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쿼터스 컴퓨팅(Ubiquitous Computing) 환경이 만드는 멋진 신세계다. 모든 사물에 칩이 깃들고, 모든 사물은 컴퓨터가 되며, 원격으로 네트워킹된다. 컴퓨터는 도구가 아닌 환경이 된다. 사람이 컴퓨터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로 짜여진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잠깐, 조건이 필요하다. 모든 물건들은 당신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임을 확인해야 한다. 상점과 버스는 당신의 신분증이나 핸드폰을 통해서, 골목길 카메라는 당신의 얼굴을 통해서, 현관문 손잡이는 당신의 지문을 통해서 당신임을 확인한다. 또한 모든 물건들은 당신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 핸드폰은 당신의 통화 내역과 현재 위치를, 카메라는 당신의 얼굴을, 집안 물건들은 당신의 취향을, 현관문은 당신의 지문을 알고 있다. 한편 모든 물건들은 당신의 행동을 기록한다. 상점은 당신이 언제 무슨 물건을 구매했는지, 버스는 당신이 어디서 타고 어디서 내리는지, 카메라는 당신이 골목길에서 무엇을 했는지, 집안 물건들은 당신이 집에서 언제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기록한다.
개인이 어디에 있던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생각하던지 간에 주변의 물건들은 개인을 인식하고 그에 맞춰 작동하는 멋진 유비쿼터스 환경. 그러나 거꾸로 말한다면 유비쿼터스 환경은 당신이 어디에 있던지 간에 당신이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당신의 정보가 빠져나가고, 또 어디선가 기록되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누군가가 당신의 그러한 정보들을 보고 있다면? 유비쿼터스가 만드는 멋진 신세계는 동시에 유비쿼터스 감시 사회다. 누군가가 당신의 신분증, 핸드폰 더 나아가 지문과 얼굴을 복제한다면? 유비쿼터스가 만드는 멋진 신세계는 동시에 유비쿼터스 위험 사회다. 당신의 정보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 후세에 그의 이름은 아마도 빅브라더로 불리울 것이다.
아직 먼 나중 얘기라고? 천만에. 위의 사례들은 현재 활용되고 있는 기술들만으로 구성한 것이다. 다음의 사례들은 유비쿼터스 감시 사회가 지금 현재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려줄 것이다.
① CCTV(Closed-Circuit TeleVision)
강남구의 CCTV 관제센터는 수평 360도 회전과 상하 각도조절이 되고, 100미터 밖에 있는 차량의 번호판까지 인식할 수 있는 줌(zoom)기능을 갖고 있는 272대의 CCTV를 원격 제어할 수 있다. 최근 CCTV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어 탈부착이 용이한 무선 CCTV, 어둠속에서 촬영이 가능한 야간 조명 기술, 옷 속의 물건을 확인할 수 있는 투시 촬영 기술, 개인의 동선을 파악해서 수상한 사람을 추적하는 행동 패턴 인식 기술 등이 이미 개발되어 있다.
런던의 시민은 하루 평균 20회, 최대 300회까지 CCTV에 촬영되며, 미국에서는 풋볼 경기장의 수십만의 관중들을 촬영해서 실시간으로 범죄용의자를 찾아내는 얼굴 인식 시스템을 가동한 바 있다. 빈틈없이 설치된 CCTV, 화상정보 데이터베이스, 얼굴 인식 시스템이 결합된다면 한 사람의 하루 일과를 고스란히 추적할 수 있다.
강남구청을 시작으로 서울시와 경기도가 CCTV의 설치 계획을 발표했고, 경찰청은 최근 전국으로 확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우리나라는 주민등록제도는 전국민의 디지털 화상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②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RFID란 무선 주파수를 발산하는 1mm도 안되는 초소형 칩에 제품의 생산 및 유통 정보를 저장하고 사물에 부착한 뒤 이를 무선 리더기를 통해 읽어 들이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매장의 제품 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으며, 재고처리 등의 절차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대형 소매업체들은 RFID의 도입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왔다.
RFID는 어디에든 부착할 수 있고, 원거리에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유비쿼터스 환경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그만큼 위험성도 크다. 예를 들어서, 기업들이 RFID 태그를 옷과 같은 상품에 숨겨놓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입고 있는 옷이 어떤 숨겨져 있는 판독기를 향해 정보를 보내준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생활할 수 있다. 또한 이론적으로 RFID의 전자 제품 코드를 사용하면 전 세계의 모든 제품 하나하나가 그 제품에만 해당되는 고유 ID 번호를 갖게 되며, 이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프라이버시가 침해 될 소지가 있다.
RFID의 대상은 사물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7월 멕시코 검찰은 보안지역 출입통제와 테러 대비를 위해서 검찰 총장을 비롯한 160여명에게 제거 불가능한 칩을 팔에 이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한국전산원이 한 어린이집에서 어린이집 곳곳에 센서를 설치하고, 원아들에게는 전자 칩을 달아 아이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실험을 준비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안겨준바 있다.
③ 위치정보
본래 군사목적으로 개발된 위성항법장치(Global Positioning System, GPS)의 역할은 적의 동태를 살펴 그들의 목적과 의도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GPS는 물론 신용카드, 교통카드, 유선전화, 무선전화, PDA, IP주소 등 수많은 기기가 개인의 위치정보를 끊임없이 어디론가 보내고 기록한다.
