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실체
신자유주의는 ‘작은 정부론’과 ‘시장원리만능’이라는 사상에 입각하여 재정지출의 삭감과 공적부문의 축소 및 민영화를 추진하고, 공적 규제의 완화 및 철폐를 통하여 자본활동의 자유화를 꾀함으로써 자본(독점자본)의 축적조건을 확보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있으며, 동시에 경제의 세계화에 적합한 새로운 사회경제구조로 전환코자하는 정책적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세계화라는 이름 하에 국가 및 지역간에 존재하던 상품, 서비스, 자본, 노동, 정보 등에 대한 인위적 장벽을 제거함으로써 세계를 일종의 거대한 단일시장으로 통합하고자 하는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WTO가 그렇고, FTA가 그렇고, DDA(도하개발아젠다)협상도 그러한 작업의 일환이다.
자본운동의 국제화와 이로 인한 국제적 경제거래의 확대는 더 많은 이윤획득과 자본축적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체제의 출발과 함께 오래 전부터 나타났던 현상이다. 특히, 1970년대 초 달러위기를 계기로 브레튼우즈(Bretton Woods)체제가 무너지고 대신 변동환율제도와 역외금융시장과 금융투기에 세계경제가 노출되어 초국적 경제관계는 불안정한 조직으로 되었다. 여기에 자본이동에 대한 국가의 규제가 완화됨으로써 초국적 자본의 활동이 확대되었고,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계화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초국적자본이다는 사실은 여러 통계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즉, 1980년과 1996년 사이에 해외무역은 두 배정도 성장한 것에 비해서, 같은 기간동안 초국적자본의 해외직접투자는 세배나 증가했고, 초국적자본의 해외자회사에 의한 판매액은 수출증가율보다 20%이상 항상 앞섰으며, 세계무역의 70%가량이 초국적기업에 의해 지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기술특허의 90%가 초국적기업에 의해 소유되고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란 국가단위의 자본축적을 넘어서서 지구적 차원에서 자본축적이 이루어지게 된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경제공간의 범지구적통합을 통하여 경제적 권력이 지역 또는 국민경제로부터 초국적자본이나 초국적자본에 의한 다국간기구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식품 및 농업부문도 신자유주의 세계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현재의 농식품체제(agri-food system)는 집합적 육류복합체 또는 석유복합체처럼 선진국의 초국적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국제상품복합체(international commodity complexes)로 특징지을 수 있다. 현대의 농식품체제는 농업투입자재의 생산자로부터 농산물의 소매업자까지, 그리고 생산농민으로부터 소비자에 이르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고도로 통합된 시스템으로 되어 버렸다. 농식품체제의 세계화가 진전됨에 따라 식품체인은 서로 다른 행동규칙을 갖는 다양한 부문으로 서로 나눠지게 되었고, 농민으로부터 소비자에 이르는 사회의 모든 참여자들이 국경을 초월하여 서로 연결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현대의 농식품체제는 서로 다른 행동규칙을 갖는 다양한 부문으로 서로 나눠지면서도, 국경을 초월하여 통합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통합은 공간과 부문이라는 두 수준에서 전개되고 있다. 공간적으로 초국적화는 지역 및 생산단위의 양면에서 농업의 특화라는 형태의 집약화를 나타내고 있다. 부문수준에서는 직접적으로 소비되는 농식품의 생산으로부터 대규모 식품가공시스템에서 원료로 사용되는 농산물생산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다수의 농민들조차 농식품의 소비자로 되어 세계 어디에서 어떻게 농식품이 만들어져서 운송되고, 가공되어 유통되고 있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이 과정을 주도하는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들은 밀과 옥수수의 가공, 동물사료, 가금류, 낙농제품, 과일통조림, 씨리얼, 음료농축액 등 음식료부분의 거의 전 부분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자 및 비료, 농약과 같은 농업생산자재산업에도 진출하여 농업생산과 관련된 사업전반에 걸쳐 활동하고 있다.
▲ 초국적곡물메이저들의 폐해를 고발했던 저자의 한국 강연회 포스터 |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검은 전략이 대중 앞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UR)에서 농업협상이 부각되면서부터이다. 당시 미국 측이 UR협정에서 제안한 내용의 대부분은 대표적인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인 카길(Cargill)사의 전직 지배인인 암스튜츠(Daniel Amstutz)에 의해서 작성되었고, 이 제안서는 다른 농업관련 초국적기업들에 의하여 검토되었다. 이 제안서는 곡물무역회사와 농화학회사의 요구에 맞추어 제안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들 제안은 농가에 대한 보조를 줄이고 생산조절을 없애는 것이 주요 내용으로 되었다. 이와 더불어, 초국적 농업관련기업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정부정책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한 구체적인 작업도 병행했다. 예를 들면, 카길사의 최고경영자 미섹크(Ernest Micek)는 클린턴정부 하에서 미국의 수출확대를 꾀하고 수출정책을 대통령에게 자문하는 대통령수출자문단의 멤버로 임명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거대 농업관련기업체와 정부의 밀착은 다른 여러 가지 사례에서도 확인되는데, 1986년에 카길사, 몬산토(Monsanto)사, 노비스코(Nobisco)사 등은 농식품복합체의 로비활동을 담당하기 위해 농업정책개발그룹(Agricultural Policy Working Group: APWG)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들은 소농이 세계가 필요로 하는 식량을 생산할 정도로 충분히 생산적이지도 않고, 효율적이지 않다는 목소리를 내기 위하여 수백만 달러를 광고에 쏟아 붇고 있다.
