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처음 들어와봤는데 참 좋네요.
(아부 아님.)
좋은 것 중에 하나는, 다른 인터넷 방송에는 좋지도 않은
오프닝멘트가 앞에 잔뜩 있어서 정작 듣고 싶은 노래는 언제
나오나 싶곤 했는데(몇 군데 들어본 건 아니지만), 무명씨님은
바로 노래를 틀어주더라고요. 물론 중간중간에 하실 말은
다 하시는 것 같지만. 그 내용들도 좋았고.
처음부터 게시물을 들여다보았는데, 거시기님과 소피아님이 둘이
도배한다는 말이 있던데, 좀더 도배해주시면 좋겠는걸요.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재미있고 또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저는 사실 음악, 노래 이런 거에 문외한인데요,
무식하면 또 용감해질 수 있다지요. 하하.
한대수 이야그가 여러번 나오던데, 마침 <오늘의책> 99년 12월호(7호)
에 한대수 자서전 평이 실렸더군요. 이 평을 쓴 분을 섭외(?)할 수
있다면, 그 분이 한대수 스페셜을 한번 틀어주면 어뜰까여?
그거 옮겨와봤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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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삶(BOOK 5) [235/204]
제 목: [오책7호] <물좀 주소>, 한대수
올린이: 오늘의책(tsbook) 2000.01.14 23:29:58 조회: 9
* 이 글은 월간 <오늘의책> 7호 (1999, 12)에 실린 글입니다.
<그를 기억한다> (3)
외로운 문화적 혼혈아
<물좀주소 목마르요>, 한대수
"바깥으로 내려다 보이는 구름은 포근하고 부드러웠다. 10년 만에
어머니와 조국을 다시 보게 된 설레임과 희망을 감싸주듯이, 1968년
봄, 노스웨스트 항공사의 비행기가 동해를 싸안으며 서울로 날아가고
있었다"
한대수 자서전 <물좀주소 목마르요>를 시작하는 이 몇 줄의 문장,
그것은 곧 한국 포크음악의 출생을 알려주는 역사적 진술에 다름 아
니다. 이제 갓 스물이 된 청년 한대수의 귀국에서 한국의 포크음악
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예를들면 이렇게,
"어느 날 밤 김민기와 내가 잔뜩 취해서 집으로 왔을 때,(...) 내가
'바람과 나'의 가사를 읊어주면 김민기는 따라 불렀다."
(그 후 '바람과 나'는 김민기의 첫 음반에 실려 사람들에게 알려졌
고 최근의 김광석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에 의해 다시 불리워졌다.)
물론 당시 포크음악은 송창식 윤형주 같은 이들의 활동으로 이미
젊은 세대의 인기를 얻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엔 '번안가요'로
상징되는 포크의 형식이 있었을뿐 아직 그 '정신'은 존재하지 않았
다. 이를테면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스스로 노래를 만든다는
발상은 당시 우리 음악계에선 매우 생소한 것이었다." 한대수의 노래
는 그런 의미에서 한국 포크음악에 처음으로 '정신'을 불어넣었다.
이른바 'singer song writer'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더구나 그가 포크의 정신이 활짝 꽃폈던 60년대 후반의 미국에서, 그
흐름에 몸을 내어맡기며 학생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은 그가 그 역사
적 역할의 적임자였음을 알려준다.
* 문화적 혼혈아
한대수의 첫 음반 <멀고 먼 길>을 처음 듣던 때의 충격을 나는 아
직도 기억한다. 70년대 후반 시작된 대학가 노래운동의 성과물로 만
들어져 지하(?)로 유통되었던 노래책 속에서 악보로만 접하던 운동
가요들, 그 노래들은 대개 음반으로 녹음된 적이 없거나 부르지 못하
도록 금지된 것들이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그 노래들이 담
김 음반을 찾아 동네 레코드 가게를 뒤지고 다녔고 <멀고 먼 길>이
나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 등을 운좋게 발견할 수 있었다.
