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원칙에 반하는 통치
말은 사람 사이에 나오고 사람은 말을 하며 지각이 생기는 흙덩이라는 동시성의 존재 원리(좋은세상 여는 말 : 인간본질원리 참조)로 보면 세상은 말하는 사람 사이에 창조되고 있는 공간이다. 어떤 불가사의한 힘이나 절대의지에 의한 세계가 아니라 숨소리를 내는 가운데 소리의 유형이 생기고 소리를 분별하며 지각하는 인간이 되고 공간이 생명을 얻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언어체계이며 언어체계를 떠난 지식체계는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말하면서 지각하는 인간의 시점을 배제하고 지구나 우주는 말할 것도 없고 신이나 인간의 육체도 존재의미가 없는 것이다. 말하면서 지각이 생기는 사람 사이는 상호 대상이 내가 존재하는 원인이므로 너와 나 사이라는 인간 자체에 존재 원인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말이 나올 수 없는 개체는 존재할 수 없고 인간 사이에 존재하고서도 한없이 부족하지만 말을 하며 인간이 되고 세상을 창조해 가는 너와 나 사이보다 위대한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이러한 인간 본질은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말하면서 인간이 되고 세상이 열리는 너와 나 사이는 우선 상호 대상이 내가 존재하는 원인이며 생명이므로 무한히 좋은 모습이 본연임을 알 수 있다. 상호 원인으로 존재하는 인간은 같이 좋은 너와 나 사이, 같이 잘 사는 가정과 사회와 세계가 본연이며 정상이라는 것이다. 무한히 좋은 인간 본연은 한도 끝도 없이 좋은 남녀 사이나 세상크기와 비교될 만큼 소중한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상호 원인으로 존재하는 너와 나 사이가 좋은 본연이라는 소리는 고통을 인간 모습으로 아는 기존의 가치와 다르다. 고해라고 하는 세상은 본질을 알 수 없는 어두운 시대로부터 비 본질이 지배하므로 본연이 유린되고 있는 현상인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달리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좋은 본연에서 오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부부나 부모 자식 사이에서 대상이 불에 갇히거나 물에 빠지면 자신의 목숨을 생각할 틈도 없이 달려가 구하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살아있는 것이 더 큰 고통인 것은 인간이 생명의 고리로 존재하는 무한히 좋은 본연이기 때문이다. 인간 본연을 잃으면 죽음을 능가하는 고통이 불가피하다는 데서 좋은 본연이 정상이며 절대가치라 한다. 인간의 좋은 본연은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가정이 확대된 사회 또한 생명의 대상이 사는 생명의 공간이므로 모든 시간 공간이 편하고 생기 넘치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가 같이 잘 살지 않으면 생명의 삶을 알 수 없고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세상이므로 정상의 가정, 같이 잘사는 본연의 세계가 대원칙 또는 절대가치이며 절대기준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같이 좋은 본연의 공간, 같이 잘사는 본연의 세계가 하늘이며 본연의 세계를 실현하려는 국민적 인류적 절대의지가 하늘의 뜻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극도의 갈등과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은 정도를 벗어난 정치, 즉 대 원칙과 거리가 먼 정치를 한다는 반증이다. 현 정부 출범이래 모든 정책이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은 대 원칙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체제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논리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조직에서나 가능한 인사 정책을 필두로 정치, 경제, 사회, 대북 정책 등 모든 분야가 대 원칙이 아닌 개인과 집단 이기주의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통일을 바라지 않는 국민은 아무도 없겠지만 물질을 쏟아 붓고 상전을 모시듯이 해야 대화가 되고 통일이 된다는 논리가 동서고금 어디에 있는가.
