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의 ⟪레딩 감옥의 발라드⟫는 극심한 감시, 고립, 비인간적 처우에 대한 생생한 고발이자, 수치와 처벌의 체제에 맞선 익명의 예술적 저항이었다. 이 시는 감옥 내 참혹한 현실을 고딕적 이미지와 상징으로 포착하며, 시인의 목소리를 통해 연민과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100년 후 뱅크시의 벽화와 함께 재조명되는 이 작품은, 형벌의 비인간성에 대한 비판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예술의 힘으로 증언한다.
팔레스타인 문학은 디아스포라와 점령의 현실 속에서 추방된 민족의 정체성과 기억, 저항, 귀환의 열망을 독창적으로 담아내며 세계 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에밀 하비비, 가산 카나파니, 이사벨라 하마드, 안와르 하메드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은 올리브나무, 열쇠, 유령 등의 상징을 통해 상실과 연결, 희망을 서사화하며 유배된 삶을 다층적인 장르와 감정으로 조명한다. 특히 하비비의 유머, 카나파니의 사실주의, 하메드의 공상과학적 상상력은 억눌린 현실에 대한 문학적 저항을 확장하고 있다.
1948년 시온주의 무장 세력은 팔레스타인 주민 75만 명 이상을 강제 추방하고 500개가 넘는 마을을 파괴하며 이스라엘 국가 수립을 위한 '나크바(재앙)'를 실행했다. 이 과정은 유엔 분할안 발표 직후 체계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점령, 포위, 귀환권 부정 등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현재 팔레스타인 난민은 580만 명에 달하며, 매년 5월 15일은 나크바를 기억하고 저항하는 날로 기념되고 있다.
우루과이의 정치가 고(故) 호세 '페페' 무히카(José 'Pepe' Mujica)는 자본주의는 단순한 소유 관계가 아니라 좌파가 연대의 문화와 함께 맞서야 하는 일련의 문화적 가치라고 주장한다. 그는 소비주의와 이기주의를 넘어선 연대의 문화, 절제의 삶, 자율적인 사회를 새로운 좌파의 핵심 과제로 제시하며,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투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히카는 좌파가 실패의 원인을 되돌아보고 문화와 윤리를 바꾸는 창조적 실험에 나서야 한다며, "혁명은 다른 문화를 함께 만드는 일"이라고 역설한다.
루터교 목사이자 기자인 안젤라 덴커는 저서 ⟪White Jesus의 제자들⟫에서 백인 남자아이들이 기독교 민족주의와 혐오 이데올로기에 빠져드는 과정을 분석하며, 그 중심에 ‘백인 예수’ 도상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 이미지가 백인 남성 중심의 기독교 권력 구조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소년들의 분노와 소외감을 타인에 대한 증오로 전환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을 통렬히 비판한다. 덴커는 역사적 예수를 복권함으로써 소년들이 억압받는 자들과 연대하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책은 체계적 대응보다 개인적 접근에 치우쳤다는 한계도 남긴다.
슬라보예 지젝은 애닐 세스(Anil Seth)의 『Being You』를 비판적으로 독해하며, 의식이 단순한 생물학적 자기조절이 아니라 자기모델의 자율화로 출현한 주체성이라 주장한다. 그는 진정한 자아는 삶의 재생산을 초월하는 죽음 충동과 무의식을 포함하며, 이는 오직 정신분석적·헤겔적 전회로만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지젝은 인지과학의 모델들이 놓치는 인간 주체성의 급진적 단절성과 윤리적 잠재력을 복원하려 시도한다.
맷 맥매너스는 안젤리아 윌슨의 신간 ⟪증오의 정치: 어떻게 기독교 우파는 미국 정치의 영혼을 어둡게 만들었는가⟫를 통해, 미국 기독교 우파가 지난 수십 년간 어떻게 막강한 권력을 쌓아왔는지를 추적한다. 윌슨은 종교적 열정과 자본주의의 이해관계가 결합해 어떻게 거대한 정치-종교 연합이 형성됐는지를 고발한다. 그녀는 이들의 도덕적 우월의식과 이분법적 세계관이 혐오, 배제, 반지성주의로 이어졌으며, 이는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맥매너스는 이러한 분석에 니체와 키르케고르의 종교비판을 덧붙이며, 현재의 기독교 우파는 진정한 신앙이라기보다 자기 도취적 피해의식과 정치적 복수심에 기반한 일종의 '거짓 신앙'이라고 지적한다. 기독교는 이런 식으로 민족주의와 사회적 증오의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고 그는 경고한다.
1945년 5월 8일, 프랑스가 나치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던 날, 알제리에서는 프랑스 당국이 독립을 요구하던 평화 행진을 잔혹하게 진압하면서 최대 3만 명에 이르는 알제리인이 학살되었다. 이 사건은 식민주의적 폭력의 연장이자 독립운동의 씨앗을 억누른 계기였으며, 진상규명과 공식 인정은 여전히 미진하다. 학계와 시민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집단 학살은 프랑스-알제리 간 역사 기억에서 오랫동안 음지에 있었으며, 진정한 화해와 공동의 역사 인식을 위한 구조적 노력과 기억의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스페인의 민주주의 이행을 일컫는 '전환기(La Transición)'는 프랑코 사망 이후 1982년까지의 정치적 전환을 둘러싸고, 영웅적 서사와 기만적 체제 유지라는 상반된 해석이 공존해 왔다. 하나는 국왕과 수아레스 등의 엘리트 주도 아래 평화적 합의와 국민 화해가 이뤄졌다는 '신화적' 서사이고, 다른 하나는 진정한 단절 없이 프랑코 체제의 연속성을 유지했다는 '반신화'적 비판이다. 그러나 역사학계는 이 과정을 개방적이고 갈등적인 현실의 산물로 보고 있으며, 지나치게 단순화된 대중 서사에서 벗어나 비판적이고 사실에 기반한 역사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