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정보로 신분을 확인하는 시대… 인권 침해 논란

[특별기획] 기로에 선 개인정보보호법<1> - 당신을 감시하는 천개의 눈(3)
생체인식기술은 어떤 인증 기술보다도 굴욕적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소변과 피를 제시한다. 자신에게 다른 사람의 눈을 이식한다 … 영화의 한 장면이 현실이 될 지도 모른다. 바야흐로 자신의 신체로 신분을 증명하는 시절이 왔다. 지문, 망막, 홍채, 정맥, 음성, 디지털 화상, 그리고 유전자까지. 이제는 생체인식기술을 생활 곳곳에서 접할 수 있다.

원래 생체인식기술은 핵시설이나 은행금고처럼 특별한 장소에 대한 접근 통제용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최근에는 작업 현장이나 소매점, 현금인출기 같은 다양한 용도로 확산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국가 기관이 직접 나서 자국민이나 외국인의 생체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이 테러 방지의 명목으로 외국인 입국자의 지문과 얼굴을 검사하고 있으며 최근 한국 경찰은 시설 아동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미국 국토안보부가 설명한 유에스-비짓 절차
생체인식기술은 신체와 행동상의 특성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는 기술이다. 기존에 저장해 둔 개인의 생체정보를 제시된 생체정보와 대조하는 방식이다. 이 기술이 정부와 기업의 흥미를 끄는 것은, 카드나 종이로 된 기존 신원 인식 방식에 비해 위조가 어렵다는 점에서이다. 개인의 고유한 신체적 특성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가장 확실하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기술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체될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생체정보가 개인정보 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문이나 홍채와 같은 생체정보는 각 개인의 신체에 각인되어 특별한 신체적 변화가 없는 한 평생토록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생체인식기술이 사용되고 있는 현장에서는 이에 합당한 자기 정보에 대한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않다.

일단 생체정보는 지문이나 얼굴, 혹은 머리카락과 같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도 몰래 수집할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어 개인정보 수집시 당사자 동의를 받도록 한 프라이버시 원칙이 침해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미국이 테러용의자 파악을 위해 공항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생체정보 데이터베이스의 경우 법적 근거나 당사자의 동의 없이 구축되었다는 비판이 높다. 또한 생체정보가 기존에 구축된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와 결합할 경우 자신에 관한 모든 개인정보가 생체정보를 중심으로 통합될 가능성이 높다. 생체정보가 가장 확실한 고유정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 생체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때 당사자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지 않는 것은 계속되는 프라이버시 침해를 방기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생체인식기술은 다른 어떤 인증 기술보다 굴욕적이다. 자신의 신체에 각인된 내밀한 특성을 '까발려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의 공항 등지에서 지문과 같은 생체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테러범이나 범죄자로 간주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생체정보의 제공을 거절하는 것이 가능할까? 테러범이라는 근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테러범이 아니라는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혐의자로 몰릴 것이다. 지금까지 국제인권규범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옹호해 왔는데, 이제는 무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유죄로 추정당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유전자 정보는 한 사람의 현재 뿐 아니라 미래까지 유추하려는 경향으로 논란을 빚고 있다. 유전자 검사결과를 토대로 개인의 잠재적 병력을 추측하거나 '범죄 가능성 높음'과 같은 추상적인 규정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이미 미국의 일부 기업들은 유전자 정보를 토대로 고용을 결정하려고 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은우 변호사는 "이것은 감시가 새로운 차별의 수단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경고한다.

프라이버시권이 엄격하게 보장받아야
프라이버시단체 전자프라이버시정보센터(EPIC)는 생체인식기술보다는 다른 기술을 사용할 것을 권고한다. 만약 생체정보를 불가피하게 사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생체정보 원본과 대조본이 어떤 방식으로 저장되는가 △도용되거나 남용될 가능성은 없는가 △인식 과정에 오류는 없는가 △어떻게 '확실한 사람'임을 판단하는가 △다른 정보와 연동되는가 △생체정보의 이용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를 사전에 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이은우 변호사는 생체정보의 처리에 대해서는 법률적으로 특별한 보호 규정을 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생체정보의 수집과 이용은 제한적인 경우에만 허용하고 원칙적으로 정보주체의 거절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저 클라크는 이런 요건들이 갖추어지기 전에는 생체정보의 이용을 일시적으로 중지시키는 '모라토리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생체정보의 이용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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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말

장여경 님은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국 활동가이며, 이 글은 월간 <네트워커> 11호 '표지이야기'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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