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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bing5님! 고맙구먼유^부탁하나 더합시다~
번호 260 분류   조회/추천 1985  /  37
글쓴이 이슈크라    
작성일 2001년 05월 05일 05시 54분 18초
bing5님 넘 고마워요~ 그렇게까지 소상하게 애를 쓰주시다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염치없는일인지 모르겠지만 이참에 부탁하나 더할까요? Swingle singers의 Ciao Bella Ciao -챠오 벨라 챠오-를 들을려고 나름대로 애를 씃으나 ...... 대저 어느 싸이트에 매복중인지 알길이 없군요.... 행여 아신다면 알려주시옵기를 앙망합니다~ bing5님이 바쁘시면 다른님들의 지원사격도 부탁드리고요...^^ 많은이들이 알고계시겠지만 아직도 모르는님들이 계실것도같아 인터내셔날가를 포함한 민중가요을 들을수 있는 튼실한 싸이트가 있어 하나 소개해봅니다! 클릭!---->www.nodong.com/ 들어가셔서 오른쪽에있는 민중가요듣기를 클릭하시면 민중가요에 대한 갈증은 거의 해갈이 될듯도 합니다. 없는곡이 거의 없으니..... 인터내셔날가도 8개의 버젼으로 망라되어있구요..... 아래의 글은 mbc 싸이트에 게재되어있든 손관승특파원의 유럽문화산책5입니다. 챠오 벨라 챠오란 노래를 찾다가 눈에 띄어서 올려봅니다. 차오 벨라 차오’혹은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그날 체코 프라하의 하늘은 온종일 잿빛이었다. IMF 총회가 열리던 컨퍼런스홀은 시위대들에 둘러싸여 출입이 통제된다는 안내 방송이 긴박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국제 경제보다는 시위 취재에 더 익숙한 사회부 출신 특파원에겐 붉은 카펫 위의 회담장이 끌어당기는 구심력보다는 오히려 자갈과 곤봉이 교차되고 있는 바깥 현장의 원심력이 더 강하게 끌어당겼다. 총회 주최측이 안전을 이유로 아무리 엄한 통제를 한다고 해도 그 ‘현장’을 확인하고 싶다는 욕망만큼은 쉽게 제지할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펑펑 쏘아대는 매캐한 최루탄 가스, 무시무시한 셰퍼드를 앞세운 갑옷 차림의 경찰 진압대, 그리고 무수히 날아오는 자갈과 돌덩어리. 그것은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단지 무대를 프라하로 옮겨놓았을 뿐 자주 접하던 장면이었다. 서울보다 훨씬 강도가 약한 최루탄 가스의 독성이 오히려 싱거울 뿐이었다. 갑자기 주위가 시끄러워지더니 청년 한 명이 상의가 거의 찢겨진 상태로 두 팔을 뒤로 억세게 묶인 채 ‘사복조’에 의해 연행되어 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가 그 음악을 들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시위대와 진압 경찰 사이에 잠시 소강 상태가 흐를 무렵, 어디선가 귀에 익은 음악이 시위대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스타마티나 미 손 알자토(Stamattina mi son alzato) 오 벨라 차오, 벨라 차오(O bella ciao, bella ciao) 벨라 차오, 차오, 차오(Bella ciao, ciao, ciao)….’ “아! 그 노래∼.” 입에서 가볍게 탄성 비슷한 것이 흘러나왔다. 분명 그 노래는 ‘차오 벨라 차오’였다. 우수와 낭만을 흠뻑 담은 멜로디와 함께 바로 그 노래가 IMF 반대 시위대들의 입에서 합창되고 있었다. 70년대 말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에게 김민기와 양희은의 ‘아침이슬’이 친숙하다면, 그리고 386세대들에게 ‘광야에서’가 공감대를 이룬다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난 뒤 본격적으로 등장한 동구권 시위대들에겐 ‘차오 벨라 차오’가 어느덧 대표적인 운동권 노래로 자리잡은 것이다. 내가 그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수년 전 로마의 한 허름한 식당에서였다. 