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을 떠나는 세 여자 이야기

[노래여 날아가라 : 문화활동가 인터뷰](4) 첫 앨범 '꽃피는 나무의 여행' 소풍가는 날

한 여자는 어릴 적부터 노래하는 사람을 꿈꾸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그녀는 그녀 삶의 나무가 되어준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또 한 여자는 어릴 적 한번도 노래하는 자신을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그녀는 삶의 폭풍을 만났고 어느새 그녀 삶을 뒤흔든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여자는 어릴 적 말이 적은 그녀에게 음악은 언어였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녀는 음악으로 이야기하고, 음악으로 아파하고, 음악으로 기뻐하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세 여자는 자신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2001년 노래마라톤을 계기로 '그대 오르는 언덕'을 부른 방기순, '진혼곡'을 부른 김영남, 꽃다지, 조국과 청춘 등의 세션으로 참여하고 곡을 만들던 신현정. 이렇게 세 여자들은 '소풍가는 날'이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함께 노래를 만들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30대의 나이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세상을 살아가는 여성으로 목소리를 담아 노래를 부른다. 첫 앨범 '꽃피는 나무의 여행'을 내고 유통에, 홍보에, 음반에 대한 모든 것을 하느라 바쁜 세 여자를 그녀들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지금까지의 소풍을 정리하고 새로운 소풍을 준비하고 있는 그녀들과의 대화 속에는 소풍을 가기 위해 가방을 싸는 설레임이 가득했다.

그녀들이 만나서 소풍을 준비하기 까지

"참 바람이 좋다. 문득 잠깨어 느끼다 서늘한 바람 어디에서 왔니 날설지 않구나, 나는 평화롭고 나는 머물지 않고 그 어린 꽃씨를 가슴에 품고 허공을 내달리던 바로 너였구나. 날아가 볼까 저 바람과 함께 다시 드넓은 하늘 생각만으로도 정말 신나는 여행이 될 것 같아" '꽃피는 나무의 여행' 가사 中

  '소풍가는날'에 김영남 씨
그녀들은 다시 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와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가사일도 해야하고, 아이들도 키워야 하고, 경제적인 활동도 해야 하고, 음악도 하고 싶고 우리 모두 하고 있는 고민이죠" 김영남 씨의 이어진 말 속 에서 이 땅을 살고 있는 30대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30대 여성들이 그러하듯이 그녀들도 꿈을 만들어 가다가 잠시 접기도 하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기 위해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우여곡절 끝에 첫 앨범은 만들었다.

"진보적 교회음악을 했지만 다른 분들과는 활동영역이 많이 달랐어요. 처음 소풍가는 날을 하자고 마음을 먹고 함께 만든 노래를 부르려고 하니 많이 힘들었어요. 이 노래를 어떻게 접해야 하나, 어떻게 불러야 하나, 이 노래를 듣는 낯선 대중들을 어떻게 만나야 하나... 공연을 하나 할 때, 한마디의 메시지를 던질 때 마치 나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어요" 방기순 씨의 말처럼 그녀들은 다른 길을 걸어왔었다. 그리고 같이 걷기 위해 길을 찾는 중이다. 신현정 씨가 말을 받았다. "대중가요 매장을 가도 그렇고, 민중가요 싸이트를 뒤져도 그렇고 우리 같은 음악은 없는 것 같다. 앞만 보고 달리던 20대를 넘어 30대의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사춘기, 흔히 질풍노도라고 하나? 그것보다 더욱 찾기 어려운 것을 찾는 것 같다"

소풍을 떠나고 첫 도착지에 이르기까지

"자욱한 안개 속에 젖어들다 난데없이 심장 한 가운데서 용기가 솟아 난 앞으로 발을 내딛었어. 한 걸음 또 한 걸음 안개 속에로 천천히 난 앞으로 안개 속으로" '안개 자욱한 밤' 가사 中