현실적인 통일 방법을 생각한다면 공산체제에 한계를 느끼고 북한 주민이 탈북할 때 적극 수용하는 독일방식을 택해야 했다. 극심한 식량난으로 탈북자가 줄을 잇고 북한 체제가 1년 안에 붕괴되리라는 관측이 나오던 시점에 식량과 달러를 실어 나르면서 탈북자는 냉대하여 사실상 탈북을 막아 왔다고 할 수 있다. 식량과 달러가 군비로 전용될 것을 우려할 때 당국자는 현장을 입회 확인한다고 했다. 어느 사회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북한에서 군비와 군량미가 따로 있고 국가 예산과 인민의 식량이 따로 있을 수 있는가. 정부는 북한의 군비 증강을 돕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국민에게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국내의 모든 기업은 현대로 현대의 돈은 북한으로 하는 등식이 성립될 만큼 정부의 특혜를 입은 현대는 줄을 이어 달라와 물자를 실어 나르지 않았던가. 흔들리던 북한체제가 반석 위에 올려졌고 대 내외로 위상이 강화된 교조주의 공산 세습 독재자는 더더욱 신처럼 떠받들어지고 있다. 북한체제가 강하면 강할수록 통일의 길이 멀어진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할 때 대북 정책은 통일을 멀리 달아나게 한 것이다.
대북 정책으로 우리 사회는 수많은 기업이 줄 도산하고 국가 경제가 뿌리째 흔들리며 정치와 이념 갈등으로 사회 전체가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노벨상에서 보듯이 대통령이 역사에 남을 명예 때문에 햇볕 정책을 고집한다면 그야말로 역사에 남을 엄청난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햇볕정책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신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갈수록 심각한 남남 갈등에서 알 수 있다. 실정을 비판하는 야당이나 언론과 국내 인사에게는 쌍지팡이를 들고나서면서 북한 당국이 잘못할 때는 발 벗고 나서 의미를 축소하고 사태를 무마하려고 한다. 안에서도 화합을 하지 못하면서 통일을 말한다는 것은 허구이며 국민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막강 화력으로 대치하고 있는 울타리 밖의 주적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면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붓는 대북 정책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북한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러려면 국제적 관례를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서 말이 되고 상식이 통하는 정치질서, 경제질서를 이룩하여 모든 국민이 신뢰하며 같이 잘 사는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며 그것이 대원칙이다. 주체사상을 아무리 주입하려고 해도 부질없을 만큼 바르고 잘 사는 국가를 건설하고 휴전선을 열어 놓을 수 있어야 진정한 통일을 이룰 수 있다. 두 동생을 돌봐야 하는 15세 소녀 가장이 책가방을 놓고 돈을 벌려다 티켓 다방에서 농락 당해 온 일이 최근 알려졌지만 이러한 참담한 일이 어디 이 경우뿐인가. 우리 사회에는 돈이 없어 겪는 고달픈 삶과 예산이 없어 방치되고 있는 불안하고 위험한 구석이 수 없이 많다.
IMF를 졸업했다고 하지만 단기 외채 세계 1위라면 명분밖에 달라진 것이 없다. 가정에서 돈을 탕진하면 가세가 기우는 것처럼 국가에서도 재정을 탕진하면 국가 경제가 온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가 잘 하면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임기 말이 될 때까지 전 정권의 실정이나 야당 또는 세계 경제 불황 때문에 위기를 면치 못한다는 것은 무능한 정권임을 스스로 노출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무지, 무능하고 부도덕한 정치로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데도 대통령에 대해서는 국민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치외법권 시 하기 때문에 대통령직을 마치 사조직이나 집안 일처럼 멋대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언론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비판 신문을 탄압하고 있는 것도 무딘 채찍으로 대통령의 무모한 오기만 키워놓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 기반을 무너뜨리면서 이적을 하고 통일에 역행하는 실정은 탄핵을 받아 대통령직까지 박탈당해야 마땅하지만 그런 수준의 책임 추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권을 박탈당해야 마땅할 정부가 비판 언론을 탄압한다는 것은 비판언론이 하늘의 소리로서 역할을 그 만큼 못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신문사가 탈세나 불공정 거래를 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천여 명이 진을 치고 4개월이 넘도록 사찰을 하고 탈세 혐의로 언론사 사주를 구속할 수 있는 잣대가 어디 있느냐 말이다.
