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대오 이상 無

[현장스케치] 아시아나조종사노조 파업 현장

아시아나조종사노조의 파업 6일차인 지난 22일 집결지인 인천연수원을 찾았다.
인천시 중구 운서동(영종도) 공항신도시에 위치한 인천연수원은 인천국제공항과 가까우면서도 인적이 드문 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연수원 입구에는 4-5명의 규찰대가 들고 나는 사람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었다.

연수원 안은 중앙의 넓은 잔디구장과 정면에 본관이 있고 좌측에 숙소 몇 개동이 있는 구조다. 마침 오전의 교육과 점심식사를 마친 시간이라 조합원들은 나무 그늘과 잔디밭에서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침구를 잔디밭에 말리거나 하는 등 푸른 잔디와 나무 사이에 새빨간 투쟁복의 파업 대오가 점점이 섞여 있는 모습이다.

  상황실 외부에 해외 체류 조합원들이 보낸 투쟁 메시지가 붙어 있다.

파업 조합원 200여 명 헌혈하기도

본관 안에는 상황실과 기자실을 설치해 놓았고 그날의 프로그램이나 공지사항, 해외에서 보내온 투쟁 메시지 등이 벽에 붙어 있었다. 언론과 차단되어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파업에 관한 언론 보도 내용을 비교적 꼼꼼이 스크랩해서 여러 군데에 붙여 놓기도 했다. 파업 후 시일이 경과했고 교섭에 관심이 집중되어 그런지 기자들은 거의 없었다.

  조합원들이 벽에 붙어 있는 언론 보도 내용을 보고 있다.

오후 1시 30분부터는 헌혈을 시작했다. 헌혈차 두 대가 와 있고 조합원들은 신청서를 작성하여 두 대의 버스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섰다. 조합원들은 "난 허약해서 안돼" "신문에 나오는 거면 할래"라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화기애애한 가운데 대부분 헌혈에 참여했다. 이날 조종사노조의 헌혈에 대해서 대부분 언론들은 "헌혈 후 72시간 이내에는 비행할 수 없다는 운항 규정을 이용해 적어도 72시간 이내에는 복귀할 생각이 없다는 선언 아니냐"는 엉뚱한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헌혈을 기다리거나, 마치고 쉬고 있는 조합원들과의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언론의 왜곡보도와 여론몰이에 무척 분노하고 있는 듯 기자에 대한 경계심이 강해 쉽지 않았다. "진짜로 궁금한게 뭐냐" "인터뷰 창구는 단일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등의 이유로 여러 차례 거절당한 끝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조합원 몇명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은 일단 언론 보도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표출하고 "다 거짓말"이라는 표현을 쓰며 언론을 성토했다. 최근 포털사이트에 게시되어 대다수 언론이 대서특필한 '존경하는 기장님께'라는 조종사 파업 비판 의견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절대 캐빈(승무원)이 쓴 글이 아니다. 승무원 실상이 우리가 보기엔 말도 안될 정도로 다르다. 사측에서 올린 글일 거라고 추측한다"는 반응들이었다.


"조종석 뒤에 한번만 타보면 우리 심정 알텐데"

여론에 의해 뭇매를 맞고 있는 지엽적인 요구안들에 대해서는 냉담한 반응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토익 630점도 못 넘기는 조종사가 어디 있어요"라며 과장된 비판들을 지적했다. "사람들이 '귀족'이라고 불러주니 우리가 졸지에 '귀족'이 되어 좋네요"라며 비꼬기도 했다. 미혼인 한 조합원은 "하도 억대 연봉, 억대 연봉 하니까 어머니께서 '너 억대 연봉인 줄 알고 맞선 자리 많이 들어온다'며 전화하시던데요"라고 허탈하게 웃기도 했다.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힘든 비행에 대한 토로가 이어졌다. "딴거 없구, 무박 3일 동안 운항하고 나면 정신이 몽롱하고 정말 피곤해요. 절대 과장이 아니구 이거 (안전운항에)위험한 거에요" 알아듣지 못할 전문용어를 쓰며 비행 과정을 설명하는 그를 또다른 조합원이 제지하며 "설명해봤자 소용없고, 날씨 별로 안좋을때 조종석 뒤에 한번만 타보세요. 그러면 우리가 다 이해될 거에요.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니 참 안타깝네요" "그냥 저같은 경우엔 '비행시간 축소' 이것만 됐으면 좋겠어요"


오후 4시부터는 대강당에서 노래 교육이 이어졌다. '단결투쟁가'와 '질긴놈이 승리한다'를 배우는 조합원들의 목소리는 우렁차고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 밝은 분위기였다. 이날은 신만수 대한항공조종사노조 위원장, 김영환 운수연대 상임의장, 천환규, 김재길 운수연대 공동의장 등이 지지방문했다.

짧은 시간이나마 파업 대오를 지켜본 결과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의 파업은 굳은 단결력을 유지하는 가운데, 힘있는 장기 투쟁이 가능하겠다는 인상이 남았다. 외부의 시선들이 워낙 곱지 않아 다소 위축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완 달리 대단히 당당하고 즐거운 모습들이 그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