  '소풍가는날'의 신현정 씨
신현정 씨는 낮은 목소리로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세상과 담쌓고 살게 되더라구요. 그러다가 우연히 진보넷 블로그를 만나게 되었어요. 그 공간에 나도 함께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들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민중가요의 과장된 희망, 마치 기능성 화장품처럼 필요한 곳에만 쓰고 마는... 그런 것들을 넘어서고 싶었어요. 그래서 더욱 내면으로 집중했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열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함을 놓치지 않고, 뼈에 사묻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녀들은 첫 앨범을 통해 세상과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방기순 씨의 "나는 노래 밖에 할 줄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이 나를 많이 괴롭혔어요. 뭔가 힘든 일이 많은데,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요령도 모르고, 할 수 있는 건 내 노래에 담아내는 것 밖에 없어요"라는 고백은 안개를 뚫고 가기 위한 작은 용기였다. 안개가 자욱한 길을 혼자 걷는 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녀들은 안개 속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함께 손을 잡고 난데없이 솟아 오르는 용기를 가지고 안개 속을 걸어간다.

  소풍가는날 첫 앨범 표지

앨범 소개를 부탁하자. 앨범 하나를 선물로 주셨다. 앨범 표지에는 그녀들이 웃고 있다. 앨범 표지는 디자이너가 음악만 듣고 그렸다고 한다. "디자이너가 우리를 보고 그렸다면 오히려 이런 그림이 안나왔을 거예요.(웃음) 다들 이 표지를 보면 우리가 떠오른다고 해요" 앨범에는 8곡이 담겨 있다. 8곡 모두 하나하나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소풍가는날'의 방기순 씨
애착이 가는 노래를 소개해 달라고 하자 김영남 씨는 "환청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이 노래는 가장 우리다운 노래라고 생각해요. 초기에 불렀던 노래예요. 뭐 가장 우리다운게 뭐냐고 말로 해봐라 하면 어려운데, 이 노래의 이미지가 우리랑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애착이 가죠" 노래 '환청'은 가야금 소리가 은은하게 깔린다. 이어 방기순씨는 "안개 자욱한 밤이요. 이 노래는 정말 편하게 불렀어요. 그동안 노래를 부를 때 음 하나 하나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표현하는 것도 심혈을 기울이고... 그러다 보니까 니 노래는 너무 힘들다라는 소리까지 들었어요. 이 노래는 방기순이 이렇게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구나 라고 생각해 주길 바랬어요" 조금은 낯설지만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모두 꺼내놓기 위한 그녀의 몸부림이 보였다. "저는 모든 노래를 다 어렵게 작업했기 때문에 하나를 꼽긴 어렵네요. 굳이 꼽으라면 그리운 시냇가라는 노래요. 작업할 때 제일 불편했거든요. 근데 나중에 들으니까 가장 편하게 들리더라구요" 신현정 씨의 말이다.

소풍을 함께 떠날 친구들에게

"문득 이런 생각 해봤어. 이 욕심 많은 세상에 그대가 여기 없었다면 난 얼마나 허전했을까. 나도 그런 생각 해봤지 이 어지러운 세상에 그대가 여기 없었다면 난 얼마나 흔들렸을까. 구르는 돌처럼 세상에 던져져 그 어설픈 작은 위로가 나에게는 커다란 힘. 함께 나눈 얘기들 나를 평화롭게 하지" '이런생각' 가사 中

"그냥 음악을 듣는 동안 만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나를 위로하기도 바쁘지만요.(웃음) 이걸 듣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이 전해져서 함께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녀들은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자신을 위로하며 앨범을 만들었다. "노래는 듣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 같아요. 듣는 사람이 행복하면 노래도 행복해 질 것 같아요. 되도록 복잡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노래로 들렸으면 좋겠어요. 저도 이번 앨범 만큼은 정말 솔직하게 진행했거든요" 그녀들의 마지막 당부였다.


어느날 세 여자가 만나고, 외로움이 가득한 인생이라는 소풍에 함께 나서기로 했다. 이제 그녀들은 첫 번째 소풍지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길을 잘못 들어 헤메이기도 했고, 소나기를 만나 옷을 적시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길이 맞다고 우기다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 아팠던 만큼, 걸어온 길의 거리만큼 그녀들은 아름다운 소풍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