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스스로 당사자그룹 만들어야"

[인터뷰] 문헌준 노실사 대표, 정부 강제수용 대책 "한마디로 코미디"

26일 오후 3시 경 영등포 민주노총 뒤 허름한 건물 2층에 자리잡고 있는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노실사) 사무실을 찾았다. 문헌준 대표는 22일 서울역에서 벌어진 노숙인과 경찰간 충돌 사건 이후 대책 마련으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문헌준 대표는 자리에 앉기 바쁘게 운을 뗐다. 일문일답이라기보다는 물 흐르듯 쏟아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인터뷰 전 과정에서 '당사자그룹'을 강조했다. 노숙인 당사자들이 노숙인의 삶을 스스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노실사 같은 지원 단체는 효과적인 지원을, 노숙인은 당사자로서 자신의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잘 조직되지 않는 분들이다. 당사자그룹들은 힘이 미약하다. 22일 우리한테 연락을 준 것도 경찰과 대치중인 노숙인들이었다. 현장 지도라 하기는 그렇지만 그때 당시 사과받아낼 때까지 현장에서 시신을 지키는 방향으로 갔더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워낙 조직이 안 되고 군중심리 작용 측면도 있어서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거라 생각하지만..."라며 말문을 열었다.

문헌준 대표는 현장에서 경찰과 노숙인 사이에서 문제 해결을 자임했는데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추모제 등 그동안 많은 활동으로 노숙인 사이에 인지도를 갖고 있는 터라 노숙인들과 대책을 마련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으나, 결과적으로 경찰이 시신을 빼돌리자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대안 대책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제 역사 장기 정착 생활에서 탈피할 수 있는 대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하고, "추모제 같은 자리에서 주민등록 말소도 풀어주고, 일 할 수 있는 노숙인들 일 할 수 있도록 조처하고, 조폭으로부터 휘둘리지 않도록 하고, 예산은 지자체가, 공간은 철도청이, 복지정책은 정부가 인권을 기초로 노숙인 종합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2일 서울역사 노숙인 두 명이 또 눈을 감았다. 노숙인은 얼마나 되나

정부 통계는 허구적이다. 보건복지부나 서울시는 예산 집행 차원에서는 통계를 보는데, 지자체가 운영하는 쉼터에 들어온 사람들과 주요 역사 및 공공장소(남대문시장 남산공원 같은 드러난)에 유급 상담원으로 하여금 파악한 숫자를 더해서 숫자 발표를 한다. 그게 정확한 통계가 맞겠나. 쉼터 인원은 정확하다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노숙인들도 소득 구조가 있다. 구걸이든, 일용 잡부든 소득 구조가 생기면 노숙인에서 잠시 면한다. 노숙인들의 제1 순위 욕구는 발뻗고 들어갈 집이다. 전국에 1만 개 정도의 쪽방이 있는데, 통계에 이런 계층들은 다 빠져있다.

거리만 하더라도 노숙인들이 어디 서울역에만 있겠나. 소규모 공원에도 있거니와, 가족 단위 노숙인은 집단 지역을 벗어난 데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정도로만 규정하면 빠지는 게 많다. 거리의 노숙인은 가장 밑바닥이다. 그러나 유사한 계층, 잠재군들에 대한 파악이나 정책 입안 노력을 하지 않는다.

정부는 4-5천 명 정도로 집계한다. 통계부터가 주먹구구식이다. 2년 전에 350명 있었다 그랬는데 이틀 조사하니 890명 나왔다. 다음부터 조사 안 하더라. 우리가 한 달 조사해 봐라 그랬다. 빈곤 정책도 마찬가지 일거다. 통계도 어느만큼 정확한가 문제인데 그것조차 접근법이 다르다.

노숙인은 건강 상태가 나쁠 수밖에 없을 텐데, 겨울을 어떻게 나고 있나

노숙하는 분들은 먹는 것, 자는 것, 씻는 것, 물품 보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생존의 문제이다. 자는 것은 지하철 역사로 산개를 한다. 그런데 노숙인 사망 문제가 많이지니까 지하철공사가 자기 구역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게 하려고 쫓아버린다. 그래서 최근에 서울역사로 많이 몰린 거다. 보통 대합실과 광장 해서 200명 정도였는데 400명 가까이 늘었다. 22일날은 200명 정도가 서울역사에 있었다.

또 한 가지, 일자리가 없다 보니,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도 노숙인이 많은 곳으로 몰린다. 서울과 경기에 일자리가 없으면 지방으로 뛰는데, 그러면 서울역이 편리하다. 먹는 것 관련해서는 실내 급식 서비스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데, 이 점도 공공역사 근처로 밀집하게 하는 요인이다. 노숙인들의 소득 구조는 극히 취약하다. 월 30-50만 되는 사람들이 25%-40%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 돈으로 먹는 것 해결 못 한다. 노숙인들은 대부분 돈 생기면 방값부터 해결한다. 대략 월 25만 원, 많으면 27만 원까지 들어간다. 여인숙은 하루 1만 원으로 30만 원에 이른다. 방값 내고 나면 먹는 것 해결 안 되니 여기로 와서 한끼 두끼 해결한다. 역사에는 사물함이 있고 천 원이면 하루 보관이 되니까 많이 이용한다. 화장실과 샤워 시설이 없는 데서 머무르는 노숙인들은 씻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역사로 모인다.

