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인터넷에서는 (2) - 벤처기업과 노동조합 』
작성자 : 서정호 (bong@bomul.com)
작성일 : 2001.01.26
몇가지 사례들
지난 1월 15일 아침, 평소처럼 이 신문 저 신문을 보다가 우연히 한 신문
의 1면 하단에 '내일부터 휴간합니다'라는 간단한 공고를 보고 고개를 갸
웃거렸다.
그동안 멀쩡히 잘나오던 신문이 휴간한다는 건 분명히 큰 이슈인데, 그렇
게 어느날 갑자기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짤막한 한 줄의 공지로 넘어간다
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 궁금증은 다음날로 풀 수 있었다. 바로 노조 설립 때문이었다.
정보통신 전문 일간지인 '일간정보(www.dinews.com)'는 기자들이 중심이
되어 노조를 설립했다는 이유로 전격적으로 휴간을 결정했고, 편집부문을
아웃소싱해 신문을 재발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여기에 기자들은 사측에 맞
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1월 26일부로 신문은 재발행되고 있다.)
작년 2월 12일, 벤처기업 최초로 (주)멀티데이타시스템 노조가 결성되었
고, 단협, 협상 결렬, 병특업체 지정 취소, 파업으로 진행되어왔다. 근본
원인은 열악한 근로 조건이었다.
“…수습 3개월 동안 40만원, 수습을 마치면 55만원, 입사 2년이 된 대리
가 65만원이라 는 임금에, 별다른 수당조차 지급되지 않는 초과근무, 야
근, 휴일근무가 벤처, 병역특 례라는 미명으로 자행되고 있습니다.”
또하나의 사례.
컨텐츠 서비스 업체인 디지털밸리는 작년 10월 노조를 결성했다. 대표이사
의 비상식적인 사업전개, 독단적 경영, 회사의 미래 불투명 등의 이유로
대표이사의 2선 퇴진을 요구했고, 여기에 대해 노조설립 추진주체들에 대
한 징계와 해고로 응답했다. 그리고 노조에 가입했던 직원들에 대해 해
고, 정직, 계약해지, 전배 등의 조치를 취해 노조는 있으나 노조원은 없
는 상태가 되었다.
현재 디지털밸리 노조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내고, 강남 논현로에 있는 회사 사무실 앞에서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대립되는 견해들
벤처와 노동조합.
언뜻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두 단어의 결합이 서서히 주목을 받고 있
다.
이를 둘러싼 의견도 대립적이다. 벤처기업도 기업이고, 아무리 스톡옵션이
니 종업원 지주제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자본과
노동이라는 관계와 규정에서 벗어날 수는 없으므로 당연히 노조가 필요하
다는 주장이 한 축을 이룬다.
반면, 벤처는 같이 죽고 같이 산다는 동고동락을 기본으로 하며, 모두가
회사의 성패에 이해관계가 걸린 공동 운명체이므로,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전통적인 산업사회의 범주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벤처기업에 노조가 생겼
다는 사실 만으로도 회사의 주가는 떨어지며 살아남기 힘들다는 주장이
그 반대축을 이루고 있다. 즉 회사가 죽는 데 노조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벤처에서 노조는 절대 안된다 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식의 논리는 성립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노동자가 있다는 것으로 노동
조합의 발생 조건은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고 본다. 노동조합의 단결체인
노총 내에도 노조가 있고, 최근에는 실업자 노조 역시 합헌 판결을 받고
설립이 가능하게 된 것을 생각해볼 때도 이는 당연한 얘기라고 할 수 있
다.
벤처기업에서 노조의 특수성
반면, 벤처기업의 특수성 역시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와의 근본적인 모순과 그것의 결
과물로서 노조라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논리와 구체적으로 개별 기업에서
그 필요성과 필연성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긴 하다. 벤처기업에서 노조의
존재 여부도 그런 차원에서 다소 복잡한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노동자-가진 것은 몸뚱아리 밖에 없는-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지식 노동자라는 것과 기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이윤을 자본가와 함께 일정하게 나눠가지면서 자본가적 속성을 띄게 되면
서 자본의 논리와 어느 정도 이해를 같이 하는 측면이 상당부분 존재한다
는 면이 있다.
이것이 벤처기업과 노동조합의 결합을 낯설게 보이게 하는 점이라고 생각
한다. 실제 이런 지식 노동자들은 전통적인 경제, 이른바 구 경제하의 기
업 노조에서 보이는 연대감, 일체감 등이 상대적으로 약하며,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프롤레타리아라기 보다는 부르조아적 속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다. 이는 단순히 의식적인 측면만 아니라 그 의식을 형성하게 되는 물질
적 기초가 되는 존재 자체가 양자의 속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하
기도 한다. 그리고 소수의 인원으로 시작하여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조금
씩 회사를 키워나가는 벤처기업의 일반적인 발전 과정도 서로를 구분지어
야 하는 노조라는 것을 낯설게 하는 큰 요인이기도 하다.
