는 물론 편곡자가 여전히 오리무중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갖고 있던 묵은 의문에 답을 주는 노래를 최근에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목마와 숙녀>, <끝이 없는 길>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박인희가 1975년 6월에 뽈나레프의 그 노래를 <사랑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개사 편곡해 부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수리나무에 등을 기대어 앉아서/그대가 불러주던 고운 노래에 귀 기울인다/이제는 다시 돌아올 길 없는/사랑의 추억이어라…".

가사며 제목도 그렇고, 곡 전체의 분위기는 뽈나레프의 그것과 상당히 다르게 들렸다. 무엇보다도 박인희의 <사랑의 추억>은 우리가 익히 알고 목이 터져라 부르던 <오월의 노래> 바로 그것이었다. 가사만 바꾼, 이름하여 '노가바'의 원조격이 바로 그 노래였다. 누군지 모르지만, 학살의 피냄새가 채 가시지 않는 금남로 거리를 고통 속에 거닐며 가사를 생각하고 자신이 알고 있던 박인희의 <사랑의 추억>을 다듬어 한국(민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곡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뽈나레프-박인희-익명의 편곡자'로 이어지는 한 노래의 변천과정은 원 가사의 내용과 작 편곡자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서로 수미상관하면서 노래의 위대한 힘을 국경을 넘어 보여준 셈이었다. 이제는 다시 그런 노래를 탄생시켜서는 안된다는 다짐과 함께 박인희 버전의 가사처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 마음 한 뜻으로 위로하고 아껴주던" 따뜻했던 인간들의 세상이 오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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