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에 닥친 화(禍)

[편집장 칼럼] 금속노조의 교섭권은 어디로 갔나?

세상사 뜻대로 되지 않고 예상대로 되지도 않는다. 아홉 번 꺾인 양의 창자처럼 세상 일이 복잡하다는 구절양장이라는 말도 있고, 새옹지마나 오비이락이라는 사자성어도 그렇게 생겼을 터이다.

금속노조가 현대차 불법파견 철회투쟁 문제로 내홍을 앓고 있다. 각자의 행동에는 뜻한 바가 있었을 테지만, 뜻대로 된 것보다는 그렇지 않은 것, 예상치 못한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9월18일 대법원에서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더 확장해서 확인한 판결을 내렸다. 올해 3월에는 거의 모든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을 내놨다. (물론, 2년 이상 고용한 경우에 한해서만 인정했다.)

그런데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약해지는 것이 인간이라고, 대법원 판결에 앞서 지난해 8월18일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 중 전주와 아산지회가 사측과 신규채용을 조건으로 합의를 봤다. 울산지회는 이 교섭에서 빠졌다. 한 달 후에 있을 대법원 판결이 어떻게 날 지 아무도 장담을 못했기 때문에 사측이 그나마 신규채용을 내놨을 때 이것에 합의하고 따낼 것은 따내자는 심산이 컸으리라.

예상과 달리 대법원은 노동자에게 전향적인 판결을 내렸다. 불법파견이고, 모두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당연히 울산지회 비정규직 조합원들과 아산지회 일부 조합원들은 기존 합의, 즉 8.18 신규채용 합의에 반발했고, 전원 정규직화를 다시 강하게 요구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힘의 논리가 그대로 작용해 신규채용은 확대돼 나갔다. 신규채용은 현실이고, 정규직화는 이상인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금속노조는 지난해 11월 대의원 대회에서 현대차 비정규직 전주지회와 아산지회가 합의한 8.18 합의를 공식적으로 폐기한다. 그런데 문제는 8.18 합의 ‘과정’을 존중한다는 내용의 금속노조 위원장 담화문이 1월 13일 금속노동자 신문에 게재되면서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금속노조(중집)의 입장은 “단체협상 체결권이 없는 지회가 잠정합의를 했으니 규약위반”이라는 대의원대회의 결정을 두고 그동안의 교섭관행에서 명확한 위임 절차가 없더라도 지회가 사측과 합의를 해 왔고, 위의 결정에 따를 경우 다른 지회의 합의까지 모두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합의 과정은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담화문을 두고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8.18 합의 폐기’를 부활시킨 것이라고 반발했고, 급기야 금속노조 위원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하기에 이른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금속노조 중앙집행위원회가 대의원대회를 평가하면서 과거의 교섭과정까지 걱정하며 위원장 담화문을 내고 ‘소급’해서 ‘존중’해야 할 만큼 급한 문제였을까? 문제는 금속노조가 승인해 주지도 않았고 대의원대회에서도 공식적으로 폐기한 8.18합의가 아산과 전주, 울산지역까지 확대되어 면면히 관철되었다는 사실이다. 전주지회는 조합원 전체, 아산은 절반 이상, 울산 지회 노동자도 100여명 이상 개별로 사측의 안을 받고 신규채용 되거나 응시했다. 결국, 전규석 위원장 말마따나 ‘선언’에 불과한 대의원대회의 결정을 두고 이를 실질화할 방안, 가령 ‘신규채용’ 확산을 저지할 후속대책 등을 고민해야 할 상황에서 과거의 교섭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파장이 단순하게 정규직화 투쟁을 어렵게 했다는 현안 문제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금속노조는 ‘교섭권’이라는 벌집을 건드렸다.

벌집을 쑤셔 놓은 금속노조

금속노조는 8.18합의를 승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뒤로 숨어 버렸다. 그러나 울산, 아산, 전주 3지회의 공동교섭을 요구했던 금속노조는 3지회가 각자 판단해서 개별로 교섭에 들어간 상황을 용인하고 ‘존중’해 버렸다. 앞으로 지회와 금속노조의 의견이 맞지 않아도 지회가 사측과 교섭해서 합의안을 만들고 조합원 총회를 열어 통과되면, 금속노조가 승인을 하건 안하건, 대의원대회에서 폐기를 하건 안하건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됐다. 어찌 보면 그동안 사실상 사후승인 형태로 남아 있던 금속노조의 교섭권마저 허수아비 신세로 전락하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교섭권이 사실상 기업지회로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가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산별노조의 지회 집단탈퇴 문제도 수세에 몰리게 됐다. 금속노조의 지회 교섭 ‘존중’ 선언은 지회 차원의 독자적 결의를 존중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교섭권 위임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지회의 교섭이 존중받을 수 있다면, 교섭만이 아니라 여타의 단체행동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논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금속노조는 최종적으로 ‘승인’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버틸 수는 있지만, 결국 산별노조 지회의 집단 탈퇴 문제는 노조가 아니라 법원의 판단에 내맡겨진 상황이다.