서정적인 멜로디에 반복되는 ‘차오 벨라 차오’라는 가사에다 따라 부르기 쉬운 까닭에 뜻도 모른 채 곧장 음반 가게로 향했다. 여행길에서 쇼핑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나이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그 도시만의 향기와 체취가 흠뻑 담긴 음반 한 장씩 모으는 것인데, ‘차오 벨라 차오’는 바로 그때 산 음반이었다. ‘차오’란 잘 알려져있다시피, 스파게티와 피자와 함께 이탈리아를 세상에 알린 대표적인 상징이다. 앞의 두 가지가 음식이라면 ‘차오’는 안녕이란 뜻의 이탈리아어, 아니 더 나아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유럽의 인사말이 된 지 오래다. 시간이 지나 아카펠라로 유명한 ‘스윙글싱어즈’의 음반에서 더욱 친숙하게 되었지만, 이 노래의 참뜻을 알게 된 것은 독일의 한 신문에 실렸던 이탈리아 빨치산과 그에 얽힌 사연을 담은 기사를 통해서였다. 가사의 뜻은 이러했다. ‘이 아침 나는 일어나 / 오 내 사랑 안녕, 안녕 / 내 사랑 안녕, 안녕, 안녕 / 이 아침 나는 일어나 침략하는 적을 맞으러 가야한다네 / 오 빨치산이 나를 멀리 데려가네 / … / 내 사랑 안녕, 안녕, 안녕 / 내가 빨치산과 함께 죽거든 / 그대 나를 묻어주오 / 아름다운 꽃 그늘이 진 / 산악지대에 그대 나를 묻어주오 / ….’ 서정적인 멜로디와 달리 노랫말은 이탈리아의 쓰라린 역사와 비감 어린 사연이 철철 묻어나는 슬픈 노래였던 것이다. 내일이면 죽을 운명의 빨치산 청년이 사랑하는 애인을 뒤로하고 부르는 노래. 멀리 프라하에서 이 노래를 듣는 한국 기자의 감정은 좀 묘했다. 유신과 10·26, 12·12, 5·17 등 격동의 시대를 대학 때 보낸 뒤, 기자 초년병 시절을 최루탄으로 점철된 현장에서 맞아야 했고, 더 나아가 돌팔매를 피해 언론사의 차량에서 회사 로고를 떼고 다니지 않으면 안 되었던 슬픈 운명을 가졌던 나와 동시대의 기자들에겐 정말이지 묘한 감정이 샘솟을 수밖에 없었다. 핸드폰과 노트북도 없던 시절이어서 서로 먼저 전화통을 붙잡고 1보를 먼저 부르던 시절이었지만, 그때는 ‘적’이 분명하던 시절이었다. 돌팔매를 맞으면서도 어쩌면 핑계도 그만큼 쉬웠는지 모른다. 진압 경찰에 끌려가는 이름 모를 유럽의 NGO 시위대 청년과 그의 등 뒤에서 들리는 ‘차오 벨라 차오’란 노래는 실로 많은 질문을 던졌다. 프라하의 봄을 상징한다는 바츨라프광장에서 벌어진 세계화 반대 극렬 시위란 역설은 과연 뭘 의미한단 말인가. 밀란 쿤데라를 잉태한 블타바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던 경찰과 시위대 청년들, 도대체 우리에게 글로벌라이제이션은 무엇이고, IMF는 어떤 존재란 말인가. 우리에게 앤티(anti)는 진정 막을 내렸는가. 매캐한 최루탄 연기 사이로 나는 4·19 출신 시인 김광규의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떠올렸다. ‘4·19가 나던 해 세밑 /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 하얀 입김을 뿜으며 / 열띤 토론을 벌였다 …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 시인은 시간을 건너뛰어 이렇게 힐난하고 있다. ‘…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 넥타이를 메고 다시 모였다 / 회비를 만 원씩 걷고 /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 …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 ….’ 그렇다 어느덧 나와 내 친구들은 노래를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시위대에 의해 자정 가까이 되어서야 회담장 건물을 나올 수 있었던 나는 아침 뉴스용 ‘프라하의 IMF 반대 시위’기사와 리포트를 서둘러 서울로 송고한 뒤 블타바강에서 안주 없는 필츠너맥주로 목을 축여가며 밤늦도록 그 노래를 읊조렸다. ‘스타마티나 미 손 알자토 / 오 벨라 차오, 벨라 차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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