정부가 기업이나 사업체에 대해 걸핏하면 세무조사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도 털면 먼지가 나지 않는 구석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 말단 공무원에서부터 대통령까지, 구멍가게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신문사와 같은 기준으로 사찰을 한다면 아무도 그 의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왜 비판 신문사에만 이런 잣대가 적용되어야 하는가. 수많은 권력형비리 사건을 짜 맞추기 수사로 종결짓고 지금도 그러한 사건으로 세상이 들끓고 있는 것을 보면 개혁이라는 소리는 가당치도 않다고 할 수 있다. 대다수의 국민이 언론 탄압임을 의심하지 않는데도 언론 개혁이라고 강변하는 정부 여당과 친여 세력을 볼 때 도대체 뭐가 개혁이고 뭐가 보수인지를 알 수가 없다. 국민에게 부담과 고통, 갈등과 혼란을 주는 실책을 개혁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개혁을 왜 해야 하는가. 개혁이라고 다 좋은 것도 수구라고 다 나쁘다고 할 수 없는 것은 같이 잘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국민 절대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같이 잘 사는 방향으로의 변화는 아무리 빨라도 과속이 없고 아무리 많이 해도 부족하다. 정책이 갈등과 혼란을 불러온다는 것은 오늘 같이 잘 살아야 하는 대 원칙에 반하기 때문이며 옳지 않고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 본질 기준으로 볼 때 창조의 원력이며 인간답게 사는 사회의 생명력인 말은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말이 아닌 거짓말, 억지 논리와 술수가 지배한다면 혼란과 갈등이 불가피하고 국가 발전은커녕 퇴보를 할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에서 국민의 소리는 대중매체로 대변된다는 점에서 대중매체는 대 원칙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한계에 있으며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 생명이다. 대중매체가 모든 것을 사실대로 보도한다면 권력의 의도가 무엇이든 사필귀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대중매체가 국민의 소리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내용을 조작하고 선택적으로 보도하며 권력의 꼭두각시가 될 때 국민의 하늘을 해치는 정도는 산술적으로 계산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극심한 갈등과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은 국민의 소리를 대변하는 대중매체가 결코 이탈해서는 안 되는 국민 절대기준을 벗어나 있다는 말이다.
국민의 좋은 공간이 하늘이므로 대중매체에 오르는 내용은 당연히 공신력을 가지고 전능성에 가까운 힘을 발휘한다. 거짓이 참의 위치를 차지하고 참인 양 행세를 한다면 국민의 의식과 생활은 병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국민의 하늘을 무제한적으로 점하고 있는 방송매체가 본분을 잃을 때 해악성은 신문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오늘날 만연되고 있는 도덕 불감증과 윤리의 실종, 기성 세대의 퇴폐, 윤리실종, 청소년의 폭력, 탈선, 등 사회의 병리 현상은 세상의 빛과 소리라 할 수 있는 방송매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방송매체가 사회문제를 규탄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부르짖으며 거짓 권력의 나팔 역할을 하는데서 병과 약을 같이 먹는 국민은 병도 모르고 약도 모르는 것이다. 방송사가 탄압 받고 있는 신문사를 짓밟는데 가세하고 있다는 것은 대중매체 본연을 벗어나 부정한 권력의 하부 기관이 되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언론 개혁을 하려면 국민의 절대기준에 반하는 방송, 신문사부터 우선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독재 정권이나 거짓 권력과 타협하지 않는 국민기준의 언론 없이는 선진국으로의 진입도 인간다운 사회로의 변화도 불가능하다.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하고 민족을 위해 개혁과 구조조정을 하고 통일을 앞당기려면 무엇보다 정치개혁을 해야 하며 그 중에서도 지도자인 대통령이 대 원칙에 투철한 의식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대 원칙을 모르는 개혁과 구조조정, 햇볕정책이나 그 어떤 정책도 좋은 변화와 무관할 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고통만 안겨줄 뿐이다. 본연의 절대기준으로 본다면 대통령의 잘못은 그 위치만큼 국민의 하늘을 훼손하므로 직위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하고 사면 대상으로부터도 제외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잘못이 추호도 용납되지 않는 국민 절대기준이 세워져야 모든 지도층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고 아무나 고위직을 탐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불의와 술수를 모르는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 서로 믿고 잘 사는 사회를 건설하므로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게되고 이러한 삶을 최고로 아는 가치가 세워질 수 있는 것이다.
인간본질시대운동본부 / 헝덕 손복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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