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화 속에 놓인 쿠르드인들

쿠르드인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 최전선에 서 있다. 시리아에서 배신당한 뒤에도 또 다른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망명한 페슈메르가(peshmerga) 게릴라 전투원들이 산악 기지에 모여 있다. 출처: 맷 브룸필드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했을 때, CIA의 지원을 받은 쿠르드 무장세력이 이란에 진입해 이슬람공화국 정권 전복을 도울 준비를 하고 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런 결과가 현실이 될 가능성은 애초부터 낮았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서방이 쿠르드인을 이용해온 오랜 역사의 최신 장이 인접 지역인 로자바(Rojava), 즉 시리아 쿠르디스탄(Syrian Kurdistan)에서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자바의 쿠르드인들은 수년 동안 서방의 이해관계에 맞춰 이슬람국가(ISIS)와 싸웠다. 하지만 의미 있는 정치적 자치를 이루려던 장기 목표는 지난 1월 무너졌다. 미국이 친서방 성향의 이슬람주의 시리아 정부가 시리아 쿠르드 세력을 공격하도록 사실상 승인했기 때문이다. 테헤란에서 사형수로 10년을 보낸 뒤 망명한 이란계 쿠르드 언론인 아드난 하산푸르(Adnan Hassanpour)쿠르드인들은 수년 동안 서방의 반ISIS 연합에 협력했지만, 하루아침에 버림받았다이런 경험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제 서방은 다시 한번 쿠르드인들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미국의 최근 관심은 이라크 쿠르디스탄 자치정부(Kurdistan Region of Iraq·KRI)에 은신처와 군사기지, 난민촌 네트워크를 구축한 이란계 쿠르드 망명 정당들에 집중돼 있다. 이들 조직은 미국의 대이란 행동을 환영하는 강경 쿠르드 민족주의 세력부터, 미국과 이스라엘이 쿠르드인의 열망을 이용하려는 시도가 자신들의 운동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는 좌파 세력까지 다양한 정치 성향을 포괄한다.

하지만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쿠르드인들은 대체로 한 가지 현실 인식에서는 일치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개입은 오랫동안 고통받아온 자신들의 민족에게 막대한 위험을 안길 뿐, 얻을 수 있는 보상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습은 228일 시작됐고, 지금까지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이란은 이라크 쿠르드 지역을 700차례 넘게 공격했다. 이는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어떤 나라보다 많은 공격 횟수다. 두 달 동안 인터넷이 차단된 상황에서도 이라크에 망명한 이란계 쿠르드인들은 폭격 위험을 무릅쓰고 최대 1,000킬로미터에 이르는 이라크·이란 국경까지 차를 몰고 가 반대편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하려 했다. 이란에 있는 가족들이 자신의 활동 때문에 고문과 심문을 당했다고 밝힌 망명 쿠르드 활동가 키완(Keywan)은 여러 대의 전화를 거쳐 통화를 연결하고, 이란 정보기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가족 한 명당 통화 시간을 20초 이내로 제한했다고 말했다.

이라크 술라이마니야(Sulaymaniyah)에 있는 이란계 쿠르드 반정부 정당 본부가 이란 공습을 받은 뒤의 모습.

이란 쿠르디스탄민주당 집행위원회 소속 하산 샤리피(Hassan Sharifi)는 순교자들의 초상화가 걸린 당 본부에서 우리는 이 전쟁을 시작하는 데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고, 전쟁을 계속하거나 멈추는 데도 아무 역할이 없다그런데도 이란은 매일 우리를 폭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4,000만 명의 쿠르드인은 튀르키예, 이라크, 시리아, 이란으로 분할된 조상 대대로의 고향 전역에 흩어져 살아간다. 이라크에서는 약 600만 명의 쿠르드인이 두 차례 페르시아만 전쟁 당시 미국과 협력한 뒤 불안정한 자치를 얻었다. 국경 너머 이란에서는 약 1,000만 명의 쿠르드인이 여전히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 정치적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 2022년 이란 쿠르드 여성 지나 마흐사 아미니(Jina Mahsa Amini)가 이슬람 정부의 도덕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은 쿠르드 시위대가 전국적인 여성, , 자유운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 운동은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내지 못했다.

