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집결지에서 무릎꿇고 호소하는 여성들. 출처: 지선(@jisun0621)
4월 19일, 사람 너덧이 한사람을 둘러싸고 무릎을 꿇는다. 뭔가를 애원하느라 흙바닥에 무릎을 끌며 기다시피 하는 사람은 전부 팔다리가 가느다란 여자, 꼿꼿이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사람은 두툼한 몸을 가진 남자다. 여자들은 남자를 향해 계속 말을 건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들이 뭐라고 말하든 무응답으로 일관한다. 그는 입술을 꽉 다문 채 핸드폰을 들어 자기 아래에 있는 여자들의 얼굴을 촬영해 간다. 다급한 마음에 남자의 바짓자락을 잠시 붙잡은 한 여자는 여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걸어가는 다리에 맥없이 질질 끌려가다 무릎에서 피가 났다.
그 남자,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를 방문한 파주시 공무원, 성매매집결지폐쇄 TF 팀장은 그날 무릎 꿇었던 여자들을 공무집행방해죄로 고소하겠다고 경찰에 전달했다. 5월, 그렇게 용주골 여종사자 모임 자작나무회 대표 A씨와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 여름이 공무원에 대해 폭행 또는 협박하거나 위계(爲計)를 사용해 직무수행을 방해한 죄, 보다 정확히는 '무릎 꿇고 말을 건 죄'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된다.
파주시는 2023년 초부터 1년 안에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를 강제 폐쇄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용주골 여종사자들을 폭력과 착취에 시달리는 ‘성매매 피해자’로 규정한 파주시는 피해자의 인권 회복을 위해 성매매 집결지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성매매 피해자로 규정된 바로 그 여성들이 용주골 여종사자 모임 자작나무회를 조직하며 강제 폐쇄에 저항하자 파주시는 그들을 업주에게 조종당한 여성들, 혹은 말할 권리가 없는 범죄자들로 치부하고는 “불법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성매매집결지폐쇄 TF 팀장 앞에 무릎 꿇었던 날에도 자작나무회 대표는 그저 말하고 있었다. 집결지에 사는 여자들에게도 사정이 있다고, 여기 있는 여자 중에 누구는 아픈 가족을 부양하고, 누구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고, 누구는 아파서 다른 일을 못 한다고, 다 성매매 집결지에서 일하게 된 사정이 있는데 이렇게 하루아침에 내쫓으려고 하면 어떡하냐고, 면담 날짜를 잡아서 우리 이야기를 좀 들어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차차 활동가 '여름'은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묻는 동료에게 “처음엔 우리가 안 보이는 척하는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라서 멋진 말이 하나도 안 나왔다”고 전했다. “왜 피해자 말을 안 들어주고 도망가세요? 어디 가세요? 성매매 피해자라고 했잖아요. 피해자를 위한다면서요. 근데 왜 피해자가 무릎 꿇고 면담 날짜 잡아 달라고 하는데 그냥 가세요?” 대답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거의 독백이나 다름없게 된 이 질문들을, 그는 무릎을 털고 일어나게 될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다.
나는 성매매집결지폐쇄 TF 팀장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 그 또한 다른 사람 모두가 그러하듯이 힘들고 아프고 기쁘고 소중한, 가끔은 잠시 찬란하기까지 한 인생을 살고 있을 거라 짐작할 뿐이다. 나는 그 사람 개인보다는 파주시라는 조직이 더 크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공무원도 생계를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노동자다. 그가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에서 하는 행동에는 그의 의견과 완전히 같지는 않은 조직의 의견이 더 중하게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몸을 통해 현현한 파주시가 성매매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서는 어떻게든 증언해야겠다고 느낀다. 개인의 몸과 성별에서 비롯되는 인상을 떼어 놓고 4월 19일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 유감이지만, 그렇지만 그건 정말 그린 듯한 남자의 모습, 권력의 모습, 곧 국가의 모습이었다. 사회변혁을 꿈꾸는 자들이 일평생 전력을 다해 거부하는, 그러나 거부하기 어려운 역사로 반복되는 모습 말이다. 슬픈 여자, 화난 남자. 빼앗기는 여자, 파괴하는 남자. 말하는 여자,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남자. 포기하지 못하는 여자, 촬영하는 남자. 그리고 끝까지 대드는 여자를 처벌하기로 결정하는 남자…….