<멀고 먼 길>을 처음 사가지고 와, 들뜬 기분으로 턴 테이블에 얹
어 놓고 조금 있자 터져 나오던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마르요
물 좀 주소" 하는 괴성과 절규. 그것은 정말이지 여태껏 들어보지 못
한 소리였다. 그 노래와 목소리의 독특함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반
전체를 지배하는 정서는 나를 단박에 사로잡았다.
그것은 그의 노래 중 가장 많이 알려졌던 '행복의 나라'가 가진 나
름의 희망적 느낌 보다는, '물 좀 주소'나 '옥이의 슬픔'에서 느껴지
는 어둡고 절망적인 또한 왠지모르게 퇴폐적인 것이었다. 꼭 어둡다
고만 볼수 없는 '바람과 나'와 '하룻밤' 같은 노래도 내겐 그렇게만
들렸다. 자유를 갈망하지만 얻어질 수 없는 암울함 같은 느낌이랄까.
또한 그 정서는 노래운동 초기에 만들어진 노래들이 가진 비감(悲
感)과도 조금은 다른, 보다 더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한대수의 노래를 거듭 들을수록 계속 궁금해지는 것이 있
었다. 미국에서 왔다는 그가 부르는 노래들의 가사와 말투는 왜 투박
한 사투리에 가까운 것일까?
<멀고 먼 길>의 자켓에는 다만 다 떨어진 티셔츠와 청바지에 가방
을 매고 옛 시골길을 걸어가는 젊은이의 뒷모습과 손으로 자신의 얼
굴을 일그러뜨린 누구인지 알아보기 힘든 괴기스런 사진 두장 뿐
그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그러한 나의 궁금증은 <물 좀 주소 목마르요>를 읽으며 비로소
풀렸다. 그리고 그 사실들은 한대수의 음악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의
미를 갖는다.
한대수는 1948년 부산에서 저명한 학자 집안의 아버지와 부유한
실업가 집안의 어머니 사이에서 유복하게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아
버지는 결혼 1년만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그가 7살 때 실종되
고 만다. 그리고 한 창 젊은 나이에 혼자된 어머니의 재혼이 양가 사
이에 합의됨에 따라 그는 어느 화창한 봄날 어머니를 떠나 서울의
할아버지집으로 오게 된다. 그후 10살 때 할아버지를 따라 처음 미국
에 가서 생활하다 중2 때 한국으로 돌아오고 다시 고2 때 실종되었
던 아버지와 극적으로 연락이 되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미국 여인과
결혼해 살고 있는 아버지와 살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가고, 뉴욕에서
사진학교를 나와 힘겨운 생활에 지쳐 갈 때쯤인 1968년 어머니의 부
름으로 다시 한국으로 와 가수 생활을 하다 1975년 그의 두번째 음
반 <고무신>이 판금 된 후 두려움 속에서 다시 미국으로 건너 가
고...
이렇게 한국과 미국을 반복해서 오가던 생활도 그러려니와 그 생
활 속에서 그에게 어머니와 아버지는 언제나 '부재' 상태였다. 어릴
때 재혼한 어머니는 그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그를 보지 않기로 약
속이 되어있었고, 어렵게 다시 찾은 아버지와 살기 위해선 미국인 어
머니와의 갈등을 조율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두고 '문화적 혼혈아'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정
확한 평가"라고 말한다. 혼혈아는 어느 편에도 쉽게 속하지 못하는
법, 그래서 그는 늘 외로웠고 그런 그에계 음악,시, 사진 등의 예술은
언제나 삶의 가장 소중한 부분이었다.
