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자 회 견 문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물질적 보상이 아닌 실질적인 명예회복이다
서론
지난해 말 우리는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과 「의
문사진상규명을위한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깊은 감회를 맛보았다. 그리고 30 여 년에 이르는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정
당성이 국가 차원에서 평가받고,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포함한 관련자들
의 명예를 회복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조처로 받아들였다. 이
는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세우고,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정부
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법률의 시행과정을 지켜보면서 정부에 걸었던 기대와 믿음이
점점 무너지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법안의 법률적 한계는 접
어두더라도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동지들의 명예회복이
'진상의 철저한 규명과 재발 방지'가 아닌 '물질적 보상과 사건의 축소은폐'
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의문의
죽음으로 희생당한 44명의 동지들의 사인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살아 있는
우리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며 다음 사항을 정부 당
국자에 강력히 촉구한다.
1.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독재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의문사 진상규명이 선행되어
야 한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독재정권에 맞서 항거하다 의문의 죽
음을 당한 동지들이 있다. 우리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고 물질적 보상을 받
는 것보다 잊혀져 가는 44명의 동지들에 대한 도덕적 책임과 의리를 다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의문사의 본질적 진상규명에
대한 정부당국의 의지가 확인되지 않는 한 우리는 민주화운동 보상 접수를
유보할 수밖에 없다.
2. 국가보안법은 철폐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난 시기 대한민국의 범법자로서 온갖 고충과 수모를 겪으며 살아
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면이요, 복권을 외쳐댔지만 국가보안법을 비롯
한 민주화운동 전력은 전과기록으로 둔갑하여 우리를 괴롭혀 왔다. 대표적
인 사례인 연좌제로 인한 피해는 당사자 뿐 아니라 2대, 3대를 거치면서 사
회의 부적응자, 낙오자로 전락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악법이 잔존하는 한,
지금 당장 몇 푼의 보상은 받을지 모르나 그 악몽은 언제 또다시 우리를 괴
롭힐 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순간 우리들이 범법자로 또다시
둔갑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제도적 약속이 뒷받침되는 것이 진정한 명예회복
이라고 생각한다. 그 첫걸음이 바로 국가보안법이라는 제도를 정부 스스로
가 철폐하는 것이다.
3. 박정희 기념관 건립은 백지화되어야 한다
박정희는 민주화와 통일의 시계를 반세기가 넘게 퇴행시켰을 뿐만 아니라,
민족경제의 뿌리를 송두리째 뒤흔든 장본인이다. 그러한 인물을 놓고 기념
관 건립이니, 기념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겠다느니 하는 것은 정부가 과연
독재에 항거하기 위해 청춘과 목숨을 내건 이들의 진정한 명예회복에 얼마
만큼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게 만드는 대목이다. 민주화의 걸림돌이었던
독재자의 기념관 건립과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
한 사람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이 과연 양립할 수 있는 것인지 우리는 정부
당국자에게 묻고 싶다.
결론
우리는 정부 당국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 의지를 평가절하 하
는 어떤 의도도 반대하며, 그 의지가 원만하고 합당하게 이루어지기를 간절
히 바라는 바이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화운동 당사자들을 범법자로 낙인찍
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의문사 한 동지 44인
의 철저한 진상규명만이 진정한 명예회복임을 다시 한번 천명한다.
정부는 이제라도 민주화 운동 관련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겸허하게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를 예의
주시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결정할 것이다.
2000년 10월 13일
조선대학교 민주동우회 / 이철규 열사 추모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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