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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퍼옴]폭력을 비판하는 당신에게
번호 618 분류   조회/추천 333  /  0
글쓴이 삐리리    
작성일 2001년 04월 13일 15시 23분 39초
오마이 뉴스에서 퍼온 글입니다 (기자이름 생략)


폭력을 비판하는 당신에게

(정당한 폭력에 대해)


요즘 화염병 등 폭력시위로 인해 노동자와 학생의 집회에 대한
정부 및 언론, 기타 시민의 비판이 강하다.
게다가 상인 모임인 `종로를 사랑하는 사람들(대표 한기영)'은
폭력시위로 손해를 봤다면서 민주노총을 상대로 연대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폭력은 인간의 의사를 강제적으로 제한하고 침해한다는 점에서
내재적으로 부정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만,
폭력사용은 그 목적의 정당성에 따라 정당화될 수 있다.
물론 '폭력사용 목적 정당성'이 곧 모든 종류의 폭력
(반인류적 폭력 즉 학살, 강간 등)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즉 모든 폭력 방법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사회적, 도덕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수준과 방법을 갖춘 폭력을 정당화 할 것이고,
이러한 폭력의 불가피성을 입증할 것이다.
우리가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의 폭력(일제지배자 암살, 테러 등)을
존경하고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이를 증명한다.
또한, 반대로 '목적의 정당성'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폭력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광주민중민주항쟁을 무참히 짓밟은 군부세력이
단죄의 대상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시위대의 폭력에 대한 비판은
폭력자체에 대한 비판이 거의 대부분이다.
'폭력을 사용하지 말고 합법적인 평화시위를 하라'
'시위 현장에서 폭력을 뿌리 뽑자' 등등
지금의 이런 주장들은 폭력사용 목적의 정당성을
거의 고려해 보지 않은 체, 우선 폭력자체를 비판한다.

만약 지금의 시위대 폭력에 대한 비판이 진정으로 폭력 자체에 대한
비판이라면, 시위대 폭력 비판자들은 국가 폭력도 마찬가지로
본질적인 의미에서 비판해야 할 것이다.
특히 반인간적인 사형제도가 존재하고, 양심수들이 무수히 갇혀 있고
양산되는 현 상황에선, 더욱 더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위대 폭력 비판자들은 이런 국가-정부의 폭력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물론 국가의 폭력은 우리가 그 존재가 합당하다고 합의한 것이어서
정당화되고 합법적인 것이고, 시위대의 폭력은 불법적인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만약 시위대 폭력 비판자들이 위와 같이 주장한다면,
그들은 이미 '목적의 정당성에 따라 폭력이 정당화 될 수 있다'라는
명제를 인정한 것이다.

이렇게 시위대 폭력 비판자들이 위의 명제를 인정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목적의 정당성'을 생각해 볼 차례이다.
노동자 민중으로 구성된 시위대는 일방적 구조조정 저지,
정리해고 분쇄 등 대부분 그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책임자들은 아무런 사회적 책임도지지 않은 체,
오히려 기득권을 강화하려고만 하고 있다.
삶의 벼랑으로 내몰린 노동자 민중들은 거리로 나와
하소연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그들의 요구를 귀담아 들을 생각은 하지 않고,
노동자 민중에게 고통을 전가시키는 일방적 정책만을 추진하고,
가진 자들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국가-정부의 정당성은 정권이 구성원(국민)의 자발적 동의에 의해
창출된 것만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정책이 그 시대의 과제를 얼마나 구현하는가와
정책수립과정에서, 구성원(국민)의 자발적 동의를 수렴하는
절차와 형식의 공정성과 자유를 보장해야만
비로소 국가-정부의 정당성이 확보된다.
이렇게 볼 때 지금의 정권은 오히려 정당성이 희박해 지고 있고,
노동자 민중의 시위는 정당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 민중의 시위는 그들의 생존권을 앗아가려는
국가-정부의 거대한 폭력 앞에 대항하는 생존을 위한 싸움인 것이다.

즉 노동자 민중은 '폭력사용 목적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반대로 국가-정부는 지금의 현실에서
정권의 정당성은 거의 보이지 않으며,
구성원(국민)이 정권창출 과정에서 부여한
폭력사용 목적의 정당성도 거의 상실했다.
또한 노동자 민중 시위대는 수세적, 방어적 폭력을
다시 말해 불가피한 입장에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화염병 사용 등으로 폭력시위를 한다고
노동자 민중의 시위를 비판하는 것은
정당성을 상실해 가고 있는 정권에 대한 옹호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평화적 시위의 필요성과 절실함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위 과격화 양상의 배경에는
그 만큼 노동자 민중이 처참한 처지에 놓이게된 현실과
전경의 강압적 시위 진압 경향이 있다.
(정부가 새로운 시위 문화를 정착시킨다고 자랑하면서
내보인 여경 자리를, 어느덧, 지난 10일
부평 대우자동차 공장 사태에서 보듯이
518을 다시 보는 듯한 무차별 폭력 진압을 일삼는 전경이
대신하고 있다.)

노동자 민중들은 생존권을 짓밟으려는 국가-정부의
거대한 폭력 앞에서 겨우 시위로 대응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폭력들의 충돌에 대해서는
폭력 사용 정당성이 거의 없는 국가-정부에서 책임을 져야 하며,
폭력 사용 정당성을 가진 노동자 민중은 정당한
그리고 불가피한 폭력을 행한 것이다.

이 두 폭력을 잠재우고 평화를 찾는 방법은
국가-정부가 노동자 민중의 요구와 주장을 귀담아 듣고,
국가-정부의 정당성을 되찾는 길뿐이다.

2001/04/13 오후 1:37:13
ⓒ 2001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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