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씨가 먼지를 털어내어 들려준
오래된 음반들의 노래 잘들었답니다.
먼저 오래전 신청곡을
기억하고(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들려준
박은옥의 <바람>, 고마와요!
이번 노래들에서
역시 가장 많은 느낌과 상념을 가져다 주는 건
김민기의 첫 음반에 실린 노래들이군요.
요즘, 1993년에 나온 김민기의 4장짜리 음반을
즐겨 듣고 있는데,
같은 노래라도 느낌이 참 다른 것 같아요.
93년 음반의 노래들이 거의 대부분
기타 반주 하나에만 의지한 차분한 목소리들이라면,
오늘 들은 노래들은 무언가
그가 말하고 싶은 바가, 그 욕구가 강하게 느껴지는,
어떤 힘이 느껴집니다.
80년대 후반 김민기의 노래가 해금되고 나서
그의 첫음반이 재빨리 복각되어 나왔었죠.
그런데 그게 당사자의 동의도 받지 않은데다가
당시까지도 음반 끝에 건전가요 한곡 씩을 껴넣어야 했던바
<아, 대한민국>이 떡하니 들어있지 않았겠어요.
그러니 김민기씨가 열받을건 뻔한 일,
결국 소송을 해서 음반을 판매할 수 없게 만들었었죠, 아마.
하지만 저에겐,
저작권이야 어찌되었건,
<아, 대한민국>이 들어있건 어쩌건,
그의 노래를 그의 목소리로 듣는다는데야....
불법(?) 복각음반이라도 가뭄의 단비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냉큼 사 두었었는데,
누구를 빌려주었는지 어쨌는지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네요.
한대수의 <고무신>을 처음 들은 것도
역시 불법음반을 통해서군요^^
당시 길거리에선 대중가수들의 음반들만
불법으로 복제해서 팔았던 것이 아니라,
<금지곡 모음>이란 제목을 붙인 테잎들도 팔았었죠.
제 친한친구가 사가지고 있던 그 <금지곡 모음>테잎엔
주로 김민기의 노래들이 들어있었는데
그 B면 마지막에 부록처럼 한대수의 노래가 두 곡 끼어있었으니
그게 바로 <고무신>과 연주곡 <여치의 죽음>이었습니다.
당시에도(그리고 지금도) 한대수의 첫 음반 <멀고먼 길>은
어렵게나마 레코드가게에서 구할 수가 있었지만
음반 <고무신>은 구할 수가 없던 때였죠.
그 친구 이야기하니까 떠오르는 건데,
당시 중학생이었던 그친구나 나나 한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만해도 민중문화-대중문화, 민족문화-외국문화의
대립구도가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던 때였죠.
그 친군 국민학교 때부터 팝송을 좋아해서
그때까지만 모은 팝송 테잎만도 서랍 하나를 빼곡히 채우고
넘칠 정도였는데,
선생님의 대중문화, 외국문화 비판에 영향을 받은 친구는
그 후 오랬동안 팝송과는 멀어졌었고,
또 대학에 가서는 노래패 활동을 했었죠.
하지만 그러한 대립구도가 허물어지고,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일상을 지배하게된 90년대를 지나며
어느날 그 친군 이런 말을 했었죠.
"당시의 선생님의 영향에 팝송을 멀리했던 몇년 동안의
공백이 내 문화적 토양에 많은 손해를 가져왔다"고요.
그 이야길 듣고 제가 고개를 끄덕였는지,
아니면 찹찹해 했는지는 기억나질 않습니다만,
어려서부터 클레식은 물론 팝송도 변변히 들은게 없었던
저에게는 70-80년대 초기 노래운동의 노래들이
그나마 내 밑바탕에 깔린 유일한 문화적,정서적 자산인 셈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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