먹는 것, 자는 것, 씻는 것, 보관하는 것, 그리고 노동 정보를 얻기 위해서 공공역사로 모인다는 말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역사 중심의 대안, 현장 지원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해봐야 한다. 막연한 거리 지원책이 아니라 역사와 역사 주변에서 노숙인들의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주는 대책이 요구된다.

서울역 노숙인들이 표출한 분노의 흔적

거리 급식이 비위생적이고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지적이 있다

최근에 빈곤 이야기 많이 하면서 빈곤 운동도 주체가 있고 조직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다행이다. 그동안 종교 단체나 지원 단체가 받는 문화에 너무 익숙하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노숙인 문화가 98년부터 6-7년 정도 만들어져 왔는데 돌아보면 스스로의 문화가 없다. 그게 당사자 내에서 나와야 하는데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거리 급식의 경우 말한대로 매우 비위생적인 데다 쪼그려서 먹게 한다. 마지막 자존심마저 내팽개치게 한다. 자존심을 살려주는 급식 환경 요구를 전면화해야 한다. 이런 걸 요구하는 당사자모임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22일 저녁 노숙인의 죽음과 관련, 서울역 노숙인 100여 명이 공안과 경찰에 격분한 일이 발생했다.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

당일 6시30분 경 연락을 받고 갔는데, 그날 죽은 노숙인이 가격을 당해서인지 일상적인 제지 때문에 쓰러졌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구급 환자가 발생하면 노숙인이든 시민이든 119를 불러야 하는데 공익근무원들이 가로 80, 세로 130짜리 바퀴 달린 수레에 실어서 대합실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 옮겨갔다. 사람이 짐짝도 아니고... 이를 본 노숙인들이 크게 충격을 받았다. 환자를 수레에 실어 대합실을 내돌았는데 도대체 언론에서는 이런 부분은 취재를 안 한다.

또 하나, 남대문경찰서 서장이 현장에 나왔다, 수사과장, 강력반장, 계장, 반장까지 다 나왔는데 일부는 술을 먹은 상태였다. 우리는 요구 조건을 이야기했다. 시신 빼지 마라, 우리가 지정한 의사를 부르도록 해라 라며 경찰과 협상했다. 그러면 노숙인들하고 이야기해서 마찰 안 생기도록 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마이크도 빌려주고 협조를 하는 듯 했다. 9시 30분 쯤 의사가 와서 적십자병원으로 가자고 하여, 어떻게 할 지 노숙인들과 의논하는 중에, 경찰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빨리 끝내라"고 강요했다. 조금만 시간을 더 달라고 하고 있는데, 저 편에서 "시신 빼낸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 듣고 게임 끝났다고 생각했다. 경찰이 나를 악용한 셈이다.

노숙인들이 손수레 때문에 가장 격분했다고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경찰은 서쪽이 주차장 쪽이어서 구급차가 빨리 올 거라고 말하는데 말이 안 된다. 경찰 조서를 보면 처음 장소가 편의점, 화장실 있는 곳인데 거기도 차 다 들어오고 들것 실어서 내려가면 금방인 거리다. 그 노숙인 분이 쓰러지니 수레는 있고, 공익들이 당황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노숙인들과 대책을 협의할 때, 노숙인들이 나름대로 정당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의견 개진을 했다는데, 노숙인들의 요구는 무엇이었나

그 시점에서 노숙인들의 요구는 일단 한 가지였다. 시신 빼돌리지 말라는 거였다. 사과를 받아내자는 주장도 있었다. 노숙인들은 중구난방 말하는 듯 했지만 합리적이고 정당한 요구를 하였다. 그 상황이 곧 자신들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지하였기 때문이고, 때문에 상식적인 조치를 요구한 것이다.

노숙인의 저항이나 집단적인 행동이 이전에도 있었나

처음 있는 일이다. 이렇게 많이 모였고, 집단적인 모습을 보인 건 일찌기 없었다. 나도 많이 놀랐다. 노숙인 복지가 항상 주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당사자들이 서로 자기들끼리 이야기 하며 풀어야 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지원을 하더라도 당사자간에 노숙 문화라든가 예산 분배 등을 토론할 필요가 있다. 조직화 되었든 안 되었든 100명 이상이 한 자리에 모였다. 만민공동회처럼 거리공청회 같은 것도 잡아볼 생각이다. 그날 노숙인들의 저항은 유례없던 경험이었다.

