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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조레스 뽀르 미 아르헨띠나!(No Llores por Mi, Argentina)
"미디어는 인간의 외연"이라는 어떤 사상가의 주장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더라도, "어떤 사물이나 대상에 대한 기억이 미디어에 의존하는 정도는 나날이 심해진다. 그래서 생전 가보지도 못한 부에노스 아이레스라는 곳에 대한 기억은 두 가지 영상을 클로즈업시킨다. 하나는 마돈나가 주연을 맡은 앨런 파커(Alan Parker) 감독의 영화 [Evita](원작은 앤드루 로이브 웨버의 뮤지컬), 다른 하나는 왕가위의 영화 [Happy Together]다. 두 작품의 주제나 성격은 판이하지만, 여기서 묘사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모습은 로맨틱하고 이국적이다. 지리 지식을 동원하여 한국의 대척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와 정반대의 계절을 살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그렇다.
그런데 요즘 TV 뉴스에서 볼 수 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영상은 이런 이국적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 세밑 저녁 뉴스 시간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굶주린 군중들이 상점을 약탈하고 있다'는 아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등장했다. 화면만 봐서는 규모나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는 알 수 없지만, 급박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우리 교민의 피해'를 우려하던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이어 현지 교민의 목소리가 나온다. "아 글쎄 도둑놈들이 우리 가게 앞까지 와 가지고는...."이라면서 혀를 차는 중년 여성의 목소리다. 목소리의 톤을 글로 묘사할 수 없어서 유감이다.
현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시위하는 군중의 모습이 나온 것은 그 다음이다. '도둑놈들'에 대한 보도가 시위에 대한 보도보다 더 중요할까. 그건 일종의 '보도지침'이었을까. 어쨌든 그 뒤로 도둑놈들은 TV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 대신 연일 거리를 메우는 성난 군중의 모습, 은행과 상점 앞에 줄을 서있는 시민의 모습, 2주 동안 다섯 명의 대통령이 낙마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심층 보도 프로그램에서는 기본적인 생계를 해결하지 못해 허덕이는 빈곤층과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호화생활을 누리고 있는 부유층의 모습이 대조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낭만적 감정은 어쩌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별 해당사항 없는 것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안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이나 왕가위의 영화도 어떤 필요에 의해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이용했던 것 아닌가.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산업이든 홍콩의 영화산업이든 여기 투영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이미지는 자국인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문득 떠오르는 "Don't Cry for Me, Argentina"의 서정적 멜로디도 지금처럼 험악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인들에게는 낯설기 그지 없을 것이다.
이 곡은 파란만장한 삶을 산 후앙 페론 대통령의 부인인 에바 페론(1921-52)의 심정을 담은 감상적인 곡이다. 특히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진실은 내가 너를 결코 떠나지 않았다는 것 / 내 모든 거친 나날 동안, 모든 나의 광기의 실존 동안 / 나는 나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 나와 당신사이에 거리를 두지 마세요"라는 후렴구의 가사는 청자의 심금을 울리는 대목으로 적격이다. 그런데 지금 광장에서 "먹을 것을 달라"고 시위하는 군중 앞에서 이 노래를 들려주면 "누구 놀리냐"라는 거센 항의를 들을지도 모른다. 하긴 1960년대만 해도 한국인에게 아르헨티나는 보리고개로 허덕이는 조국을 등지고 농업이민을 떠나던 곳이었으므로 괜한 자만은 거두는 편이 낫겠다. 그 대신 이 나라의 운명이 왜 이렇게 심난한지 더듬어 보자.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출신의 인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을 셋만 꼽는다면? 정치 문제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후앙 도밍고 페론(Juan Domingo Peron), 에바 페론(Eva Peron), 이사벨 페론(Isabel Peron)을 뽑을지도 모른다. 두 번이나 대통령 권좌에 오르면서 민중주의(populism)의 대명사가 된 후앙 페론과 그의 여인들이 아르헨티나의 기구한 현대사를 대표한다는 말이 그다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들 세 사람은 한 가족에 속하므로 '한 사람'이라고 치고 질문을 계속해 보자. 문화예술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s)를 뽑을 것이다. 20세기의 대문호이의 한 명이자 '포스트'자 붙은 현대 사상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사상가인 그를 빼놓기는 곤란하다. 마지막으로 1960년대 제 3세계의 독재정권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19세기적?) 혁명가이자 (2세기적?) 반항아인 에르네스토 체 게라(Ernesto Che Guevara)의 이름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탱고의 거장 아스토르 피아솔라나 축구 신동 디에고 마라도나의 이름이 빠졌다고 서운해 할 사람이 있겠지만 일단 범위를 좁혀 보자. 그것은 세 인물의 상이한 정치적 성향이 아르헨티나의 꼬이고 꼬이는 운명을 상징적으로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세 인물 중에서 체 게바라가 다른 두 인물과 불편한 사이였음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성공시키고 1967년 볼리비아의 산중에서 최후를 맞이한 그의 삶을 고려해 보건대, 아르헨티나의 기득권층이나 보통 서민들에게 그는 마치 '남한에 사는 사람들에게 북한 무장간첩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실제로 아르헨티나에서 체 게바라의 복권이 이루어진 것은 그가 죽은 지 30년이 지난 1997년 무렵이었다. 보르헤스가 게바라에 대해 가졌던 태도가 어떤 것인지 명확한 언급은 발견할 수 없었지만, "나는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나의 태도와 마찬가지로 민족주의자들이나 파시스트들에 대해서도 진저리를 느낍니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가 좌파 사상을 지지한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보르헤스같은 지성인이 '투철한 반공 정신'을 가졌을 리는 만무하고, 체 게바라의 사상과 실천을 '공산주의자'라고 못박을 수 있는지도 논란이 있겠지만.