이 자리에서 더이상 학구적인 면으로 들어가 논의를 하기는 힘들다. 단지
현재 노조와 관련해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문제의 발단이 대부분 경영자의 부도덕성이나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비
롯되고 있다는 것이다.
벤처기업의 가장 큰 장점이자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도덕성에서
문제가 있을 때, 그리고 이것이 조직내에서 합리적으로 수용되지 못하고
정당한 문제제기를 억압하고, 해고, 정직 등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억압하면서 문제가 더 커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필자는 앞으로도 이런 식의 문제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초기
벤처기업이 대부분 피끓는 20~30대 초반 중심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이루
어졌다면, 시간이 지날 수록 대기업에서 분사하거나 기존 기업에서 활동하
던 인력들이 꾸준히 벤처기업으로 흘러들면서 기존 기업이 갖고 있던 부정
적인 면까지 함께 흘러 들어올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가능하기 때문이
다.
물론 기존의 젊은 벤처기업이라고 해서 경영진이 이런 구시대적 노조관을
갖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할 수 없고, 회사도 커지면 커질
수록 충분히 발생할 개연성이 크다고 본다.
따라서 현재 단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벤처기업의 노조 문제는 앞으
로 서서히 하나의 사회 문제 내지는 흐름으로 형성될 것이라고 본다.
비슷한 모습의 미국 벤처기업과 노조
미국에서도 IT 기업에서 노조는 낯선 문제인 것 같다.
IT 기업에서는 최초로 이타운닷컴 (etown.com)이 노조설립 신고에 들어간
것을 비롯해 대표적인 인터넷 기업인 아마존에서도 노조 결성을 추진 중이
다. 과다한 근로 시간과 저임금 등 열악한 근로환경 개선이 주된 이슈이
며, 회사에서는 이러한 시도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더구나 시대의 첨단을 달린다는 IT 기
업에서 기업주의 노조관은 예의 구태의연함을 못 벗고 있는 것 같아 쓴웃
음을 짓게 한다.
첨단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해서 그 의식까지 시대를 앞서가지는 못함을
느낀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라 생각은 하지만 말이
다.
벤처다운 열린 시각으로
벤처기업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때가 불과 몇년 되지 않은 국내 상황에
서, 그리고 이러저러한 주객관적인 조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노조 설립
이라는 것이 무엇보다 회사의 가치 하락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
가장 큰 우려 사항 중의 하나이다.
밤낮을 같이 하며 똘똘 뭉쳐도 될까 말까한 판에 노조가 왠말이냐라는 것
이 주주나 외부의 부정적인 시각인 것도 사실이다. 이 점이 노조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지 않으면서도 노조 설립에 대해서 회사의 입장에
서 선뜻 인정하기 어려운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벤처가 구경제의 관습과 사고를 혁파하면서 새로운 경제 흐름을 만
들어내며 신경제라는 거대한 흐름으로 바꾸어 나가듯이, 노자 관계에 있어
서도 보다 새로운 시각과 열린 의식으로 접근하기를 바란다.
필자는 노조라는 조직은 노조 자체의 역량과 조직력이 일차적인 문제이
고, 그것이 제대로 형성된다면 사원들의 소속감이나 주인의식 고취에 도움
이 된다는 생각한다.
자본가와 노동자, 경영자와 종업원은 서로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과 처지에
서 대립할 수 밖에 없지만, 노조는 그 대립을 중개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다른 시각과 이해를 중개하고 타협하고 협조하면서 기업을 더욱 튼실히 만
들어나가고 그 과정에서 회사에 대한 애정과 소속감을 더욱 강하게 만들
어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불만이 있어도 개인적인 결단에 대부분 기대어야 하는 회사와 서로간의 불
만과 제안과 요구들을 공식적으로 협의하고 토론하고 협조하는 회사는 그
생산성에서 큰 차이가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노조가 있다 해서 이런 식으로 회사가 자연스레 잘 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 과정에서 만만찮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노조가 절대
선이 아니듯, 그 내부에서는 온갖 부정적인 요소들이 잠복해 있으며 그것
이 회사 경영에 악영향을 미칠 개연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그러나, 노조가 있든 없든 어떤 식으로든 그 나름의 문제는 존재하기 마련
이며, 그것이 노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인위적으로 막을 명분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온갖 시행착오와 무수한 토론과 대화를 거치면
서 회사도 개인도 더욱 성숙해지 고 견실해지는 것이 아닐까.
서로가 서로의 존재와 권리를 존중해주는 문화 속에 진정한 경쟁력, 조직
과 개인의 조 화와 발전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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