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을 소수 권력자의 노조로 전락시킬 셈인가"

[민주노총진단연속기고](6) - 현장 조합원들에게 할 말이 없다

민주노조 사수를 외치는 노동자들!!

내가 속해 있는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에는 엔텍이라는 사업장이 있다. 지금 본사에서 점거농성을 하고 있는 엔텍 조합원들은 최저임금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60만 원의 월급을 받는 사업장이요, 50대 여성조합원이 50%를 넘는 사업장이다. 엔텍 조합원들이 노조를 만든 이유는 정말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관리자들의 욕설을 그만 듣고 싶었고 최저임금 기준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조금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손가락이 돌아가면서까지 일하는 환경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고 싶었다.

그러나 엔텍자본은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엔텍자본은 ‘왜 하필 민주노총 금속노조냐. 회사를 경영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며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노조탄압을 일삼고 있다. 조합원들을 회유 협박하여 노조 집단 탈퇴를 조직하고 또 구사대를 만들어 노동자들간의 분열을 조장한다. 노조설립을 하고 투쟁한지 7개월이 넘도록 단체교섭 요구안은 모두 ‘수용불가’이며 파업을 접고 현장으로 들어가서 교섭을 하겠다고 해도 공장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합의사항 파기는 물론이고 관리자들에 의한 폭행을 일삼고 50이 넘은 여성조합원들은 눈물을 흘리며 투쟁을 하루하루 이어오고 있다.

엔텍 조합원들이 이토록 처절하게 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노동자로서의 ‘존재’를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 핵심에 노동조합을 지키는 것이 있다. ‘민주노조 사수’를 걸고 이 기나긴 싸움을, 이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10월 4일 조합원들이 엔텍 본사를 점거하고 ‘합의사항 이행, 민주노조 사수’를 걸고 투쟁한지 보름이 다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라는 자가 개인의 지위를 이용하여 자본가들에게 돈을 받아 먹었단다. 사람들이 모두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이나 뭐가 다르냐며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엔텍조합원들이 7개월째 지키고 있는 ‘민주노조’에 먹칠을 민주노총 지도부에 있는 자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엔텍 간부가 나에게 ‘민주노총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나니 비조합원들에게 할 말이 없다. 민주노조 같이 지키자고 했는데 얼마나 우습게 보겠는가. 자존심 상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50이 넘은 여성조합원들, 어렵게 투쟁을 이끌고 있는 간부들에게 우리가 민주노조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

우리 지역에는 또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노동자들이 1년 가까이 투쟁을 하고 있다. 10월 22일이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하이닉스-매그나칩 자본의 정리해고, 직장폐쇄 등 악랄한 탄압은 하이닉스-매그나칩 노동자들을 강철노동자로 만들었다. 공장 진격투쟁을 벌이고, 공단 대로를 점거하며 투쟁을 해왔다. 그 힘으로 지역총파업을 전개하고 이 투쟁을 알려내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공장에도 들어갈 수 없는 이 조합원들은 매일 노숙을 하면서 공장 앞을 지켰다.

급기야 올해 전원 불법파견 판정을 받게 되었고 ‘공장으로 돌아가자’, ‘정규직화 쟁취하자’는 요구는 다시금 전국적 투쟁으로 확대되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창원에서, 화성에서, 울산에서 투쟁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만나고, 특수고용노동자들과 만나고 그 힘으로 다시 전체 노동자들과 만나는, 전국 투쟁전선으로 구축되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리고 이는 비정규개악입법저지-비정규노동자 권리보장 쟁취 투쟁과 함께 하반기 핵심적인 투쟁으로 올라와야 하는 상황에 있다.

이토록 처절하게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에 전체 노동자들이 전국 투쟁전선으로 묶어야 할 이 때 이런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누구는 하반기 투쟁을 겨냥한 정권의 탄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토록 현장에서 투쟁하고 있는 많은 동지들이 있는데, 날마다 어렵게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는데 상층지도부는 썩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정권이 먼저 안 것 일뿐이다.