* 사랑과 음악
누구는 안그러랴만, 그의 삶에 있어 또하나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
것은 '사랑'이다. 특히 1988년에 20년 가까이 함께 살았던 그의 첫
아내 명신과 갑작스럽게 헤어지게 되고 그 이후의 오랜 고통의 날들,
몽고계 러시아 여인 옥사나와의 새로운 결혼 생활, 그 와중에 어려움
에 처한 명신과 몸이 아픈 옥사나 두 여인을 함께 돌보았던 그의 지
극함 등 그가 털어놓는 사랑 이야기들은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감
동적인 부분이다. (책 속에는 사진이 여러장 실려 있는데 그 중 뉴욕
사진학교 시절 한 손엔 석고상을 한 손엔 담배를 들고 찍은 정말이
지 잘생긴 청년 한대수의 모습과 더불어, 명신과 헤어진 후 삶의 허
탈감을 이기지 못해, 악기들과 선인장을 제외한 모든 살림살이를 죄
팔아버리고 넓은 방에 쓸쓸히 고개 숙이고 앉은 그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또한 그의 슬픈 사랑 얘기를 읽으며 1989년 출반된 <무한대> 음반
에 실린 'One Day(나혼자)'라는 노래를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한편 그는 음악에 있어서도 행복하기 보다는 쓸쓸했다. 마치 그가
17살에 만든 노래 '바람과 나'가 주는 느낌처럼. 그가 포크의 정신을
불어 넣은 한국에서 그의 음악은 오랫동안 금지되거나 잊혀져 있었
다. 사실 자서전 <물 좀 주소 목마르요>의 출간은 1998년 그의 음악
인생 30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계획했던 몇가지 일들 중 하
나였다. 그러나 함께 추진했던 다른 일들 - 음반 발매와 기념 공연
- 은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는 모처럼
한국을 찾았다가 다시 쓸쓸히 발길을 돌려야 했다.(<한겨레> 1998.
8. 14 참조) 다행히 올해 들어 군사정권 시절 판금되어 마스터 테잎
까지 빼앗겼던 <고무신>의 복각 음반과 1997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여성 록커 카르멘 마키와 함께 공연한 내용을 담은 음반이 2장짜리
CD로 나왔고 또 비록 '찬조 출연'의 형식이기는 했지만 양희은과 함
께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90년대 들어 대중문화가 많은 관심과 영향력을 얻으면서 대중음악
인의 업적을 평가하고 스스로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한 여러가지 일
들이 있었다. 신중현과 산울림의 헌정 음반이 그 대표적 일이라 할
수 있으며, 얼마전엔 김민기 헌정 공연도 열렸다. 그런 의미에서 가
까운 장래에 한대수 헌정 음반과 공연을 기대하는 것은 결코 나만의
바램이나 욕심이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지난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책의 끝장에 실린
'붙이는 말'을 옮겨 적으며 글을 맺는다.
"97년 9월 후쿠오카에서 열린 콘서트에 어머니가 오셨다. 어머니는
또다시 눈물을 흘리셨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본 관중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감동한 기쁨의 눈물이었다. 아버지는 같은 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유니텔 록 콘서트에 오셨다. 50년만에 처음으로 고국 땅을 밟으
신 것이다. 우리 셋은 그 순간 함께 있었고,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정
규오가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일이 안 되려고 했나 보다. 카메라에
필름이 없었던 것이다."
<덧붙임>
(1) 한대수 인터넷 홈페이지 : http://www.hahndaesoo.co.kr 통신
동호회 : Hitel - go sg1189(한대수 음악사랑 '행복의 나라')
(2) 이 책은 성긴 편집에도 불구하고 본 내용은 160쪽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그의 짧은 문장과 어우러져, 어떤 위
대한 사람의 훌륭하고 진지한 삶을 읽는다기 보다는 친한 누군가에
게 하룻밤을 새우며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한편 출판사도 적은 분량이 부담이 되었는지 뒤에다 그의 사진작품
과 한국,일본,미국 등에 대한 생각을 덧붙여 250쪽을 만들어 놓았다.
이 '부록'에 대해서는 뭐 각자 알아서 대처해도 될듯하다. 다만 존
레넌에 대한 찬사와 밥 딜런에 대한 혹평은 매우 흥미롭다.
<윤권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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