27세의 망명 이란계 쿠르드인 나지르(Nazir)는 이란 쪽 산맥을 바라보며 소총을 손에 든 채 나는 여성 혁명에 참여했고, 정부가 거리에서 시위대를 총으로 쏘는 모습을 직접 봤다무방비 상태의 사람들이 자유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왔지만, 정부는 AK-47로 답했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은 그를 이라크 쿠르드 산악지대에서 활동하는 무장 조직 페슈메르가(peshmerga)에 합류하게 했다. 그는 올해 1월 이란 정부가 전국 시위를 쿠르드 반정부 세력이 조직했다고 비난하자 동포들이 다시 거리로 나서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봐야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서 도움이 곧 도착할 것(HELP IS ON ITS WAY)”이라고 약속했지만, 이번에도 실제 행동은 뒤따르지 않았다. 그 결과 수백 명의 쿠르드인을 포함해 최소 6,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에 대한 입장이 어떻든 쿠르드인들은 서방의 의도를 현실적으로 바라본다.

휴전이 선언된 뒤에도 이란은 이란계 쿠르드 반정부 조직들을 겨냥한 산발적 공습을 이어갔다. 나는 이란 쿠르디스탄과 이라크를 가르는 산악지대로 올라가 국경에서 약 한 시간 거리의 페슈메르가 전투원들을 만났다. 그들은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아 오래된 위스키잔에 담긴 차를 마셨고, 의견은 젊은 세대의 낙관론에서 수십 년 전 전투를 겪은 노전사의 냉소까지 다양하게 갈렸다.

젊은 전투원 나지르는 개인적으로 나는 이 전쟁에 반대하고 누구도 죽는 걸 원하지 않는다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이 원한다면 이란 정권은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디브(Adib)라는 이름의 노년 전투원은 신중해야 한다며 끼어들었다. 그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직전 서방과 손잡은 샤(Shah) 정권에 맞서 공산주의 무장조직원으로 싸웠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은 우리가 스스로 쟁취하지 못한 것을 결코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워싱턴의 비밀 지원을 갑자기 중단하면서 쿠르드인들이 학살에 노출됐던 1975년 미국 중재 합의를 언급했다. 그는 우리가 서방을 겪은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라며 그들은 항상 쿠르드인을 하나의 카드처럼 이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의견 차이는 반정부 조직들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공개적으로 서방 개입을 지지하는 쿠르디스탄자유당의 아디브 칼라디안(Adib Khaladyan) 같은 인물은 여전히 서방 지원으로 이익을 얻기를 기대한다. 그는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만이 이란 정권을 끝낼 유일한 길이라고 강하게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베테랑 공산주의 정치인 이브라힘 알리자데(Ibrahim Alizade)는 자신의 페슈메르가 전투원들과 같은 입장을 보였다. 그는 이 전쟁은 정권을 무너뜨릴 기회가 아니다라며 오히려 정권이 더 오래 살아남을 기회라고 말했다.

27세의 망명 쿠르드 전투원 나지르(Nazir)는 이란의 여성, , 자유시위에 참여한 뒤 고향을 떠났다. 출처: 맷 브룸필드

의견 차이가 어떻든 이들 조직은 결국 쿠르디스탄 자치정부(Kurdistan Region of Iraq·KRI) 지도부의 뜻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전쟁 초기 도널드 트럼프와 직접 통화한 것도 KRI 정치 지도부였고, 지금도 이들은 복잡하게 얽힌 지역 갈등 속에서 신중하게 길을 찾으려 하고 있다.

