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발전이란 무엇인가?

출처: Mohamed Nohassi, Unsplash+

1776년 애덤 스미스가 자신의 대표 저작에서 한 국가 정책의 바람직한 목표를 부의 증가로 규정했을 때, 그는 서로 다른 계급 간 소득 분배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데이비드 리카도 역시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 개선에 무관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미스와 리카도는 소득 분배 문제를 제쳐두고 국가의 부, 즉 자본 축적 규모에만 집중했다. 이 자본 규모가 결국 국민소득 규모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들은 소득 분배를 정책의 대상이라고 보지 않았다. 실제로 고전파 정치경제학은 일반적으로 임금이 생계 수준에 묶여 있다고 보았다. 맬서스의 인구론에 따라 생계 수준을 웃도는 임금 상승이 인구 증가율을 높이고, 그 결과 노동 공급이 수요보다 더 빠르게 늘어나 다시 임금을 생계 수준으로 끌어내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득 분배 개선은 노동자 계층의 생활 습관에 달려 있을 뿐 국가 정책의 문제가 아니었고, 국가는 자본 축적과 그에 따른 소득 증가를 촉진하는 역할만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고전파가 부와 소득을 정책의 핵심 목표로 삼은 이유는 국가가 소득 분배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반면 국가가 소득 분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도 오직 소득 규모에만 집중해야 하며, 심지어 전체 소득 증가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소득 분배 악화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낼 뿐이며, 고전파 전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는 자본이 세계화된 반면 노동은 각국에 묶여 있기 때문에, 더 높은 축적률을 달성하려면 다른 나라보다 자본에 더 매력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낮은 임금은 이런 매력적인 환경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국가는 더 높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 노동자 임금을 억제하고 노동권을 제한하는 반노동 정책을 필연적으로 추진한다. 결국 경제 발전을 오직 GDP 성장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고전파 정치경제학의 관점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으며, 대다수 국민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는 독점 자본의 이데올로기, 다시 말해 독점 자본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할 뿐이다.

GDP 성장과 경제 발전을 동일시하는 이런 이데올로기적 입장은 브레턴우즈 체제 기관인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집요하게 확산시켰다. 그리고 이 관점이 지배력을 확보하면서 개발경제학 분야에서는 이들 기관이 주도한 이론적 반혁명이 전개됐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많은 진보 성향 경제학자들까지도 이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일부는 이것이 바로 고전경제학의 가르침이라고 잘못 이해하기도 했다.

따라서 GDP 성장과 경제 발전을 동일시하는 관점을 거부하는 일은 모든 객관적 비판 사고의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이는 IMF와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뿐 아니라 글로벌 사우스 국가 정부들까지도 각국의 경제적 성공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를 전면적으로 거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인도 정부들은 GDP 성장을 경제적 성공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 왔고, 지시경제 체제였던 이전 시기보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GDP 성장률이 더 높아졌다는 점을 근거로 신자유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소득 불평등과 절대적 영양 빈곤이 훨씬 심화했다는 사실에도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인도 전체 국민소득 가운데 상위 1퍼센트가 차지한 비중은 독립 당시 12퍼센트였고 지시경제 체제 시기였던 1982년에는 6퍼센트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기에 들어 이 비중은 다시 상승해 2022~23년에는 23퍼센트를 넘어섰다. 이는 지난 100년 동안 가장 높은 수준이다.

마찬가지로 농촌 빈곤 기준으로 옛 계획위원회(Planning Commission)가 사용했던 ‘1인당 하루 2,200칼로리 섭취 여부를 기준으로 보면, 이 수준에 미치지 못한 농촌 인구 비율은 인도에서 빈곤 연구가 시작된 1973~74년부터 1993~94년까지 대체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후, 이 비율은 1993~9458퍼센트에서 2011~1268퍼센트로 상승했다. 2017~18년에는 심지어 80퍼센트를 넘어섰다. 수치가 지나치게 높게 나타나자, 인도 정부는 해당 연도 자료를 공개 영역에서 삭제했고, 이후 데이터 수집 방식 자체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도시 빈곤 기준인 ‘1인당 하루 2,100칼로리 섭취 여부를 기준으로 해도, 이 수준에 미치지 못한 도시 인구 비율은 1993~9457퍼센트에서 2011~1265퍼센트로 증가했다(U. 파트나익, 『빈곤 문제 탐구』(Exploring the Poverty Question)). 하지만 이런 사실들은 인도가 신자유주의 시기에 매우 인상적인 경제 발전을 이뤘다는 주장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취급된다.

