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메이데이문화제 평가를 위한 초고
이성민 (민중연대 지도위원)
※ 들어가기에 앞서, 4년 째 진행된 메이데이문화제를 제안한 사람이며 4년간의 행사 전반을 어떤 형식으로든 최종 책임을 져야할 입장에 있었기에, 2001 메이데이문화제 평가를 초고 형식으로 먼저 언급하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1. 들어가면서
2001년 4월 30일 부경학협 학생들의 4·30 집회를 시작으로 전야제, 그리고 한진중공업과 부산·경남·울산 열사정신계승사업회 공동주관의 추모제와 기획위 주관의 폐막제까지 5일간 메이데이문화제가 끝났습니다. 이제 이후 투쟁과 내년 메이데이문화제의 준비를 위해 2001년 메이데이문화제를 정확하게 평가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은 이러한 우리들의 메이데이 실천과 투쟁의 성과와 한계를 분명히 짚어가는 토대가 되기를 바라며 먼저 5일간 행사 중에 현상으로 나타난 몇 가지 사항을 되짚는 것으로 말문을 열겠습니다.
◆ 5월 1일: 국제연대의 날/외국인노동자의 날
-세계노동절 본대회
5월 1일 본대회는 그간 민주노총부산지역본부가 지역의 노동운동 판에서 보여왔던 민족해방파 챙기기의 행태를 고스란히 드러낸 대회였습니다. 그날 29일 밤부터 시작해서 4월 30일 전야제 직전까지 매달려서 무대 작업을 했던 부경학협 학생들과 민중연대 문예분과 회원들, 그리고 기획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는 노동자·민중운동 단체의 활동가들은 부경총련 의장의 '저희가 메이데이문화제를 준비하면서...' 운운에 분노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대 위는 소위 민족민주운동진영 일색으로 도열돼 있고, 단상 아래서 아직도 졸린 눈을 감당 못하고 있던 노동자·민중운동 단체들은 진행상황을 기가 막힌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웠음을 절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IMF시민대책위에서부터 공투본, 최근의 대우자동차 투쟁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보여 왔던 자주운동진영을 앞세운 노동자·민중운동진영에 대한 물타기 시도가 거침없이 이루어지는 시건방지기 짝이 없는 이벤트였습니다. 지난 3년간 빚져가면서 진행해 온 메이데이문화제의 성과를 하루 아침에 찬탈하는 민주노총지역본부와 단상 위의 단체들을 보면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적과 싸우면서 고스란히 적을 닮아간다'라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량한 기득권 논쟁 따위나 하자고 그간 문화제를 해 온 것이 아닌 바에야 분을 속으로 삭히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 5월 3일: 비정규직노동자의 날/민중연대의 날
- 비정규직 철폐, 민중생존권 쟁취, 김대중정권 퇴진을 위한 노빈학결의대회
3시에 시작돼야 할 <비정규직 철폐, 민중생존권 쟁취, 김대중정권 퇴진을 위한 노빈학결의대회>는 정시에 시작될 수 없는 난감한 지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참가 대오가 적을 것이라는 것은 애초에 짐작했던 바지만 대회사를 해야할 지역본부장이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청년진보당부산시지부 조정래 위원장으로 대체해 대회를 시작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지역본부 내 미조직특위의 불참과 지역일반노조의 결정번복 등 일련의 흐름을 보면서 이러한 것들이 결코 우연하게 아귀를 맞춰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대회사를 맡기로 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는 운동 20년에 처음 당해 보는 일이라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할 지 말문이 막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민주노총지역본부의 오만불손한 행태는 5월 4일에 이르러 그 극단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 5월 4일: 열사정신계승의 날·폐막제
모두들 잘 아시겠지만, 하나의 행사를 며칠 간씩 테마를 정해서 가는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작과 끝입니다. 일반적으로 문화제나 예술제의 경우 굵은 선으로 드리우는 기조로 행사를 진행합니다. 특히 메이데이문화제와 같은 행사는 당해의 투쟁방향을 세밀하게 고려하면서 진행해야 함은 운동하는 사람들의 상식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5월 4일 추모제와 폐막제를 지켜보면서 저는 황당하다 못해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이미 민주노총과 노동운동 내부에 거센 반발과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시피 민주노총 일부 조합원들의 5월 1일 방북은 대위원대회 위임을 받은 중집에서 내린 결정을 무시하고 강행한 대단히 몰계급적인 통일지상주의자들의 돌출행동이었습니다. 더욱이 이들은 방북을 마치고 돌아 오는 배안에서 '조합원들이 가겠다는 데 가지 못하도록 하는 결정을 한 집행부와 사상투쟁을 전개하겠다'고 까지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 속에도 자신들의 방북이 조직적 결정이 아니었음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부산지역은 그날 박창수 열사 추모제와 폐막제 사이에 계획에도 없던 방북보고프로그램을 집어 넣음으로써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이들의 행동을 공식적으로 용인하도록 하는 자리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방북한 사람들의 말마따나 개인 누구든 방북할 수 있는 것이고, 이를 굳이 나무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직이 어떤 결정을 하고 참여하는 문제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방북 보고대회는 그러한 행동에 동의하는 사람들 앞에서 진행해야할 그들만의 프로그램인 것입니다.
