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축전>을 계기로 본 남북교류의 전망
정 영 철(민족통일연구소 연구위원)
1. 들어가며
북은 2월 16일(김정일 60회 생일), 4월 15일(김일성 90회 생일), 4월 28일(조선인민군 창건 70회) 등으로 이어지는 ‘꺽어지는 행사’들을 맞이하게 된다 북한은 기념일 등에 대해서 5년주기로 행사를 크게 벌리는 데, 이러한 해를 ‘꺽어지는 해’라고 부르고 있다.
여기에 월드컵 행사 기간 동안 북은 ‘아리랑 축전’을 개최하려 하고 있다. 북이 월드컵 기간에 아리랑 축전을 개최하는 이유는 올해는 남과 북 모두에게 축제의 해이다. 남이 지구인의 축제인 월드컵으로 술렁거린다면, 무엇이며, 또 이것이 현재 교착상태에 처해있는 남북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화해와 협력, 통일로 가는 길에서 올해를 ‘결정적 국면’을 열어놓아야 할 해로 정한 북이 아리랑 축전을 개최하는 목적과 이것이 남북의 화해와 협력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글의 목적이다.
2. 남북관계의 교착상태와 현실조건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의 분단사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이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이나 91년의 남북 기본합의서도 남북관계에 있어 이정표임에는 틀림없으나, 2000년에 일어난 사건보다 더큰 충격과 메시지를 던져주지는 못했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 남북의 대규모 왕래, 방송교류, 다양한 계층간의 교류와 협력 등 여기저기서 남북의 단합과 공동사업이 진행되었다. 그만큼 정상회담의 사회적 파장은 컸던 것이다. 그러나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남북관계는 냉랭하기 그지 없는 관계로 돌변되었다. 과거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남북 당국간의 합의 뒤에는 반드시 냉각기가 어김없이 찾아오곤 했었다. 이번에도 그러한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의 조건과 지금의 조건은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먼저, 당시의 조건은 정부가 남북관계의 일관된 화해?협력의 기조를 지키지 못하고 있었으며, 둘째로 이를 뒷받침할 만한 민간통일운동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동서로 나뉜 냉전의 최전선에서 총칼을 맞대고 있어야 했던 당시의 조건과 지금의 처지는 천양지차라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은 남과북이 어떻게 힘을 모으고 교류와 협력을 진행해나가는가에 따
라 얼마든지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수 있을 것이다.
2000년 이후 잘 풀려나가던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이르게 된 원인은 몇가지로 구분해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북-미관계의 교착이다. 부시 정권의 등장은 클린턴 정권 말기 북-미 정상회담과 북-미관계 개선까지 이를 수 있을 정도의 합의가 있었으나 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게 만들었다. 부시 정권의 등장은 미국의 대북한 정책 - 중요하게는 페리보고서 -을 재검토하고, 북한에 보다 강경한 입장을 드러내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핵과 미사일 이외에 재래석 전력까지를 북-미회담의 의제로 상정하고, 일방적인 북한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MD 체제 구축을 위해 북한과 같은 위협국가의 명분이 필요한 부시 정권의 강경 매파의 주장 그리고 제네바 합의의 약속 수정 혹은 파기의 위협 등은 북한에게 미국과의 대화에 심한 불신감을 조성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북한에 대한 공격 위협과 인권 및 종교탄압국이라는 새로운 ‘덮어씌우기’ 등을 통한 지속적인 대북 불신감의 표현 등은 이러한 대결과 긴장관계를 보다 더 강화시켰다. 둘째, 남의 김대중 정부의 대미 종속성을 들 수있다. 2001년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의 무례함(?)과 남의 대북정책에 대한 제동 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이후로 남의 정부는 북에 대한 독자적인 정책을 수행하기 보다는 미국과의 동맹관계, 긴밀한 협조라는 이름하에 실질적으로는 대북정책에서의 자율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북한이 ‘우리 민족끼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민족공조’를 유달리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남한의 대미종속성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라고 보여진다. 셋째로, 남한 내부의 보수세력의 집요한 ‘딴지걸기’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지난 8.15 행사때 있었언 ‘만경대 파문’을 들 수 있다. 단순한 해프닝에 불과한 조그마한 사건을 마치도 국가가 무너지고, 국가의 이념이 무너질 듯 아우성 쳐대는 야당과 보수 언론 그리고 보수 논객들의 집요함 - 이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비논리성을 국민적 동의라는 이름으로 덧칠한다 - 에 현 정권이 일관성있는 대응