더욱 정확히 말한다면 하반기 투쟁을 망치고 있는 것은 정권과 자본이 먼저가 아니라 우리 내부, 썩어가고 있는 관료화된, 권력화된 소수 간부들이다.

어떤 조합원들은 ‘우리는 누구도 믿지 못 하겠다’고 말한다. 지난 시민들은 ‘다 똑같은 놈들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 강승규는 혼자 돈을 받아 개인 용도로 사용했는지 모르지만 그 공격은 우리 모두가 받고 있다. 거기에서 ‘내가 아니다’라고 말한 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조합원들이 보기에는, 다수 민중들이 보기에는 노동조합 활동하는 자들은 모두 똑같을 것이다. 나는 이런 소리를 현장에서 듣는다. 변명하고 싶지도 않다. 부끄럽기만 할 뿐이다. 하반기 투쟁을 조직해왔던 우리 조합원 동지들에게, 그리고 지금도 투쟁하고 있는 장기투쟁사업장 동지들에게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그 오물을 우리 모두가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 모두가 말이다.

현장간부들에게 민주노총이 내가 지켜야 할 조직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

현장은 항상 보이지 않는 자본과의 전쟁을 하고 있다. 자본의 공격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고 시기를 고려할 뿐이다. 웃으며 만날 때조차도 자본가들은 노동자의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것이 길지 않지만 현장에서 내가 깨달은 것들이다. 그래서 열악한 사업장일수록 민주노조를 지킨다는 것이 바로 저들의 탄압을 각오하는 것이고 투쟁을 결의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장 조합원들이 그토록 지켜왔던 ‘민주노조’를 순식간에 물거품으로 만든 것이 바로 강승규 비리사태이다.

대공장 인사비리가 터졌을때 ‘민주노조가 저럴 수 있나’는 생각을 했지만 민주노조의 역사와 정신을 부정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현장간부들에게 사측과의 담합의 가능성을 늘 경계하고 분명한 태도를 강조했지만 여전히 민주노총은, 민주노조운동은 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조합원들에 서기도 부끄럽고 솔직히 투쟁의 정당성도 말할 자신감이 없다. 과연 현장에서 활동가하고 있는 간부들에게 민주노총이 자본과 결탁한 상층관료들의 조직이 아니라 우리 노동자들이 어떤 탄압이 오더라도 지켜야 할 조직으로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회의가 생긴다. 우리에게는 바로 민주노총이 나의 조직이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도부는 바로 그런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그럴려면 내 짧은 생각에는 우선적으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정말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해야 한다.

한국노총 전위원장과 사무총장이 비리혐의로 구속되었을 때 우리는 ‘그럴줄 알았다. 썩은 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지도부에 있던 자가 구속되고 민주노총이 정말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그에 대한 분명한 책임과 분골쇄신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출발점이다. 그리고 지역, 연맹, 단위현장에 있는 모든 간부들은 자신의 문제로 이 문제를 받아들이고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조합원의 무관심과 냉소는 총연맹만이 전체 노동조합으로 확대되어가고 있다. 단위현장에서부터 총연맹에 이르기까지 혁신을 해내는 실천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무너져버린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신뢰를 다시금 복원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그 출발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이 너무도 답답하다. 여전히 책임 여부를 둔 공방을 하고 있고 강승규 사태는 ‘개인비리’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현장에서는 ‘조합원 총회는 물 건너 간 것 아니냐’라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다. 하반기 투쟁의 시작도, 전체 조직혁신을 위한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민주노총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시간도 별로 많지 않다. 시기를 놓치면 정말 민주노총은 자본과 결탁하여 협조적인 노사관계를 추구하는 소수 권력자들의 노조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지금도 말이 아니라 자본과의 전선에서 하루하루 긴장하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전국 곳곳에 있다. 바로 이 노동자들의 조직으로 민주노총이 거듭나는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덧붙이는 말

조남덕 님은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사무국장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