현재 우리는 김대중 정부의 그릇된 정책으로 인해 7,000명의 한통계약직 노동자들이 거리로 쫓겨나 공권력의 폭력에 만신창이가 돼 있고, 1,750명의 대우자동차노동자들 또한 피투성이가 돼 김대중 정권 퇴진을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박창수 열사의 노동해방 투쟁 정신을 이들의 투쟁에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당연히 고민했고, 마지막 폐막제까지 이러한 문제의식을 관통해 나가도록 판에 대한 구상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박창수 열사 상여를 태우는 의식을 맨 마지막에 배치하고 광장 뒷 쪽으로 몇 걸음이라도 이동해서 불타는 상여 앞에서 투쟁 결의문을 낭독하는 것을 끝으로 폐막을 선언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누구의 결정으로 어떤 단위와 논의해서 그런 황당한 판이 되었는지 저는 아직도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날 민주노총지역본부와 방북참가자들의 행동은 심하게 말하자면,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이 압살되더라도 통일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발상이라고 밖에 여겨지지 않습니다. 지금 이 정부의 실정을 무마시키는 최대의 정치 쇼가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통일 테마 아닙니까. 제가 지금 지나친 정세인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2. 무엇이 문제였는가.
다소 거칠게 몇 가지 현상을 나열했습니다만 예를 든 몇 가지 외에도 숱한 문제들이 행사 기간 중에 나타났고, 이러한 문제들은 각 프로그램과 회의별로 평가가 진행될 것이고 조만간 이런 것들이 점검돼 총화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처음부터 어긋난 조직체계와 회의의 운용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이러한 잘 못된 체계와 운용은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그릇된 행사 인식으로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전시 및 집회 등이 총괄 검토되고 소통 가능한 회의 체계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문화제 따로, 전시 및 집회 따로의 기이한 조직체계로 굴러가는 것에 대한 부분은 준비 단계에서 이미 몇 차례 제기했으나 시정되지 않았고, 십분 양보해 민주노총지역본부 조직체계가 고스란히 옮겨 오는 형식을 감수한다 쳐도 서로 간의 프로그램 회의라도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면 이런 식으로 까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역본부 조직국과 교선국 책임자와 집회·전시 담당 기획위원들 간의 논의 구조는 공식화되지 않은 결정사항이 공식 결정된 듯 진행되고 있거나 심도있는 검토 조차 이루어진 바 없는 일들이 개인에 의해서 제멋대로 굴러가는 상황이 종종 나타나곤 했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공식적으로 결정한 일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도 없이 변경해 버리는 경우까지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에 대한 정확한 책임소재를 따지기 위해 평가를 위한 주요 쟁점들을 항목별로 나열해 보겠습니다.
① 전야제 콘티에 대한 변경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새로운 안을 만들었는가.
② 무대작업과 풍물탈춤한마당 그리고 박창수열사 장례투쟁 재현 프로그램에 결합하기로 한 부경총련 무대지원단과 풍물패는 왜 일과 프로그램을 책임지지 않았는가.
③ 추모제에 계획한 영상물 상영에 대한 내용은 기획단위이고 지원단인 M-VISION과 정확하게 논의되지 않은 채 진행된 이유는 무엇인가.
④ 3일 집회에 대회사를 지역본부장이 하는 것으로 결정한 단위는 어디며, 누가 책임지기로 되어 있었는가.
⑤ 추모제와 폐막제는 어디와 의논하고 누구와 상의해야하는 것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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