을 하지 못하였으며, 급기야는 임동원 통일부장관의 해임까지 이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현 정권의 국내 실정으로 인한 대국민 정당성의 해체 위기를 들 수 있다. 통일정책은 싫든 좋든 장기적인 사업이며, 또한 정권의 안정성이 일관된 정책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현정권의 국내 실정은 통일정책의 추진과정에서의 돌발사건과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으로 인해 정당성 획득에서조차도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에 덧붙여 현대 금강산 사업의 위기는 국내의 비판적 여론을 강화하고 북한에 대한 대국민 불신까지 안겨주고 있다. 이러한 원인이 주로 남한과 관련된 사항이라면 북한의 책임도 거론할 수 있다. 첫째로, 북한의 남한의 여론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를 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금강산 관광 사업의 경우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것이며, 따라서 자본주의 기업의 경영 원리를 이해함이 없이 계약만을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먼저 챙기려 한다면 남한에서의 비판적 여론에 금강산 사업 자체가 주저앉을 가능성도 높은 것이다. 둘째로, 이유가 어찌되었든 북한의 회담 연기나 서명 연기 등의 회담 불참 등도 이유로 들 수 있다. 남북간에는 지난 50년 이상동안 쌓아온 불신이 두껍게 형성되어 있으며 따라서 매일매일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더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를 형성하기에는 긴 시간이 요구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잘잘못을 따지면서 회담 자체를 일방적으로 연기하거나, 약속된 사업에 대해 ‘시간끌기’를 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의 경우 남한 국민들의 감정상 북한이 보여준 태도를 달갑게 받아들일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지난 만경대 사건에서처럼 남한의 현실적 요구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선전’과 ‘요구’를 무리하게 들이미는 것이 어떠한 결과를 자초하게 될 것인지는 북한이 스스로 반성하고 앞으로의 심각한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현재 남북관계는 교착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교착국면은 다른 요인들도 있겠지만 2001년의 남북 교역액의 감소, 현 정권의 햇볕정책에 대한 국민 지지도의 감소 등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금강산 관광 사업의 위기로 인해 북한 또한 상당한 손실을 감수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현 교착국면은 2001년 들어 새롭게 변형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북한은 지난 1월 1일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올해를 ‘조국통일의 결정적 국면을 열어 나가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6.15 공동선언을 옳게 구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북한의 주장은 신년 공동사설에 대한 일각의 보수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올해에 여러 가지의 다방면적인 남북대화를 제의해올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북한이 말하는 ‘결정적 국면’을 열어 나가는 방법은 무엇이며, 그 구체적인 계기는 무엇일 것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북한의 ‘아리랑 축전’을 주목해 보아야 할 필요성을 발견하게 된다.
3. 아리랑 축전의 목적과 남북교류에의 가능성
올해 북한은 신년 공동사설에서 6.15 공동선언의 철저한 이행과 `민족공조`를 실현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에 어긋나는 온갖 시도들을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9.11 테러 이후 한반도에 드리운 전쟁의 먹구름을 가시기 위해서 공동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이어서 지난 22일 ‘공화국정부 정당 단체 합동회의’를 통해서 3대 호소와 3대 제의를 통해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고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열자고 제안해 나섰다. 이러한 북한의 움직임은 지난 6차 장관급 회담 이후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남북관계를 청산하고 대화와 협력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한다. 특히, 북한은 3대 제의를 통해 ‘올해는 통일의 문을 여는 해’, 6월 15일은 ‘통일의 문을 여는 날’ 그리고 5월 8월까지를 이를 추진하기 위한 ‘운동 기간’으로 설정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리고, 5월부터 8월 사이에 남에서는 월드컵이 북에서는 아리랑 축전이 열리게 된다. 이에 앞서 ‘조선신보’는 올해에 남북교류와 북-미관계가 진전될 것으로 예측하는 보도를 내놓았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볼때 올해에 북이 전방위적인 남북대화를 제의하고 호응해올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낙관을 가지게 한다.
