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하고 82건의 의문사가 접수,조사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생긴 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의문사...풀리지 않는 의혹들을 정부차원에서 풀어주겠다고 하니 쌍수들어 환영할 뿐이었다. 인권대통령 김대중씨가 뭔가 하는구나..해내는구나..하고 기대도 컸을 것이다. 그만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더 이상의 의문사는 없어야 하고, 풀리지 않는 죽음들의 의혹을 풀어 역사바로세우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 다 좋다..역사바로 세우기..또는 dj정권의 홍보용이다 할지라도...
의문만 풀어준다면....
하지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접수된 사건 중 '박태순'씨 사건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점을 빌어......나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확신한다.
우선 유가족이나 박태순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제기하는 의혹들이 지금까지(12월 사건 접수~ 6월 16일 조사 종결 시한 때문에 박태순씨 사건조사는 막바지에 다다랐다.) 제대로 밝혀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 내가 알기론 한 사건당 조사기간 마지노선이 6개월이다. 1회에 한해 3개월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연장은 우선 6개월 수사가 마무리 된 후 일이고...
6월 16일이면 수사종결이라던데 오늘이 5월 15일이다. 그렇다면 이제 한달 남은 것이다. 조사관들은 그 동안 뭘 조사했나..?
유가족들의 의혹(왜 경찰이 찍은 사진에도 있는 소지품-정액권,가방,캐쉬카드...등등-이 없는가?, 왜 연고지도 아닌 시흥까지 가서 철길로 들어갔는가?, 왜 남부서의 기록과 시흥역 부기장의 기록은 다른가?) 중 지금까지 풀린 것은 하나도 없다. 전혀 다르게 작성되어 있는 서류는 당시 경찰관의 단순 실수이고 박태순이 죽은 이유는 술에 취해 열차로 뛰어든 것이란다.
그렇다면 박태순은 정말 술에 취해 열차에 뛰어 든 걸까?
3월달에 방영된 sbs'그것이 알고 싶다'를 본 사람들이라면 대략적인 상황은 알겠지만..박태순은 시흥역에 내릴 이유가 전혀 없다.
당시 그의 직장은 부천소재의 한 공장이었고 주거지는 석수역의 형네 집이었다. 석수역에서 도보로 5분이면 갈 수 있는 집을 두고 왜 박태순이 시흥역에 내렸겠는가? 더우기 황당한 것은 시흥역 플랫폼을 내려가 서울방향으로 철길을 걸어 갔다는 것이다. 집과는 정반대로... 그러다 열차사고를 당했단다. 열차가 달려와도 모를 정도로 그는 취한 걸까?
이 부분을 밝히는데 중요한 증언을 한 사람들은 당시 한 직장에 있던 4명의 동료였던 걸로 안다. 3명은 그 날의 상황을
'일을 마치고 역곡역 부근의 갈비집인지..술집인지..에서 간단하게 한 잔하고 헤어졌다'고 기억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마지막으로 진술한 김기환이란 사람의 진술인데..김기환은 마지막까지 박태순을 본 유일한 사람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기환의 증언 내용은 대략 이렇다.
'박태순과 나는 공장안 사무실에서 소주를 마셨다. 마른안주와 소주를 마셨고 어찌된 건지 몰라도 나중에는 소주를 글라스에 마셨고 박태순은 비틀거릴 정도였고 혀가 약간 말리는 정도로 마셨다. 술을 마시고 구로역까지 동행했으며 그게 마지막 박태순을 본 것이다.'
4명의 증인 중 3명의 말은 일치하는데 왜 김기환씨의 증언만 다른걸까?
