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 노숙인 짐짝 손수레에 싣고 대합실 횡단"

서울역 노숙인 격분, 경찰이 원인 제공. 사회단체 대책모임 추진

지난 22일 밤 서울역 대합실에서 발생한 노숙인과 경찰간 충돌 사건에 대해 정부와 언론이 극단적인 대응 논리를 펴고 있어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는 당일 충돌 사건을 공안사건으로 규정, 이에 참가한 노숙인들을 모두 구속 수사한다는 방침이며, 향후 노숙인 강제 수용 방침을 언급, 7-80년대 구금식 강제 수용 정책을 재현한다는 발상을 내놓고 있다.

서울시는 노숙자의 강제보호 추진 방안 마련을 위해 시정개발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해외 사례를 검토하는 한편 노숙인, 시민, 시가 참여하는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수렴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22일 격분한 노숙인들이 서울역 대합실 기물을 망가뜨리며 저항했다.

이에 사회단체들은 성명서 발표와 대책모임 구성을 제안하는 등 노무현정권의 노숙인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빈곤사회연대는 "이번 사태가 노숙인에 대한 인권침해뿐 아니라 빈곤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빈곤계층의 인권의 문제"라고 판단하고 "공권력의 일방적인 구속수사 방침, 언론의 편향적인 보도 행태, 서울시의 강제보호대책에 대해 공동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빈곤사회연대는 '1월 22일 노숙인 죽은 이후 공동대응을 위한 논의모임'을 제안하고 이 달 말 △인권·사회단체 문제의식 공유, 입장 마련 △공동 기자회견 제안 등 사업 제안 등의 논의를 할 예정이다.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노실사)는 1월 25일 '노숙인 사망과 경찰과의 충돌사태에 대한 상황 요약과 문제점'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노실사는 "함께 생활해 오던 노숙 동료 0씨(67년생)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폐지나 짐짝을 싣는 손수레(가로80cm X 세로130cm)에 실려 2층 서울역 대합실을 가로질러 가는 평소에는 잘 볼 수 없던 매우 특이하고도 비인간적인 처사를 목격한 노숙인들이 0씨의 사망 이후 극도로 자극을 받아 경찰병력과 대치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며 물리적 충돌의 1차적 원인을 짚었다.

노실사는 또한 "'사체가 기습적으로 옮겨질 경우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노숙인들의 이해를 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노숙인 지원단체의 거듭되는 지적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노숙인들간의 논의를 진행하고 있던 순간적인 틈을 이용해 기습적으로 사체를 옮겨 버렸다"며 이 역시 노숙인을 격분하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서울역에 있던 노숙인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조차 최소한의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목도하고, 죽은 시신을 공권력을 동원해 빼앗는 장면을 목격하였고, 그것이 곧 분노와 저항으로 이어진 것이다. 따라서 지극히 본능적이고 정상적인 저항의 성격을 띤다는 이야기다. 사회적 빈곤의 최극단에 서 있는 노숙인들은 그 장면이 곧 머지않아 닥칠 자신의 운명과 같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이다.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노숙당사자모임 등 12개 노숙인 관련 단체들도 성명을 발표하고, 원인 진단과 함께 '강제수용대책마련'과 같은 엉뚱하고 일회적인 대책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정책 수립을 요구했다. 12개 단체는 '노숙인 사망과 1·22 서울역 충돌 사태에 대한 우리의 입장' 제하의 성명에서 △주거와 의료, 자활과 일자리 창출을 포함한 포괄적인 사회안전망이 수립되는 틀 속에서 노숙인 복지정책이 연계 △급식환경, 주거, 법률, 행정 등 체계화된 '공공역사 중심의 노숙인 등 위기생활자 현장지원체계' 마련 △쉼터의 적정 규모 확보와 대상자별 서비스의 전문화 및 다양화 △'공익형 저렴주택 공급 등 현재의 매입임대주택정책 전향적 개선 등을 요구했다.

류정순 한국빈곤문제연구소 소장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간하는 인권하루소식 기고를 통해 "서울시는 노숙인들을 강제로 수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며, 개선은커녕 '강제수용'을 하겠다는 반인권적인 발상을 내놓았다"고 개탄하고, "얼어죽으나 맞아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이고, 한데 잠을 자는 것보다는 감옥이 더 나은 극한 상황에 처한 노숙인이 행여나, 어차피 강제수용이라는 감옥에 갈 바에야 한풀이라도 하고 가겠다고 마음먹는다면 무슨 짓을 못할까?"라며 정부의 입장을 비판했다.

문헌준 노실사 대표는 미디어참세상과의 인터뷰를 통해 서울역에서의 충돌 사건이 "처음 있는 일이다. 이렇게 많이 모였고, 집단적인 모습이어서 놀랐다"고 말하고 "이제 공공역사 장기 정착생활에서 탈피할 수 있는 대안이 나와야 한다"며 대안 대책을 주문했다. "추모제 같은 자리에서 주민등록 말소도 풀어주고, 일 할 수 있는 노숙인들 일 할 수 있도록 조처해야 하고, 조폭으로부터 휘둘리지 않도록 하고, 예산은 지자체가, 공간은 철도청이, 복지정책은 정부가 인권을 기초로 한 종합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25일, 숨진 노숙인의 시신 운반을 방해하고 대합실 기물을 부순 혐의로 노숙자 문 모 씨 등 3명에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이 모 씨 등 2명에 대해서도 추가 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공안사범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