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통신에서 찾아 두었던 기산데 참고삼아 올립니다.
----------------------------------------------------------------------
천리안 ▶ 한 겨 레('95년)
제 목 : [김민기에서 서태지까지] <14> 양병집 넋두리2 (1985)
----------------------------------------------------------------------
양병집 <넋두리 II>(1985)
강헌 <대중음악 평론가>
양병집은 김민기, 한대수, 서유석과 함께 초창기 한국 모던 포크의 4인방
으로 꼽히는 인물이지만 이 음악 언어가 요구하는 세계관의 독자적인 형
상화 역량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탓에 마땅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것은
60년대말부터 시작된 그의 작업이 주로 밥 딜런이나 우디 거스리 같은 서
구 모던 포크 거장들의 음악을 번안하거나 우리의 전통적인 구전음악을
되살리는 데 치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이 작업만으로도 그는 자신이 할 일을 다했다고 볼 수도 있다. 우
디 거스리의 노래를 번안한 <서울 하늘>이나 최근 김광석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한 <역(逆)>은 우리의 현실이 스며든
최고의 번안으로 꼽힐 만하다. 그리고 그가 채보한 <타복네>나 광복군의
노래 <엄마 엄마 아 엄마>의 '다시 부르기'는 민중들의 옛 유산에서 오늘
의 의미를 읽어내는 모던 포크 고유의 강령을 충실하게 수행한 것이기 때
문이다.
그러나 그는 단지 그것만으로 자신의 이력을 마무리하지 않았다. 대학
가의 전투적인 저항가들도 웅장한 키보드 사운드를 채택하기 시작하면서
70년대의 통기타 소리를 무장해제시키고 있던 80년대 중반에 양병집은 사
라져 가는 모던 포크의 마지막 불꽃을 묵묵히 태운다. 별 반응 없이 끝났
던 1980년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앨범의 흥행은 참혹한 것이었다. 그러
나 이 노래집의 속살은, 전작은 물론이고 어떤 한국 모던 포크의 걸작에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는 놀라운 통찰력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한마디로
이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의 제2차 혁명의 포문이 불당겨지던 1985년의 숨
은 보석이다.
포크 록의 전형적인 담담함으로 앨범은 문을 연다. <오늘 같은 날>은
`비나 왔으면' 좋을 답답한 일상에서 `어리석은 위로'라도 받기 위해 `십
원짜리 동전을 깨끗이 닦아' 전화하지만 `결국' 집으로밖에 갈 수 없는,
도시의 중심에서 떠밀린 자신을 소개한다.
그러나 이 누추한 자아는 그저 누추함으로 끝나지 않는다. 바로 이어지
는 <이런 사람을 찾습니다>와 <우리의 김씨>를 보라. 본래 제목이 <구인
광고>인 <이런 사람을 찾습니다>는 정태춘의 곡으로, 양병집 특유의 걸쭉
하고 텁텁한 목청을 통해 이 어두운 세상을 소리 없이 밝히는 진정한 인
간을 찾아 나서며 이에 대한 응답이 바로 `도매상이 모여 있는 시장길에
서 물건을 싣고 있는 우리의 김씨'인 것이다. `옷차림은 남루하고 키는
작지만', 그리고 `내년에는 큰 딸아이 시집 보내고 마누라의 속치마도 사
다 줘야'하는 그의 김씨는 바로 어두운 시대를 끝까지 살아남는 자신의
초상인 것이다.
비록 자작곡 가수로서의 천부적인 재능이 결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앨범은 양병집이 단순히 서구 자유주의 문화의 `전달자'로 그치고 만 것
이 아니라 그 문법을 기반으로 한국의,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소리를 창출
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의 시대가 끝
난 뒤에야 자신의 소리를 찾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