이들 농식품복합체의 다국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 의해서 이루어진 유럽과 동아시아에 대한 농산물원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해외원조라는 메커니즘을 활용하여 미국의 잉여농산물을 국외에서 처리하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은 자국의 잉여농산물을 처리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농산물원조를 이용하였고, 그 구체적 예가 1954년의 ‘농산물무역개발원조법(일명PL480호)’에 의한 식량원조였다. PL480호에 의한 개발도상국에 대한 식량원조는 거대곡물상사와 식품가공대기업(예를 들면 곡물제분회사)을 비롯한 농업관련기업의 해외활동전개의 조건을 만들었는데, 당시 식량원조업무의 대부분을 거대곡물상사가 담당함으로써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후 미국은 국제수지의 적자라는 국내적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높은 곡물가격이라는 외부적 여건을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농산물의 상업수출을 확대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농산물의 상업적 수출확대를 위한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예를 들면, 수출상대국에 대한 강력한 개방요구와 자국농산물에 대한 보조·융자 등의 수출조성조치, 미국산 농산물전시회의 해외개최)은 거대곡물상사의 해외활동을 지탱해 주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또한, 196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친 녹색혁명을 비롯한 미국 등 선진국 정부와 세계은행(IBRD)등 국제기구가 추진해 온 개발도상국에 대한 농업개발원조가 농업관련기업의 현지진출과 자원, 시장지배를 위한 환경을 정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 녹색혁명은 쌀, 소맥, 옥수수 등 3대 작물의 다수확개량품종, 관개, 화학비료와 농약, 그리고 이들을 결합하는 관리기술을 구성요소로 하는 일련의 기술체계의 개발과 보급이라고 할 수 있다. 녹색혁명은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존하면서 다수의 토착곡물을 소수의 고수확 작물로 대체하도록 제3세계의 농민들을 정부와 기업이 설득한 대규모 캠페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농업지배
녹색혁명으로 각 지역에서 비약적인 생산의 확대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관개시설, 건설자재 등의 투입을 불가피하게 함으로써 농업자재시장의 개척을 겨냥한 다국적 농업관련기업의 지배가 강화되었다. 이를 계기로 현지 농민의 계층분화가 이루어져 경제력이 약한 다수의 중소농민의 탈락·이농이 촉진되었다. 화학비료나 농약의 대량투입과 농업기계의 도입, 관개시설의 정비 등은 이들 투입재를 개발하여 생산·판매하는 농업관련기업의 관여를 전제로 하는 것이었고, 이로 인해 전통적인 농촌공동체에 속해 있었던 후진국농민을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급속히 편입시킴으로써 이들 생산자재에 관한 다국적 농업관련기업에 거대한 시장을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식품가공과 판매를 중심적 사업분야로 했던 곡물메이저들은 녹색혁명을 지탱하는 종자의 생산과 개발, 농업기계·화학비료·농약 등의 제조부분에까지 진출하여 농업 식량시스템 전 과정을 관리하는 성격이 강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후진국에 대한 녹색혁명을 비롯한 농업개발원조의 대부분은 전략원조의 성격이 강하고, 다국적 농업관련기업의 현지진출 및 자원과 시장지배를 위한 환경정비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형성된 공장식 농업(industrial agriculture)경영으로 인해 농약의 남용을 가져오게 되고, 농촌에서 농민들에 의해 운영되는 협동체를 위협하고, 작물의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과도한 기술의 이용을 초래하여 농촌사회의 불평등을 조장하여 결국은 가족농을 몰아내고 전통적인 농촌사회를 파괴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나라의 농업기반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지배 하에 놓여지게 되고, 식품의 다양성은 파괴될 뿐만 아니라, 값싼 위험식품문화(junk food culture)가 만들어 지고 있다.