집권 쿠르디스탄민주당 대변인 호샤르 시와일리(Hoshyar Siwaily)우리는 미국의 동맹이지만, 이 전쟁은 우리보다 훨씬 거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중립을 유지하고 싶다우리는 이 전쟁의 일부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친서방 성향의 KRI 정부는 망명한 이란계 쿠르드 반정부 세력을 수용하고 있지만 동시에 테헤란과 우호 관계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반정부 조직들이 이라크 쿠르디스탄을 이란 공격의 거점으로 사용하는 것을 허용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KRI와 바그다드, 테헤란은 최근 몇 년 동안 협력해 이란계 쿠르드 무장조직의 무장을 해제하고 민감한 국경 지대에서 철수시키려 했다.

대신 시와일리는 미국이 KRI에 자체 방공 시스템을 제공해야 한다는 오랜 요구를 다시 강조했다. 그는 이런 방어 체계가 없다면 쿠르드인들은 언제나 적대적인 주변국들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로자바에서는 쿠르드인들의 오랜 적대 세력인 튀르키예가 인도주의 인프라와 서방의 동맹이었던 쿠르드 반ISIS 세력을 겨냥해 대규모 드론 공습을 벌였고, 이는 지난 1월 이슬람주의 세력의 공세가 가능해지는 길을 열었다.

쿠르드인들은 여전히 극도로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다. 특히 경무장 상태인 이란계 쿠르드 반정부 조직들은 국경을 넘는 군사 행동을 감행하기 어려운 처지다. 공산주의 정치인 알리자데(Alizede)는 미국이 애초부터 이란계 쿠르드인들을 무장시킬 생각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국이 단지 더 잘 훈련되고 무장한 이라크 측 동맹 세력을 이란계 쿠르드 반정부 조직으로 위장해 공세에 투입하려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KRI 고위 관계자들은 이런 주장을 부인한다. 만약 미국이 실제로 방공 시스템을 제공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 있고, 쿠르드 병력이 이란 영토 안으로 진입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서방은 다마스쿠스, 바그다드, 앙카라의 더 강력한 동맹국들을 자극할 것을 우려해 이런 무기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비공개 협의에서 어떤 논의가 오갔든, 트럼프는 이후 공개적으로 쿠르드인들이 이 분쟁에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쿠르드 조직이 이란 시위대를 위해 제공된 미국 무기를 가로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주장 역시 모든 당사자가 부인했다. 이란계 쿠르드 정치인 샤리피는 어떤 조직이 그런 지원을 받았다는 것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트럼프가 안다면 왜 공개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현재 미국과 이스라엘 정책에서 쿠르드인들의 주요 역할은 수사적 명분에 가깝다. 실제 쿠르드인들의 고통은 전쟁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용되고 있으며, 특히 이스라엘은 쿠르드 봉기 가능성을 이란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워싱턴과 테헤란이 갈등과 중단을 반복하는 휴전 협상을 이어가는 동안 쿠르드인들은 외교 협상 테이블에 자리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대표자들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깊은 불안을 느끼고 있다.

이라크 쿠르디스탄 집권 여당인 쿠르디스탄민주당 대변인 호샤르 시와일리(Hoshyar Siwaily). 출처: 맷 브룸필드

이란은 오랫동안 쿠르드인들에게 보복을 가해온 전력이 있다. 20256“12일 전쟁이후 이전 휴전이 발표된 바로 다음 날, 이란 정부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와 연계됐다는 혐의를 받은 수감 중인 쿠르드 활동가들을 처형했다. 외부적으로는 약화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더욱 권위주의적으로 변한 어떤 정권이 살아남더라도, 쿠르드인들에 대한 폭력적 보복을 통해 국내 정당성을 확보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이란은 불안정한 2주간의 휴전 기간에도 매일 KRI를 공격하고 있다. 미사일은 간헐적으로 상공을 가로질러 이란계 쿠르드 반정부 조직의 캠프와 사무실을 타격했고, 수십 명이 죽거나 다쳤다.

설령 이번 전쟁이 실제 정권 교체로 이어진다 해도 쿠르드인들이 이득을 볼지는 불분명하다. 서방이 오랫동안 새로운 이란 정부의 지도자로 키워온 인물은 축출된 샤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Shah Mohammed Reza Pahlavi)의 망명한 아들이다. 그는 미국에서 호화로운 삶을 누리며 이스라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샤의 아들은 새로운 이란에서 쿠르드 자치의 자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테헤란의 이슬람 통치자들처럼 주류 군주주의 반정부 세력 역시 쿠르드인들을 분리주의자로 규정한다. 샤리피는 쿠르드인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요약하며 우리는 팔라비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시대를 모두 경험했고, 그들은 현재 정권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팔라비는 이란 내부의 다른 민족들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파시스트다라고 말했다.