오히려 질기고도 사활적인 악연은 비슷한 연배인 페론(1895년생)과 보르헤스(1899년생) 사이에 형성되었다. 페론이 1943년의 쿠데타에서 한 '구좌'를 얻은 여세를 몰아 1946년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보르헤스가 페론을 비판한 것이 악연의 시작이었다. 그 결과 보르헤스는 시립도서관의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1949년에는 어머니와 여동생, 조카가 구속되는 사건을 당해야 했다. 보르헤스는 1955년 페론이 실각한 뒤에야 국립도서관장에 임명되었지만, 1973년 페론이 오랜 망명 생활을 끝내고 다시 정권을 장악하자 또한번 직위해제를 당했다. 거의 20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도 구원(舊怨)을 간직하고 있었다면, 페론이 쫀쫀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보르헤스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 "대체로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그는 1960년대에 민주보수당에 참여했고, 적잖은 사람들이 이 점에 대해 의아해 했다. 이에 대해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르헨티나에서 보수주의자가 되는 것은 우익이 아닌 중도가 되는 것이라는 점을 설명해야 하곤 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곤 자신에게 민주주의란 "반페론주의"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정확한 사정을 알 수 없지만 이런 이상한 정치적 상황은 보르헤스의 작품만큼이나 수수께끼같다.
포퓰리즘의 수수께끼
페론이 표방한 포퓰리즘(populism)도 수수께끼같기는 마찬가지다. 포퓰리즘은 대중주의, 민중주의 등으로 번역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감이 오지 않는다. 물론 '한국적 정의'가 있다. '서민과 노동조합을 동원한 남미식 선동정치', '국부의 무분별한 퍼주기와 선심성 정책'이라면서 현 정권을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는 한나라당의 정의가 그것이다. 물론 이런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 '대중영합주의'라고 해괴하게 번역하거나, 페론을 "나라를 내전으로 몰고 간 지도자"([월간조선], 2001. 9)로 한참 '오버'해서 묘사하는 주장에 스트레스받을 필요도 없다. "현 정권이 페론주의냐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퍼주기'한 게 뭐 있냐고?"라고 반문하면 그만이다. '한나라'라는 단어처럼 포퓰리즘적인 이름은 없다고 쏘아붙여도 좋다. 요는 현 정권이 포퓰리즘적 성향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포퓰리즘을 비판하는 사람이라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라는 수사를 달면 그의 말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 사람은 작금의 아르헨티나 사태에 대해서는 "페론주의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국민들"이라고 혀를 끌끌 차다가도, [Evita]를 보면서는 '상류사회의 냉대를 딛고 서민을 위해 자선사업을 펼치다 요절한' 에바 페론에 연민의 눈물을 흘린 사람일 공산이 크다.
도대체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 '엘리트주의의 반대말'로 생각하면 대략 감을 잡을 수 있다. 그러니까 상류 사회의 엘리트주의를 경멸하면서 기층 민중의 것이면 절차와 방법을 무시하고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포퓰리즘이다. 그래서 포퓰리즘은 때로 파시즘과 유사한 양상을 띠고, 실제로 페론이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무솔리니로부터 영향받았다는 사실은 꽤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포퓰리즘은 '민중'을 기반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반민주적이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다'는 수사에도 불구하고 개성과 차이와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으로 악명높다. 페론의 포퓰리즘은 '위기관리'의 시기에는 효력을 발휘하지만, 그것 뿐이다. 페론주의가 정권을 잡지 못한 시기에는 권위주의적 개발독재든,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든 '엘리트들이 민중을 몰아붙이는' 정책이 있었다. 최근 대통령 지위에 오른 정의당(일명 '페론당')의 두알데 대통령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포퓰리즘과 엘리트주의의 대립 사이에서 치이는 존재가 있다는 점이다. 보르헤스처럼 '차이의 철학'의 선구자로 간주되는 사람은 어느 쪽과도 생리가 맞지 않고 그래서 앞서 보았듯 '중도가 되기 위해 보수가 되어야 하는' 미묘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보르헤스를 엘리트주의자라고 몰아붙이지 않는다면 그는 일종의 정치적 미아인 셈이다. 이런 정치적 미아의 역사는 세대와 장르가 바뀌어도 계속되고 있다. 조금 생소한 이름이겠지만 찰리 가르씨아(Charly Garcia)라는 인물이 있다. '아르헨티나의 존 레넌'이라고 설명하면 대충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간략히만 소개하면 1970-80년대 군부독재 하에서 히피 성향의 음악으로 록 공연을 '평화적 저항'의 공간으로 만드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고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그래서 "Don't Cry for Me Argentina"같은 포퓰리즘의 감상적 만가(輓歌) 대신 찰리 가르씨아(Charly Garcia)가 1982년에 만든 "No Llores por Mi, Argentina"라는 곡을 들어보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두 곡의 제목은 뜻은 같지만 가사와 멜로디는 전혀 다른 곡이다. 군부정권 말기인 1982년에 발표된 이 곡의 후렴구를 잠시 들어보자. "상처를 입었다고 때문에 울지 마라 / 그치지 않고 피 흘리는 상처 때문에 /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마라 / 매일 매일 너를 더욱 사랑한다". 업템포의 리듬과 시니컬한 이 곡의 마지막 구절은 반어적으로 진솔하다. 보르헤스와 가르씨아에 이어 지금은 누가 또 어떤 정치적 미아가 아르헨티나를 위해 울고 있을까. 그리고 이건 과연 '우리보다 못 사는 다른 나라'의 이야기일 뿐일까.
신현준 2002/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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