1) 아리랑 축전의 경과
북에서 집단체조는 스포츠와 예술의 결합이라고 불린다. 지금과 같은 대규모 공연은 1958년부터 열렸으며, 이러한 대규모 공연은 지금까지 약 40여차례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에 열린 가장 최대의 공연은 2000년에 있었던 ‘백전백승 조선노동당’이었으며, 당시 미국의 울브라이트 국무장관과 중국의 츠하오텐 국방부장이 관람하기도 하였다. 이 공연은 10만명이 출연하였으며, 피바다 가극단의 기수조 총장이 지휘하였다. 이 공연으로 김수조 총장은 ‘공화국 영웅칭호’를 받았으며, 집단체조는 ‘김일성 상’을 수여받았다. 북은 1971년부터 집단체조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집단체조창작단을 조직,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리랑은 지난 8월부터 추진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이 아리랑은 최초로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지난 11월 17일 중앙방속을 통해서였다. 아리랑은 출연진만 10만여명의 대규모 공연이며, 총연출과 지휘는 피바다 가극단의 김수조 총장이 맡고 있다. 작품의 구성은 서장, 본문(1-4장), 종장으로 구성되었으며, 본문의 4장은 각 장별 10경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열리는 곳은 능라도 5.1경기장이며, 이곳은 1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북 최대의 경기장이다. 아리랑 공연과 연계된 상품으로는 평양시내 관광, 묘향산, 남포, 장수산, 구월산, 개성 등이며, 평양시내 각 극장에서 열리는 교예나 음악제, 가극 등도 관람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관광의 일정은 2박 3일에서 4박 5일이 일반적이며, 연장도 가능하다. 숙박시설은 양각도 국
제호텔, 고려호텔, 서산호텔, 청년 호텔, 양강 호텔 및 그 밖의 여관 등이다. 공연 일정은 4월 29일부터 6월 29일까지이며, 주6회이고 일요일에는 공연을 하지 않는다.
아리랑이라는 명칭은 김정일이 2000년 11월 예술인과의 담화에서 ‘종자의 핵’을 ‘아리랑 정신’에서 찾을 것을 강조하였으며, 이에 따라 아리랑에 대한 여러 가지 연구와 문학예술작품 창작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공연 아리랑과 별도로 ‘강성부흥 아리랑’과 같은 노래들이 창작되어 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 목적과 의의
북한이 이 시점에서 아리랑 축전을 여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몇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흔히들 이야기 하듯이 관광사업을 통한 외화벌이의 목적이 있다. 아리랑 축전은 이름에서도 나타나듯이 정치색을 탈각시키고 민족 공동의 감정과 정신에 부합하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원래의 명칭은 ‘첫 태양의 노래’로 정해졌다고 한다. 이를 김정일 위원장이 아리랑으로 수정하였다고한다. 여기서 태양은 김일성 주석을 의미한다.
그리고 남한 국민들 일반에게 까지 초청의사를 밝히고 있다. 매일 북한의 방송은 ‘Welcome to Pyongyang`을 내보내고 있을 정도로 적극적인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또한, 특등석 300달러, 1등석 150달러, 2등석 100달러, 3등석 50달러로 책정하면서 조금은 비싼 공연료를 받기로 한 것은 달러를 획득하기 위한 것임을 확인해준다. 사실, 현재 북한은 미사일의 대중동 수출길이 막히고, 금강산사업의 위기로 인한 외화 획득의 위기, 조총련 신용회사들의 파산으로 인한 송금액의 중단 등으로 외화획득이 통로가 차단되어 있다. 따라서, 아리랑 축전을 통해 외화를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는 충분한 것으로 보여진다. 북한은 이를 위해 아리랑 축전을 위한 모든 편의들을 제공할 의사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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