어떤 증언이 신빙성이 있는 증언인가? 3명이 말하는 비슷한 정황일까? 아니면 한 사람의 유독 다른 진술이 신빙성이 있는 건가?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당연 3명의 증언을 채택할 것이다. 하지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관들은 김기환의 유독 다른 진술을 선택했다. 현재 김기환의 증언은 박태순의 의문사를 '단순 사고사'로 마무리 짓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김기환씨는 박태순이 안경을 썼는지 안썼는지도 기억 못한다. 그런 그가 마른안주에 소주 몇 병까지 마셨음을 말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박태순의 죽음을 '단순 열차사고'로 마무리짓게 하는 결정적인 것의 하나는 당시 사고 열차의 기관사가 쓴 사건보고서이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200m 전방에서 사람을 발견하고, 이때 브레이크를 작동하여 600m 전방에 정차하였다. 박태순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채로 열차 치였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200미터 전방에서 사람임을 판명하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유가족들은 이 점에도 의문점을 제시했고, 이에 5월 11일 사고 현장인 시흥역에서 열차사고 재연 실험을 마쳤다. 실험 결과 200미터전방에서 사람을 식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임이 밝혀졌다. 사람인지도 판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관사는 어떻게 박태순이 술에 취했다는걸 알았을까?
김기환의 증언과 기관사의 증언 두가지를 놓고 현재 '단순 열차사고'로 마무리 지으려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지금 제대로 의문점들을 풀어가고 있단 말인가?
이 글에서 내가 지적 하는 것은 "박태순은 술에 취해서 열차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 한가지 이다. 박태순의 죽음에는 여러가지 의문점들이 있으나 우선 조사관이 말하는 술에 취해 열차사고를 당하지 않았음을 먼저 짚고 넘어가보자는 의도다.
앞서 내가 나열한 진술들의 채택 문제는 덮어 두고라서라도 (조사관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차원에서) 남부서의 사건기록과 시흥역의 사건기록 차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유가족 측의 의혹제기가 있었다. 남부서 기록에는 사건접수가 22;20분이라고 적혀있는데 시흥역의 기록에 형사2명이 시흥역에 온 시각은 22;15분이라고 적혀있다. 기록대로 라면 사건 접수를 하기도 전에 이미 형사가 시흥역에 도착했음을 말한다. 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미 형사는 박태순을 미행하고 있었단 말인가?
여러가지 의혹들이 생기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유가족의 의혹제기에..조사관들은 당시 담당형사의 실수라고 결론지어버렸다.
당시 수사 형사2명은 수사의 기본도 모르는 형사였단 말인가?
모든 의혹들이 당시의 '실수'라는 말로 덮혀지고 있다.
이럴려면 뭐하러 진상규명위원회는 만들었나?
대부분의 의문사가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졌고 축소, 은폐, 조작됐기 때문에 강력한 조사권도 없는 진상규명위원회가 뭔가를 밝혀내기란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다는 걸 분명 알기에... 나는 박태순의 죽음을 '단순사고사'로 마무리 지으려는 진상위가 더욱 얄밉다. 어렵기 때문에 쉽게쉽게 사건 처리를 하는 건 아닌지.....하는 의혹이 앞서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박태순 의문사 진상규명에 있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문제점과 직결됨) 문제점은 크게 두가지로 보여진다.
하나는 조사관들 출신성분의 문제 또 다른 하나는 진상규명위 자체가 아무런 실권이 없이 단지 조사만 한다는 점.