1965년, 파주시의 전신인 파주군은 전국 최초로 파주군 성병관리소 조례를 제정했다. 미국과의 외교, 미군의 건강 관리를 위해 한국 여성에게 성병 검진을 강제하며 성병에 감염된 여성들을 성병관리소에 강제 수용하기 위해서였다. 그 과정은 토벌이라고 불릴 정도로 폭력적이었고, 성병관리소에 감금된 여성들은 페니실린 남용 등의 부당한 처우를 겪으며 생명을 위협당했다.1) 성병 검진을 거부하는 여성은 윤락행위등방지법으로 처벌받았다. 기지촌 여성들은 “윤락행위”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검진을 받지 않고 윤락행위”를 했기 때문에 즉결재판을 받았다.2)
성매매집결지폐쇄TF 팀장의 바짓자락을 붙잡은 여성. 출처: 지선(@jisun0621)
중요한 건 성매매 여부가 아니라 국가의 허용 여부다. 성매매 사건에서 피해자와 범죄자는 그렇게 나뉜다. 이제 파주시는 파주시가 허용했던 성매매 집결지, 기지촌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를 새삼스럽게 불법이라고 낙인찍으면서 용주골 여성들을 파주시의 행정에 순응하는 피해자와 그렇지 않은 범죄자, 둘 중 하나로 재분류하려 한다.
그래서 작년 8월 11일, 용주골 여성의 집과 직장을 강제 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투쟁 분위기가 고조되던 여름, 자작나무회 대표 A씨는 갑자기 경찰 단속을 맞았다.
평소 자작나무회 대표로 활동하며 주변을 경계하던 A씨는 단속 상황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껴 손님과 성매매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지만 소용없었다. A씨 가게 업주는 경찰에게 "순순히 성매매 혐의를 인정하고 협조하면 업주만 처벌하고 아가씨는 처벌하지 않겠다"라는 구두 약속을 받고 혐의를 인정했으나, 경찰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는 결국 성매매 처벌법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검사는 초범인데도 이례적으로 무거운 벌금 400만 원을 구형했고, 재판부는 성매매 행위를 한 범죄자라고 판단한 선고유예 판결을 A씨에게 내렸다.
이는 용주골 여성을 ‘성매매 피해자’로 규정한 파주시의 행정과 무척 대비되는 결과다. 경찰 단속 당일 여러 업소 중 A씨가 있었던 업소만이 단속 대상이 된 점, 용주골 ‘성매매 피해자’를 처벌하지 않는 흐름 속 A씨가 강력 처벌 대상이 된 점, 어째서인지 “성매매 행위가 있었다”고 A씨와 엇갈린 진술을 한 성 구매자는 기소유예로 선처받은 점 등.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A씨가 성매매 피해자 위치에서 탈락해 범죄자가 된 것은 공권력에 저항하는 용주골 여성들에게 의미심장한 교훈을 준다.
파주시는 파주시가 시키는 대로 자립 지원을 받을 피해자의 대화 요청에는 언제든 응할 용의가 있다.3) 그런데 자작나무회 여자들은 그런 ‘피해자’가 아니다.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큰 소리 내지 않고 유순하게 가부장 그리고 국가의 요구에 따르기, 성매매하라면 하고 말라면 말기-에 저항하는 여자들, 자작나무회 대표 같은 여자는 범죄자로 처벌받게 될 것이다.
다시 2024년 5월, 공무집행방해죄로 고소당한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팠습니다. 무릎이 아니라 마음이. 자기들이 피해자라 정해 놓은 나를 이렇게까지 무시할 수 있는지. 상처받았습니다. 어떻게 얘기를 들어달라 무릎을 꿇고 사정한 것이 공무집행방해죄가 되는지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 저희의 이런 상황들이 알려지지 않고 매번 묻히는지, 우리는 목소리도 내면 안 되는 사람들인지 억울하고 힘듭니다.”
4월 19일 현장을 촬영한 영상은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SNS4)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박정미, 한국 기지촌 성매매정책의 역사사회학, 1953-1995년: 냉전기 생명정치, 예외상태, 그리고 주권의 역설, 2015, <한국사회학> 49권, 2호, p20-21
2) 위와 같음, p19
3) 파주시는 성매매 피해 여성의 대화 요청에 언제든 응할 용의가 있으며, 법률, 의료 지원은 물론 탈성매매 등 자립 지원에 관한 상담은 언제나 가능합니다.” 「(해명자료)파주시 성매매 집결지 폐쇄는 재개발 사업과는 무관하며 피해자 면담과 자활지원을 통해 인권보호를 최우선으로 하여 추진하고 있습니다」 중에서
4) 인스타그램 링크 https://www.instagram.com/reel/C6Ggc6_JIsj/?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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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리. 무늬글방 지기. 2017년부터 돈 받고 글쓰기 시작했다. 『눈물에는 체력이 녹아있어』와 『엄살원』(공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