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맵, 명확한 전술 없으면 찻잔 속 태풍 될 수도

민주노총 로드맵 정책워크샵 4차 끝으로 마무리

지난 달 6일 노사관계 로드맵 총론 및 단결권을 주제로 시작된 민주노총 로드맵 정책워크샵이 27일 4차 워크샵을 끝으로 마무리 됐다.


"진정 노사관계선진화를 원한다면 노조를 대등한 당사자로 만드는 것에서 출발해라"

‘노사관계로드맵 문제점에 대해 본격적으로 대안 마련을 위해 그동안 부족했던 조직 내부의 공유와 의견 수렴을 위해 마련된 것’이라는 취지에 비해 워크샵 참가는 매우 저조했던 것이 사실. 매 회 참가자는 10명 안팎이었다.

그러나 워크샵에 참석한 이들은 한결같이 “정부의 노사관계 로드맵이 신자유주의 노동시장 유연화를 가속화하는 한편 산별체제 하의 노동운동을 노사협조주의 노동운동으로 재편하려는 의도”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들의 원성은 “현재 추진 중인 정부의 로드맵이 노사관계를 선진화하겠다는 근본 취지에서 출발부터 어긋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자본 편향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

노사관계선진화를 진정 원한다면 대등한 당사자로서 사용자에 대한 노조의 힘이 균형을 갖추도록 노조의 교섭력, 노동 3권을 높이는 방향으로 로드맵의 정신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 역시 이들의 주장이다. 노조조직률 11%,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무조건 배타시하는 전근대적 노사관계 하에서 이제 기업별 노조를 넘어 산별로 나아가려는 한국노동운동의 새로운 출발에 질곡을 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연한 인권의 회복인 복수노조 허용을 빌미로 전임자임금 지급 금지를 기정사실화 △이미 국내외 질타의 대상이 되어 온 직권중재를 폐지하는 대신 최소유지 업무라는 이름으로 광범위한 공익 사업장의 파업권 제한 시도 △사용자 직장폐쇄 허용, 공익 사업장 파업 시 신규채용과 하도급에 의한 대체근로 허용 등 사용자의 직접 대항권 강화 △사용자의 부당노동 행위 형사처벌 완화와 노조의 부당노동행위 제도 도입 △복수노조 허용을 이유로 노조의 교섭창구 단일화 강제 ...

참석자들은 '로드맵의 내용이 관철될 경우 한국의 노동운동은 노조를 유지하는 근본부터 흔들리기 시작해 좌초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복수노조 허용, 직권중재 폐지 등 발전적인 내용도 담고 있다는 선진화 위원의 주장은 이들에게 “말로 주고 되로 받는다”는 인식만을 더할 뿐이었으며, “현실에서 돌파할 힘이 없지 않나, 무조건 거부하지 말고 논의에 적극 참여해 얻을 것을 얻으라”는 연구자들의 충고는 “로드맵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반론을 제기시킬 수밖에 없었다. “로드맵 문제는 축조심의해서 협상할 문제가 아니”며 “공세적인 대안과 투쟁으로 돌파할 과제”라는 것에 모든 지정토론자들이 동의했지만, 아직까지 구체화되지 않은 투쟁계획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9월 논의 시작은 불가피, 명확한 전술 없이는 지리한 교섭 공방 거듭될 수도

노동부는 노사정위원회 논의를 거쳐서 올 정기국회에 법개정안을 상정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힌 바 있다. 지난 6월 4일에는 김대환 노동부장관이 직접 9월 정기국회 입법 추진 입장을 거듭 확인하고 이를 위해 노사정위원회 밖에서의 노사정 논의 가능성도 언급한 바 있다.

물론 이미 한국노총, 경총, 여당이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문제 등 급한 것부터 우선 처리하는 단계적 처리에 무게중심을 표현한 바 있고, 김대환 장관 역시 “상황에 따라 고려될 부분도 있다”며 유연한 입장도 한편으로는 보이고 있는 상황이어서 올해 ‘로드맵’ 논의는 복수노조,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 처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정기국회에서 골격이 되는 것들을 처리하고 안 되는 것은 내년 임시국회에서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 한다”던 이목희 열린우리당 의원의 말처럼 로드맵 논의는 어떤 식으로든 올 정기국회서 수면 위로 올라올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로드맵 대응을 2005년 하반기 주요투쟁과제 및 2006년 5월 '세상을 바꾸는 투쟁‘의 주요한 과제로 상정하고 있다. 노동부가 제출한 ’노사관계 로드맵‘이 논의의 기준이 되지 못하도록 만들고, 로드맵에 대한 비판을 넘어 노사관계 민주화를 위한 민주노총의 정책대안을 제출한다는 것이 기본대응 방향. 최대한 민주노총 자신의 논리를 확보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민주노총은 노사관계 로드맵 대응팀, 교수연구팀, 변호사 연구팀 등을 꾸리고 노사관계 민주화방안 연구위원회 구성 및 연구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연구사업의 결과는 8월말 경 1차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또한 ‘단체교섭 구조 개선 방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역시 8말 하순경 연구결과를 공식 발간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적 대응은 실제 이 정책을 받아들여지게 할 수 있는 현실 동력이 없는 한 ‘연구’로 그칠 수도 있다.


더욱이 민주노총으로서는 비정규법안이 9월로 넘어가면서 로드맵까지 함께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해 있다. 민주노총은 절대 비정규법안과 바꿔치기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이 양 문제가 또 다시 수세적인 교섭의 자리로만 묶일 경우 로드맵은 정부안을 출발로 실익을 논하는 지리한 상층 공방의 대상, 찻잔 속의 태풍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한국노총은 9월 정기국회서는 어떤 식으로든 비정규‘보호’법안을 입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로드맵 중 전임자 문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 현재 비정규법안과 김대환 장관 퇴진 문제를 중심으로 한 노정 대립의 공동 행보가 9월에도 얼마나 공고할 수 있을지 역시 미지수다.

정책워크샵에서는 산별 전환의 시급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맹목적인 산별전환 만으로는 이 시기를 돌파할 수 없다는 것도 역시 비판의 한 축이었다. 때문에 ‘조직혁신, 당면 투쟁, 세상을 바꾸는 투쟁...’ 결국 그 얽히고설킨 고리들을 묶어내는 명확한 투쟁전술 마련에 정책워크샵 참석자들의 고민도 모아질 수밖에 없었다.

“노동시간 단축 투쟁 등 지난 몇 년 투쟁과정을 보자, 10년 준비해서 내용 확보한 주 5일제 투쟁도 실패했다, 정책이 얕아서가 아니라 우리 동력이 없어서 끌려 다녔기 때문이다, 비정규법안 투쟁도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대안의 문제가 아니라 돌파할 길이 안보이니 나오는 문제가 아닌가, 대안마련 좋다, 그러나 답은 뻔하지 않나” 이번 로드맵 정책워크샵의 주발제를 준비해 온 김태연 정책국장이 강조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