실제 노숙인들의 반응은 어떤가

노숙인들은 속시원해 하는 분들이 많다. "욕먹든 말든 잘 했다"라고 말하는 분도 계시고, "저건 아니다"라고 우려하는 분도 있다. 후과가 그대로 돌아올 거라는 염려 때문이다. 시신 탈취 과정에서 한통속 아니냐며 나한테 불만을 표출하는 분도 있다. 다양한 반응이지만, 역시 속 시원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만큼 억눌려왔다는 이야기다.

서울역 노숙인들이 표출한 분노의 흔적. 역사 2층에서 1층으로 집어던진 기물들

노숙인들이 조폭과 연결고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 문제는 심각하다. 노숙인 중에는 주민등록이 말소된 분이나 탈북자, 중국 교포 등 신분 노출이 안 되는 분들도 많다. 그런데 이런 분들만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폭들이다. 요즘은 웬만한 일용 용역도 신분증 필요한데, 철거 같은 곳에는 신분증이 없어도 그냥 데리고 가서 쓴다. 다쳐도 돈 안 물어줘도 되고, 죽어도 상관없는 사람들로 취급한다. 이들은 인신매매범이나 다를 바 없다. 조폭들은 조직적으로 술 먹는 것도 체크한다. 내일 철거 있으면 술 먹지 못하게 한다. 그러다 평소에는 술 먹도록 돈도 풀고 그런다.

대부분의 노숙인들은 시민 편의를 고려하면서 노숙한다. 그러나 군중심리를 노리면서 깽판을 벌이고 악용하는 조폭들은 생각이 다르다. 신용불량자 몰려들면 싸게 노동시킬 수 있으니까 오히려 조장한다. 상담 나가면 그런 사람들과 많이 부딪힌다.

노숙인들은 말그대로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 분들은 어디로 가서 어디서 죽을까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역으로 온다. 그런데 여기서 찍히게 되면 더 이상 벗어날 수 없다. 맨 마지막에 모이는 것이다. 가족 없고 자산 없고... 마지막 자리이다. 세상에 그걸 악용하는 놈들이 있다.

서울역 사태 발생 이후 노숙인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 발표가 있었다

한마디로 코미디다. 언론은 항상 똑같은 멘트를 한다. 이번에 추가된 게 있다면 제도적인 보완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강제수용 정책으로 바꾼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개방형 사회복지시설 정책을 해왔는데 이걸 강제로 수용하는 시설로 간다면 7-80년대 형제원처럼 간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가령 알콜 재활 쉼터는 현재 하나밖에 없다. 인프라가 고작 하나인데 쉼터 전문인력 전문가 예산 다 있어야 하는데 그런 대책 없이 강제수용하겠다 하면 그게 뭐가 되겠는가. 구금 시설을 만든다는 거나 마찬가지고 쉼터 정책조차 폐기하자는 이야기가 된다. 저것들도 이야기해놓고 우스울 것이다.

노숙인에 대한 본질적인 대책은 무어라 보는가

공공시설인 역사에 대해 잘 생각해야 한다. 역사의 장기 정착 생활에서 탈피할 수 있는 대안이 나와야 한다. 시는 쉼터, 지자체는 지원 식의 행정이 아니라, 추모제 같은 자리에서 주민등록 말소도 풀어주고, 일 할 수 있는 노숙인들 일 할 수 있도록 조처해야 하고, 조폭으로부터 휘둘리지 않도록 하고, 복지부, 철도청, 지자체 등이 종합적인 역사 중심의 세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예산은 지자체가, 공간은 철도청이, 복지정책은 정부가 인권을 기초로 한 종합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지원은 깨진 항아리에 물 붓기다. 노숙인의 문화적인 것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가로막는다. 당사자 안에서 흐름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 같은 지원 단체가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당사자들이 어떻게 소통하게 하느냐의 문제이다.

작년 일본에 갔을 때, 일본 홈리스들이 지원 단체에 의존하지 않고 공공장소에서 블루텐트 천막을 치고, '우리는 주거 상실자다' '사회로부터 배제되었고 일자리를 상실했다'고 스스로 자각하고 사회화하는 것을 보았다. 100동 200동 블루텐트를 치고, 일용노동조합이 급식과 생활서비스를 함께 한다. 일본의 일용노조는 홈리스들을 동지라고 생각한다. 공동 수입 활동을 하고, 용돈도 나누고 하더라. 일용노동자들의 끝이 홈리스다 라고 생각하니 연대가 보이는 거다. 우리 운동을 보면 그런 걸 찾아보기 힘들다. 노동운동도 그렇게 폭넓게 봐야할 때가 되었다. 노실사도 그렇게 고민해 나가고 있다. 적극적인 공청회와 문화사업 등도 고민중이다. 당사자들이 무료에 익숙해지기보다는, 화낼 때는 화도 좀 내고 그러길 주문하기도 하는데, 그런 데서부터 당사자그룹의 근거가 생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