올해 주요 쿠르드 정당들은 세속적이고 민주적이며 연방제 국가인 이란을 요구하는 연합체를 결성했다. 이런 목표를 이루려면 쿠르드인들과 함께 이란 인구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아제르바이잔계, 아랍계, 발루치족 등 다른 소수민족과 협력해야 한다. 하지만 정권이 유지되든 무너지든 쿠르드인들은 여전히 이런 꿈을 이루기까지 갈 길이 멀다.

망명한 쿠르드 페슈메르가(peshmerga) 전투원들이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정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맷 브룸필드

모든 이란계 쿠르드 정당은 현지 지지자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으며 거리 시위와 파업을 조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란 내부에 전투원을 배치한 조직은 쿠르디스탄자유생명당(Free Life Party of Kurdistan·PJAK) 하나뿐이다. 이 정당은 로자바 혁명을 이끈 핵심 세력이었던 쿠르드노동자당(Kurdistan Workers Party·PKK)과 연결돼 있다. 이 때문에 일부 간부들은 수백만 명 규모 지역사회를 통치하고 방어한 경험도 갖고 있다.

다른 반정부 조직들과 달리 PJAKPKK와의 연계 때문에 테러 조직으로 지정돼 있으며 이라크 영토 안에서도 비밀리에 활동해야 한다. 이라크 쿠르디스탄 제2 도시 술라이마니야 인근 산기슭의 익명 안전가옥에서 PJAK 집행위원회 소속 굴란 페힘(Gulan Fehim)외부에서는 쿠르드인들을 단지 전사 집단으로만 본다하지만 반정부 투쟁은 군사 수준에만 머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이란의 다양한 민족 전체를 위한 민주적 연방주의 체제의 대안을 구축하려 한다고 말했다.

로자바의 동지들처럼 PJAK도 여성 자치와 분권적 공동체 수준 통치를 기반으로 한 급진적 이념을 추구한다. 하지만 세계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춰 민족 갈등을 활용해온 중동의 정치 지형 속에서 다소 이상주의적으로 보였던 이런 비전은 이제 그 어느 때보다 더 멀어 보인다. 로자바는 시리아 내전의 유혈 사태 속에서도 14년 동안 연방주의와 다민족 통치를 구현하려 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튀르키예가 반복적으로 군사 공격을 감행하고,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과정에서 로자바를 이용했으며, 시리아 사회가 로자바 혁명을 보수적 수니파 아랍 다수의 이익을 희생시키고 쿠르드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움직임으로 인식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로자바의 쿠르드인들은 오랫동안 시리아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 세력이었다. 하지만 친이란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Bashar al-Assad)가 이슬람주의 강경파이자 전 알카에다 연계 인물인 아흐메드 알샤라(Ahmed al-Sharaa)에 의해 축출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로자바의 사실상 수도 카미실리(Qamishli)에서 인터뷰한 시리아 쿠르드 고위 정치인 압둘카림 오마르(Abdulkarim Omar)알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새로운 중동 질서를 형성하는 결정적 전환점이었다미국은 이제 알샤라 정부를 지지하며 그 체제의 안정을 강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알샤라의 이슬람주의 세력이 쿠르드인들이 장악했던 광범위한 지역을 점령하는 동안 이를 방관했다. 결국 쿠르드인들은 자신들의 자치 지역을 시리아 정부 통제 아래 다시 편입하는 매우 비인기적인 합의를 받아들여야 했다. 오마르는 미국은 시리아군의 공격을 막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하지 않았다이것은 다마스쿠스와 텔아비브사이의 정치적 합의 결과였고, 튀르키예가 적극적으로 개입했으며 미국이 이를 중재했다고 말했다. 다시 한번 결정적인 순간에 미국과 이스라엘은 쿠르드인들에게 말뿐인 지지만 보냈을 뿐 실제 지원은 제공하지 않았다.