조사관들의 절반 이상은 형사출신이거나 기무사 출신..군 출신들이다.(실제 박태순사건 담당 조사관 중 한명도 기무사 출신)
이들이 제대로 조사하겠는가? 진상위 활동을 마치고 다시 자신들의 직분에 열중할 이들이....자신의 동료, 선,후배들 또는 자신의 몸 담고 있는 조직의 범죄행위를 제대로 파헤치겠냐는 말이다. (이 때문에 내부적인 마찰이 충분히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소신을 갖고 활동하는 조사관들과 자신의 조직 자신의 세력 보호에 열중하는 조사관들의 충돌....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
박태순 사건의 중요한 쟁점 중 하나인 민간사찰의혹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지점도 이와 맞닿는다고 생각된다. 조사관측이 말하기를 '박태순은 민간사찰을 받을 만한 인물이 아니다. 따라서 술을 마시고 사고사 한것이지 유가족들이 말하는 누군가의 미행, 추척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서 당시 같이 활동을 하던 친구들은 조사관들과 엇갈린 진술을 하고 있다.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박태순은 당시 학교를 그만두고 노동운동에 투신해서 위장취업을 반복하며 노동운동을 했고, 여기저기 자리를 옮기며 위장취업을 한 것은 누군가 공장으로 찾아와 '박태순이란 사람 여기 있냐?'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누군가 박태순을 찾아다녔다는 중요한 증언이며 이와 관련해서는 당시 박태순이 몸담았던 공장의 사장도 증언할 수 있다고 한다. 박태순은 당시 입대거부로 기무사에 의해 쫒겼다는 증언도 있다. 또 박태순과 같이 동거하던 백철우(박태순과 백철우는 군입대 거부라는 같은 이유로 기무사에 의해 쫓기고 있었다.)가 연행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박태순은 분명 수원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했으며 같이 활동한 동료들의 증언을 토대로 본다면 분명 사찰을 받고 있었음이 확실하다.(이글에서는 백철우만 거론됐으나 이에 대해 증언하는 친구들은 이창연,주선희,주경호 등등...)
그렇다면 조사관들의 수사방향은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시흥역 열차사고 재연을 하나의 예로 들어보자. 유가족들의 제시한 '누군가에 의해 쫒기던 상황이 아니었겠나? 시흥역에 갈 이유도 없고 더우기 서울방향의 철길로 들어설 이유도 없을 뿐더러 열차가 오는 지도 모르 정도의 만취는 아니었다는데 여러가지 실험을 해보자.'라는 것들은 그 날의 실험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그 날의 실험은 단순히 기관사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느냐라는 것의 확인작업일 뿐..누군가가 따라올 것에 대한 실험은 없었다.
유가족이 말한대로 누군가 따라왔을 수도 있다면 열차에서 몇 미터 전방의 사물이 보이느냐만 실험할 것이 아니라 여러방면에 사람을 세우던 물체를 세우던..아니면 보다 적극적으로 누군가 열차방향으로 뛰어가는 실험을 했어야 한다. 유가족의 제안은 철지히 무시되고 조사의 주체인 진상규명위원회의 뜻대로 수사는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조사의 주체....
그래..조사는 진상규명위원회에서 한다고 치자. 그 조사는 누가 의뢰하고 누구를 위한 조사인가? 유가족이 품고 있는 의혹이 단 하나도 풀리지 않은 채 '단순 사고사'로 수사 종결이 되버리고 만다면...이 사실을 아는 누구도 더 이상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신뢰할 수 없을 것이며 우리는 새로운 진상규명위원회를 조직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활동하는 조사관을 앉혀놓고 왜 그때 그렇게 축소수사했느냐..왜 보다 더 적극적인 수사를 못했느냐라고 따질 날이 올꺼란 말이다.
박태순씨 의문사 사건을 접하며 내가 느낀 것은 간단했다.늦게나마 열사의 넋을 위로하고 유가족의 슬픔을 함께 하며 진정한 역사바로세우기를 하려거든 의문사 관련 특별법을 개정해야만 한다는 것. 제대로된 진상위를 세우고 조사를 해야만 철저한 조사가 될 것이다. 기무사, 형사,헌병...등등의 출신들이 조사팀의 적제적소에 배치되있고 강력한 조사권이 없는 지금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김대중정권의 쌩쑈로 끝날 확률이 크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의도한 대로 덜거덕거리며 굴러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더 이상 열사를 두번 죽이는 짓은 하지말자!
이제라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우리 역사의 '진상'으로 남을 짓은 그만두고...철저한 조사를 펴주길 바란다. 박태순씨의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박태순씨를 죽음으로 몰고간 이들을 철저히 조사해서 정확한 수사를 펴주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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