경제 발전의 지표로 GDP 성장만을 강조하는 인도 정부 논리의 황당함은 또 다른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발표한 추정치에서 최신 연도의 방글라데시 1인당 GDP가 인도를 근소하게 앞질렀다고 밝혔다. 경제 발전을 정의하는 IMF 기준을 따른다면, 오늘날 방글라데시가 인도보다 약간 더 발전한 나라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도 인도 총리부터 아래까지 힌두트바(Hindutva) 세력 전체는 방글라데시인의 인도 불법 유입 문제를 연일 떠들어 왔고, 일부는 이들을 단순히 방글라데시로 밀어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은 분명하다. 왜 더 발전한 나라에서 덜 발전한 나라로, 혹은 발전 수준이 비슷한 나라 사이에서 대규모 인구 유입이 발생하겠는가. 따라서 힌두트바 세력이 주장하는 방글라데시인의 대규모 인도 유입이 사실이 아니거나, 아니면 정부가 절대적 기준처럼 내세우는 1인당 GDP가 경제 발전을 보여주기에 턱없이 부족한 지표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경제 발전의 지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여기서 그 질문에 대한 완전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겠다. 다만 브레턴우즈 체제 기관들이 현재 장려하고 인도 정부도 받아들이는 1인당 GDP보다 분명 더 나은 하나의 지표를 예시로만 언급하겠다. 국민에게 정치 권력을 부여하는 민주적 헌법을 가진 나라라면, 국민의 경제적 역량 강화 역시 경제 발전 개념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인구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 대중의 평균 실질소득은 전체 국민 평균 실질소득보다 경제적 역량 강화를 더 잘 보여주는 지표다. 후자의 경우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상위 1퍼센트 혹은 상위 10퍼센트와 나머지 국민 사이의 거대한 격차 확대를 가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 대중의 평균 실질소득을 추정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극복할 수 있다. 우선 출발점으로 전체 인구 하위 80퍼센트 혹은 90퍼센트의 평균 실질소득 증가율을 한 나라의 경제 발전 지표로 삼을 수 있다. 이렇게 했을 때 어떤 차이가 생기는지는 한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1982년부터 2022~23년까지 40년 동안 실질 국민소득이 연평균 6.5퍼센트 성장했다고 가정하고,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의 소득 분배 추정치를 적용하면, 인구 상위 1퍼센트의 1인당 실질소득 증가율은 연평균 5.5퍼센트로 계산된다. 반면 하위 99퍼센트의 증가율은 고작 1.5퍼센트에 불과하다. 전체 평균은 2퍼센트다. 1.5퍼센트와 5.5퍼센트 사이의 격차는 전체 GDP 성장률이 발전 지표로 얼마나 왜곡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어쨌든 국민에게 정치적 권한을 부여하는 헌법을 내세우면서도, 국민의 경제적 역량을 약화하는 경제 체제를 경제 발전에 성공한 체제라고 평가하는 모순은 노동 대중의 평균 실질소득 증가를 발전 지표로 삼는다면 극복할 수 있다.

B.R. 암베드카르(B. R. Ambedkar)는 헌법을 제헌의회에 제출하며 마지막 연설에서 바로 이 모순을 지적했고, 이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면 정치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정당하게 경고했다. 그리고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은 경제 발전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공적 담론 속에 도입하는 일이다.

[출처] What is Economic Development? | Peoples Democracy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그는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 몸담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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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소득 불평등 경제 발전 GDP 성장 노동 대중 실질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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