영국에서는 성 범죄자와 상습 가정폭력범 등 이른바 반사회적 범죄자들을 인공위성 위치추적 시스템으로 24시간 감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의 일부 지역에서는 오래전에 범죄자의 팔 다리에 송신기를 붙여, 주변 경찰차에서 그 신호를 감지할 수 있게 하는 전자 감시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범죄자를 교도소가 아닌 집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노조활동과 관련된 삼성 SDI 노동자들은 불법 복제된 핸드폰을 통해서 수개월에 걸쳐 24시간 자신의 위치를 추적당했다. 효율적 업무와 관련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버스나 택시 운전기사나 택배업체 직원, 방문 서비스 직원들은 PDA 등을 통해서 자신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회사에 파악되고 있다.
④ 생체 정보
생체정보는 개인에게 고유한 생체정보를 이용해서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말한다. 생체정보는 개인의 신체에 각인된 가장 고유한 정보인만큼 가장 확실한 정보이지만, 동시에 가장 민감하고 위험한 정보이다.
이제는 생체인식기술을 생활 곳곳에서 접할 수 있다. 지문, 망막, 홍채, 정맥, 음성, 얼굴, 그리고 유전자까지. 서울시립대, 전북대 등에서는 도서관 출입을 통제하고 좌석을 발급하기 위한 용도로 지문인식기를 도입했다. 서울대 기숙사에서는 손등의 혈관을 활용한 생체 정보 인식기가 도입됐다. 서울 강남구 동사무소에서는 인감증명 발급 시에 본인 확인을 위해 지문인식기를 도입했다. 경찰청에서는 미아를 찾기 위해서 전국 보호소의 미아들의 DNA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보관할 계획을 갖고 있다.
⑤ 스마트카드
스마트카드는 손톱만한 칩 하나에 CPU와 메모리를 담고 있어서 많은 양의 정보를 저장하는 것은 물론 자체 연산도 가능하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는 각종 개인정보가 하나의 카드로 통합되는 것이 가능하다. 이번에 발급되는 서울시 교통카드 T머니카드는 32KB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으며, 주민등록번호와 핸드폰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입력할 경우 전자화폐카드, 포인트카드, 현금영수증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
교통카드 뿐만이 아니다. 1998년 주민등록증을 스마트카드로 대체하려는 시도는 반발에 부딪혀 좌절되었으나 최근 또다시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몇몇 신용카드사들은 올해 안에 신규발급하는 신용카드를 모두 스마트카드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은행통장, 의료보험증, 운전면허증, 여권, 학생증 등을 스마트카드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고, 이미 부분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실로 하나의 카드로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⑥ 슈퍼 데이터베이스
개인정보가 수많은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도 두려운 일이지만, 그러한 데이터베이스들이 연결되어 각각의 개인정보가 하나로 통합되어 거대한 슈퍼 데이터베이스가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경악할 만한 일이다.
개인의 직업이 무엇이고 소득은 얼마인지, 어디에 있는지, 언제 어디로 무엇을 타고 이동했는지, 누구와 얼마나 통화했는지, 어디서 무엇을 샀는지, 소비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어떤 질병을 갖고 있는지, 이 모든 정보가 부지불식간에 하나로 통합된다. 각각의 정보는 개인의 한 단면에 불과하지만, 그러한 단면들의 집합은 곧 그 자체로 한 개인의 전체, 본인도 기억하지 못하는 개인의 전체를 보여줄 수 있다.
데이터베이스 통합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 최고, 최악의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바로 주민등록번호다. 전국민이 평생동안 불변하는 고유의 식별번호를 항상 외우고 수시로 도처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모든 데이터베이스가 언제나 간단히 통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용불량자 리스트에 올라 본 사람은 그 위력을 경험했겠지만, 대부분의 금융정보는 통합 관리되고 있다. 온갖 제휴와 통합서비스의 명목 하에 각종 데이터베이스가 통합되고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전자정부는 공공기관 간에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통합하고 공동으로 이용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두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기술들은 안전, 보안, 편리, 신속, 효율 등의 이유로 도입된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들은 감시와 통제라는 목적과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며, 이러한 기술들은 언제든지 감시 통제 시스템으로 돌변할 수 있다. 보안 기술로 우려를 해소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시스템이던지 간에 최종적으로는 인간의 판단이 개입한다. 최근의 일련의 정보유출 사건들의 원인은 어느 하나 보안 기술이 취약했기 때문이 아니다. 게다가 정보 유출 이전에 필요 이상의 정보를 개인의 동의 없이 수집하는 것, 그 자체가 감시다.
아직 아무도 유비쿼터스 환경의 실체를 온전히 알고 있지 못하다. 그것이 가져다 줄 안전, 보안, 편리, 신속, 효율 등의 장점들은 굳이 들으려 하지 않아도 시도 때도 없이 울려퍼지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 어떠한 재앙을 가져올 것인지는 조금도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비쿼터스 기술들은 아무런 법적인 근거 없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것을 규제할 수 있는 법률조차 존재하고 있지 않다. 유비쿼터스 환경은 우리에게 지금 이렇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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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 님은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국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