31세의 시노(Shino)는 페슈메르가(peshmerga) 투쟁에 합류하기 위해 집과 미용사 일, 그리고 아이를 뒤로하고 떠났다. 출처: 맷 브룸필드

로자바의 지난 1월 공세 당시 최전선에 있던 쿠르드 전투원들은 이번 배신에 대해 미국을 저주하며 끝까지 로자바를 지키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 전투원들은 승리를 거둔 다마스쿠스(Damascus)의 이슬람주의 통치 세력 지휘 아래 편제된 부대에 등록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렇지 않으면 전멸을 각오해야 한다. 이 지역의 상징으로 알려진 여성 전투부대들의 운명도 아직 불확실하다.

로자바 쿠르드 세력과 함께 싸우며 실전을 겪은 일부 PJAK 전투원들은 이후 이란 국경지대로 돌아가 옛 동료들과 다시 합류했다. 이들은 새로운 전선에서 민주주의와 여성 주도의 중동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쿠르드인들의 적들 역시 로자바 혁명에서 교훈을 얻었다. 튀르키예는 미국에 자국 동부 국경에서 로자바와 같은 15년짜리 쿠르드 자치 실험이 반복되는 상황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동시에 아랍인과 쿠르드인 사이의 민족 갈등 속에서 로자바가 겪은 쓰라린 경험은 민주적 연방주의라는 이름 아래 공동체 간 연대를 구축하려는 많은 쿠르드인의 의지를 약화했다.

쿠르드 대표들은 자신들이 이란에서 급진적 대안을 추진할 준비가 돼 있다고 주장한다. 페힘(Fehim)우리 게릴라들은 언제나 스스로를 희생할 준비가 돼 있다. 그 점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하지만 우리가 이 전쟁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외부 세력이 아니라 우리 민중의 요구에 따른 것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의 이해관계에 맞춘 새로운 중동 질서를 만들기 위해 외부 세력들이 폭격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쿠르드인들이 연방주의와 여성주의에 기반한 대안을 실현하기는 어느 때보다 더 어려워지고 있다. 심지어 전쟁에 휘말리지 않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공세가 시작된 이후 버려진, 과거 망명 페슈메르가(peshmerga) 전투원 가족들이 살던 집. 출처: 맷 브룸필드

해가 페슈메르가 기지 위로 저물 무렵 우리는 계곡 아래로 차를 몰았다. 길가에는 과거 망명 쿠르드 전투원 가족들이 살았던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집 문에는 붉은 십자가 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이 건물들이 이미 비워졌으며 이란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표시였다. 하지만 상공을 가르는 미국 전투기와 이란 드론의 시야에서 이런 중립의 표식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우리는 낡은 소총으로는 공습에 대응할 수 없는 채 기지에 남겨진 페슈메르가 전투원들을 뒤로한 채 떠났다. 31세의 시노(Shino)는 새로운 삶을 위해 집과 폭력적인 결혼 생활, 어린 자녀까지 모두 뒤로하고 무장조직에 합류했다. 그는 모든 것을 걸었다. 시노는 심장이 점점 더 빨리 뛰고 있다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그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쿠르드인들은 이런 순간을 이미 수도 없이 겪어왔다. 자유를 향한 열망으로 가슴은 뛰지만, 현실은 해방이 여전히 먼 꿈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출처] The Kurds in the Crossfire of the U.S.-Israeli War Against Iran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맷 브룸필드(Matt Broomfield)는 프리랜서 언론인이자 평론가다. 그는 로자바(Rojava), 즉 시리아 쿠르디스탄(Syrian Kurdistan)에서 3년 동안 거주하며 활동했고, 바이스(VICE),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 뉴 스테이츠먼(New Statesman), 자코뱅(Jacobin)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이 지역을 취재했다. 그는 로자바 인포메이션 센터(Rojava Information Center)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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