이들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싸게 원료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구매해고, 가공 후에는 이를 가장 비싼 값으로 판매할 곳을 지구전체에서 찾는다. 아울러 대외직접투자, 기업내 무역 및 복수국 국내기업전략(Multinational "Multi-domestic" Strategies)등을 통하여 이윤획득을 꾀한다. 각 생산공정을 각국의 여건에 맞추어서 분담시키는 체제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시키는데, 예를 들면 노동집약적인 부분은 임금이 낮은 나라로, 환경부하가 큰 부문은 환경규제가 느슨한 나라로, 기술집약적인 부분은 본국에 배치하는 전략을 구사하게 된다. 나아가서 이전가격설정을 통한 이윤의 극대화(관세, 과세, 각종규제 등의 격차를 이용), 조세회피 등 국경을 활용한 여러 가지의 비용절감이나 이윤형성의 방법을 도입함으로써 초과이윤의 획득을 꾀한다. 또한 농식품의 경우, 공산품과는 달리 국제적 생산공정을 일괄적으로 설계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기 때문에 원료생산과 식료소비의 단계에서 지역색을 띠지 않을 수 없다는 사정으로 인해서 현지생산·현지소비형의 복수국 국내기업전략도 병행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세계화의 파고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지배 하에 놓여있는 것은 후진국이나 수입국의 농업생산자·소비자뿐만 아니라, 선진수출국의 중소가족농가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농식품수출국인 미국의 경우도 농식품복합체의 사업영역 확대과정과 맞물려서 기존의 가족농의 괴멸과 대규모 기업농의 급성장으로 생산의 특화가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상위 2%의 농가가 전체 판매액의 50%를 생산하고 있으며, 하위 73%의 영세농 및 가족농은 단지 9%의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농업이 시장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농가수는 급격하게 감소했고, 농민보다도 감옥에 수감 중인 사람이 더 많은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농식품복합체의 초국적화는 농업의 특화를 더욱 유전적 자원의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농업생산의 획일화를 강제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감소시키고 있다. 환경농업으로 전환하는 방향과는 반대로 자연순환을 파괴하는 영농형태가 국제경쟁력이라는 이름아래 강요당하고 있다. 지역성이 풍부한 인간다운 식생활·식문화의 발달이라는 방향과는 반대로 획일적인 왜곡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 한 대형유통매장에서 판매한 바나나. 값싼 바나나 원산지는 필리핀이다. 기획글 1회에 언급된 카무칸섬에서 온것은 아닌지.. |
식량주권확보로 나아가는 길
21세기의 화두로 환경과 식량이 자주 부각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기상이변의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으며 안정적인 식량확보 또한 낙관할 수만 없는 상황이다. 특히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이 농산물을 해외시장에서 대량으로 구매할 경우에는 세계농산물시장은 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종종 제기되고 있다. 평상시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식량의 안정적인 확보문제이지만, 이것이 현실로 나타날 때에는 그 대가가 너무 크다는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72년 세계적인 흉작이 발생하자, 구소련정부는 곡물을 대량으로 수입하였고 세계농산물시장은 오랜 기간동안 지속되었던 과잉기조에서 탈피하여 핍박기조로 전환되었고, 당시 국제 쌀가격은 367%, 밀가격은 212% 급등하였다. 당시 미국의 곡물수출에서 다국적 곡물상 상위 6개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소맥은 96%, 옥수수는 95%에 이르렀다. 당시의 곡물재고율은 16%로 세계의 적정곡물재고율 18%와 불과 2%의 차이밖에 보이지 않았음에도 국제곡물시장이 소수의 다국적 곡물상에 의해 지배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가격급등이 일어났던 것이다. 더군다나 거대 농식품복합체의 시장지배력이 더욱 강화된 현재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식량무기화는 소설 속의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따라서 곡물공급의 과잉기조 하에서 유지되고 있는 낮은 가격이라는 것도 우리의 공급능력이 어느 정도 지탱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지, 곡물의 자급기반이 와해된 속에서도 값싼 곡물의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면 큰 오산이다. 식량주권의 확보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식량주권이라는 개념은 자급률차원에서의 식량안보 개념에서 더 나아가 안전한 먹거리를 국민이 안심하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까지도 포괄해서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농식품체제는 환경적으로 균형잡힌 영농체계를 무너뜨리고, 유전적 자원의 다양성을 훼손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어렵게 만들고, 재생불가능한 자원의 다량투입을 전제로 한다. 또한 경종과 축산을 분리시킴으로써 환경파괴문제까지 야기하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농업생산을 담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식량주권의 확보는 녹색혁명형 농업, 즉 공장식 농업의 극복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안전한 먹거리 확보를 위해, 식량주권을 회복을 위해서 극복해야 할 대상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 그 자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운동법칙인 것이다.
연재기획 '세계화와 한국농업' 순서
1. 기획소개 '세계화와 한국농업'
2. 거꾸로 가는 한국농업
3. 농업의 세계화 누가 주도하는가
4. 경쟁력 지상주의를 그대로 답습하는 노무현 정권의 농정 - 누구를 위한 구조조정인가
5. 우리 농민은 정말 행복한가?
6. 친환경농업이 한국농업의 대안이 되려면...
7. 협동조합의 역할과 미래
8. 식량보장을 말 한다
9. 한국농업의 길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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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환경과 생명 2005년 봄호에 게재된 글을 재 편집 보완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