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 마당 병아리들은 어미닭을 졸졸 따라다녔다. 병아리들은 위험에 대비하는 본능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눈동자는 맑았지만 생명체로 버티기 위해서 만반의 교육을 받고 나온듯한 두려움...어린 병아리들이 놀라워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어린 생명체의 본능 속에 입력된 두려움증 인식은 몸통이 커가면서 비례되는 것 같다. 병아리의 모습을 잃어가기 시작하면서 닭은 두려움을 드러내며 몸통 둘 바를 몰라 안절부절해한다. 성숙한 동물에게서 당당함이 보기에 좋다. 가끔 수탉이 도전적으로 보여주는 긴꼬리 추켜세움같은 모습들을 보면 가축이지만 자존심이 강한 것 같아 보였다. 긴 다리 위에 작은 얼굴, 꼿꼿하게 고개를 쳐들어올릴 때 함께 따라 올라가는 빨간 벼슬은 아름답다. 웬지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을만한 위엄마저 보여준다.
닭들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같은 느낌들....닭모이를 주는 사람들의 속셈 같은 것들을...한순간도 긴장을 놓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닭모이를 주는 사람들은 닭고기를 즐기리라...이런 지당한 현실 속에 방치된 자신들의 운명을 체념하고 받아들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매순간 먹이를 찾아다닌다. 기름진 살고기를 제공하는 일에 열중한다.
가끔 한쪽 다리를 절반쯤 들고 뭔가 곰곰히 생각하는 암탉을 보게 된다. 어떤 갈림길에서 다리를 옮기려는 순간 멈추고 생각에 골똘한 생명체의 모습...
날개를 사용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지도 모른다. 계절이 지나기도 전 닥쳐올 운명의 순간 숨막히는 모가지를 걱정하는 지도 모른다. 어떤 닭들은 모가지 비틀리는 대신 칼이나 끓는 물속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기도 한다는데...이런 생각에 몰두하는 지도 모른다. 끌끌거리는 목청으로 혼잣말을 하는 것 같다.
'존재는 길고 죽음은 순간이다.' 결코 감기지 않는 까만 눈동자 동그란 가축의 눈망울은 늘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움막에서 아무 생각없이 쿨쿨 잠들어있는 돼지는 햇볕 마당 보다 훨씬 편안하다. 어둡고 편안하고 더러웠다. 미래도 과거도 존재도 생각하지 않는 돼지들이 사는 곳, 먹고 골골거리다 잠드는 것으로 채워도 별탈없이 지나가는 그들의 삶, 맛 모르고 먹는 게걸스러움, 꿈꾸지 않고 잠드는 평온, 의식 부재, 자존심 부재, 가치관 부재, 모든 것이 만족스러움, 두려움 없음, 미래 없음... 돼지!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치장하는 일?
멋에 관대한 그들의 뒤뚱거림, 맛에 관대한 잡식성 식욕, 이런 가축들의 무표정은 내 삶에 용기를 준다. 불행이 없기에 행복도 없는 저 무표정! 슬픔 앞에서도 낯선 그들의 표정, 고민이 낯설기만 한 그들의 평화를 바라보면서 나는 가난한 철학자가 된다.
휴식도 음식도 충분하지 않지만 내 삶이 비로소 자랑스러워진다. 내 슬픔이 그들의 배부름보다 아름답게 여겨진다. 돼지 모가지에 진주 목걸이 걸어주는 일에 나의 삶이 바쳐져 왔을지라도 억울할 일만은 아니다. 가축 모가지에 걸린 희극을 지켜보는 것 또한 나에게 예술행위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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