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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터넷 한겨레 사회면에 나온 민중가수 --젠--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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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2년 03월 16일 05시 37분 2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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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현장 '힙합전사들' 아우성





봄이 오면 흥얼거려지는 노래가 있다.
최루가스 매캐한 거리에서, 뒷골목 주점에서, 숨죽인 자취방에서, 그렇게 불렀던 노래들이다. 지금도 가끔씩 파업과 시위 현장에서 흘러나오기도 하지만, 1980년대의 그늘을 담은 그 노래들은 오늘의 현실과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더구나 록·헤비메탈·랩·힙합 등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는 더더욱 낯설다. 이제 `민중가요'는 트로트보다 더 잊혀진 이름이다.

그때 그들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김동환(21), 편우혁(20), 김민선(17), 이혜영(19), 이남가(22)씨 등 5명의 `앙팡 테리블'이 고통과 분노와 저항의 노래에 새로운 옷을 입혀 세상에 내놓았다.

80년대에 태어난 그들은 90년대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고 오늘의 `현실'에 뿌리를 내렸다. 사람들은 충격과 환호로 그들과 함께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의 쓰린 가슴을 보듬기 위해 다시 돌아온 21세기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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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무대에서 척박한 현실로 내려온 그들. 왼쪽부터 편우혁(20), 김민선(17), 이남가(22), 이혜영(19), 김동환(21)씨. 본격적인 민중가요 앨범이 될 이들의 2집 앨범이 3월 말 발매된다.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린 지난달 24일 여의도 공원의 풍경 하나.

깃발을 펄럭이며 마포대교를 건너온 2만여명의 노동자들을 한 노래패가 반겨준다. 다섯 명의 앳된 남녀가 무대에 올랐다. 바로 `젠'(Z.E.N)이다.

“각각 처한 상황은 달라도 노동자는 하나입니다. 젠은 이번 공공부문 총파업을 적극 지지합니다.” 딱 부러지게 무대인사를 마치고 그들이 부른 노래는 `파업가'. 이른바 1980년대를 풍미한 `투쟁가풍'이 아니다. 격렬한 댄스와 랩을 타고 흘러가는 힙합 리듬이다.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온다. 그들의 노래는 일방적인 구조조정과 공공부문 사기업화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를 대변이라도 하듯 거침없이 여의도 상공에 울려 퍼졌다. 이런 풍경은 지난 9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재현됐다.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전국여성노동자 대회에서도 그들은 힙합리듬의 `단결투쟁가'를 불렀다.

그리고 다시 거슬러 올라가 시그네틱스, 한통계약직, 캐리어 노조 등 지난해 대표적인 농성 현장에도 그들이 있었다. 민중운동 진영의 크고 작은 집회에도 빠지지 않았다. 투쟁의 현장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노래로, 춤으로 노동자들을 만나왔다.

그래서일까? 젠은 이제 자신들을 `민중문예일꾼'이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이제 젠의 노래를 통해 민중가요와 랩의 절묘한 어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민중가수의 길로 접어든 지 딱 1년 만의 일이다.

그들의 등장은 신선했다. 가창력과 파워 랩으로 상당한 실력을 인정받던 `상업가요판'의 댄스그룹이 민중가수로 변신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도 그만큼 파격이었다.

지난해 4월 발표한 `그날 그 자리에서'는 부평 대우차 노조에 대한 정부의 폭력진압을 규탄하는 그들의 정직한 분노를 담고 있다. 정리해고 칼바람이 몰아닥친 아버지의 모습을 30년 전 전태일 열사의 모습으로 승화시킨 `아빠와 전태일', 안티조선 문제를 다룬 `1등신문' 등의 후속곡도 세상을 향한 이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전태일과 오월 광주가 현란한 댄스와 함께 랩으로 읊조려지는 것은 일종의 충격이었다. 행진곡풍 투쟁가나 포크, 이지리스닝 계열의 서정가요를 민중가요의 전부라고 믿던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노래는 아무래도 자신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젠의 실험이 그저 상업적인 전략에서 나온 해프닝쯤이라고.

그러나 이것은 쓸데없는 걱정이 아닐까? <인물과 사상>에 시작해 <아웃사이더>를 거쳐 최근 노엄 촘스키의 신자유주의 관련 책들을 읽으며 조금씩 조금씩 사회의식에 눈을 떴다는 그들의 말에서 그들이 지향하는 시대정신을 우리는 충분히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젠의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 어쩌면 우리는 젠으로부터 `혁명음악'이라는 새로운 갈래를 얻게 될지도 모르겠다.


저항음윽의 계보는 계속된다


노래를 `운동'으로 삼고 있는 집단의 흐름은 거칠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현장에 밀착해 노동자들의 투쟁의식을 고취하는 고전적인 민중가요 흐름과, 기존의 대중가요계에 진보적인 내용을 담은 노래와 가수를 배출시킴으로써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긴장을 불어넣으려는 흐름, 나머지 하나는 언더그라운드 군을 형성하고 비판적 저항가요를 그 중심으로 삼고자 하는 흐름이다.

첫번째 흐름이 노래를 `통한' 운동으로 민중을 감화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면, 나머지는 노래에 `대한' 운동으로 대중음악계의 지형을 바꿔 놓는 것에 궁극적 목적이 있다.

물론 노래운동을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이견이 있겠지만, 각각의 흐름 모두가 `민중가요'이며 이 두 가지 목적이 모두 존중돼야 함은 분명하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민중가요의 대중화란 측면에서도 중요한 지점이다. 또한 대중가요와 민중가요의 관계에 있어서도 서로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변증법적 구조에서의 재생산이 필요하다.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으로 이어지며 이른바 `청년문화'로 피어난 포크송은 한국 저항음악의 본격적인 시작일 뿐 아니라 민중가요로 재해석되는 접점이다. 또한 한국의 저항음악은 80년대 노찾사, 김광석, 안치환을 거치며 90년대 이르러 넥스트, 윤도현밴드 등 한국적 록음악과 맞물리면서, 혹은 천지인, 이스크라, 메이데이 등 민중가요 록그룹과 접목하면서 그 범위를 점차 넓혀가고 있다.

젠은 여기 어디쯤 위치해 있으면서 그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좁게는 노래운동을 `통한' 노동자·민중의 투쟁의식을 고취시키고 노래운동에 `대한' 새로운 긴장을 형성시키려는 흐름에 복무하는 민중(적) 가수인 동시에 넓게는 한국의 저항음악의 계보를 잇고 있는 대중(적) 가수고, 이 경계를 적절하게 허물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내용과 양식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러한 평가는 젠이 보여주는 시대정신과 저항성이 기존의 관습과 행동방식의 전복까지를 포함해 사회적 저항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들의 저항이 시장의 상품으로 팔리거나 그저 한 시절 트렌드로 머물지 않기 위해서 더욱 정돈된 사회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 또한 덧붙여져야 한다. 무엇보다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새로운 지평'을 활짝 열어젖혔다는 점이다.

이지안/<진보정치> 기자mulu@kdlpnew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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