발레오만도전장에서는 노조탄압으로 유명한 창조컨설팅의 개입 이후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 깨기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 시점에서 일부 조합원들이 금속노조를 집단탈퇴하고 발레오만도 기업노조로 조직변경을 했는데, 1심과 2심에서는 모두 무효 판결을 받아 현재 대법원의 최종판단만이 남아 있다. 대법원은 그동안 산별노조 지회의 집단탈퇴를 인정하지 않았고 하급심에서 이 판례를 전용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기고 4월 16일 공개변론을 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기존 판례를 바꾸기 위한 절차가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대법원이 공개변론을 노조에 통보한 시점이 위원장 담화문이 나가고 논란이 한창이던 1월 말경이다.

여기에 발레오만도 기업노조는 2월 10일 조합원들에게 ‘각 지회별 판단으로 회사와 합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모든 것을 지회규칙 위반으로 처리할 수 없다’는 금속노조 위원장의 담화문을 인용하고, “이렇듯 금속노조 위원장도 교섭과 체결에 대하여 지부나 지회에서 교섭하고 체결하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며 ‘금속노조 집단탈퇴 총회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문자를 발송했다.

이제 공개변론에서 이 문제가 쟁점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내부적으로는 과거의 일까지 소급해서 문제가 될까 우려해 낸 담화문이라 하더라도 의도치 않게 여러 파장을 일파만파 가져왔다. 금속노조의 ‘합의 존중’ 선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곱씹어 봐야 할 때가 됐다. 무릇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는 바, 금속노조는 ‘존중’ 선언의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도 더 분명히 해야 한다.

금속노조의 불문율인가?

기왕 글을 쓴 김에, 금속노조와 관련해서 한 가지 사실을 더 언급하고자 한다. 위와 같은 점을 언급하면 안팎으로 논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민중언론의 역할은 노동자 민중 사회의 내부 조력자이면서 동시에 워치독 역할도 해야 한다. 예견되는 문제들을 지적하지 않고 나중에 불거져 나왔을 때, 노동조합과 사회운동 내부의 혼란의 위기는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미디어충청]

지난해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교섭과 투쟁과정에서도 이러한 감시자의 역할이 나타났다. 미디어충청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교섭형태에 대해 문제를 지적했다. 이른바 블라인드 교섭, 상대방이 누구인지 모른 채 중계자를 통해 교섭한다는 것이다. 삼성의 무조노 경영은 이미 알려진 대로 악명 높다. 그런 삼성에서 하청노조가 원청인 삼성과 교섭을 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일 수 있다.

같은 처지이지만 삼성전자서비스 노조가 불법파견 철폐 투쟁에 나서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처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현대차에는 좋건 싫건 역사가 오래된 정규직 노조가 존재하고, 삼성은 그렇지 않다. 당장 노조를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한다.

하지만 삼성전자서비스 지회가 진행한 블라인드 교섭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고, 노조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는 것일 수도 있다. 여러 경험상 원청이 직접 나와 사인을 하고도 지켜지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교섭 과정에서 언론의 감시는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 노조에 대한 지지뿐 아니라 비판을 통해서도 교섭에 힘을 보태는 기능을 한다. 블라인드 교섭이 열리더라도 노조 안팎에서 블라인드 교섭에 대한 비판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노측 교섭위원들이 활용할 카드 하나를 쥐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부비판과 여론은 교섭에서 교섭력을 더 강화하기 위한 조건이 된다. 또한 교섭과정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고취시켜 노측 교섭위원들조차 교섭의 진행과정과 내용에 대해 긴장하게 만든다. (반대의 경우, 하청노조의 교섭에 원청이 참여했을 때는 각종 경제지는 물론 보수 언론이 입을 모아 사측을 비판한다. 그 비판은 거꾸로 사측의 교섭력을 높인다.)

미디어충청이 제기한 블라인드 교섭에 대한 우려는 정확했다. 교섭이 난항에 빠지자 전규석 금속노조 위원장은 “그간 삼성이라는 특수성이 있어 블라인드 교섭을 진행했으나 실제 얘기가 뒤집어지고 문서로 제출됐던 것도 후퇴하는 과정이 반복됐다”며 “노조 내부의 힘을 빼고 교란하기 위한 교섭 전술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새정치연합 을지로위원회 우원식 의원은 “계속해서 비공개 교섭을 할 거라면 임금과 고용승계 등 근로조건에 대한 전향적인 안을 내놓던지, 아니면 교섭 방식을 바꾸어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방식으로 진행할 것을 삼성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블라인드 교섭과 같은 비공개 교섭에 대한 문제를 얘기하고 지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민중언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다. 앞으로 이런 교섭에 대해서는 항상 삼성전자서비스 지회의 논란 사례를 참조할 것이다.

그런데 미디어충청이 블라인드 교섭에 대해 지속적인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그 과정에서 온갖 근거 없는 악선동과 조합원에 대한 기만행위가 난무했다. 특히 금속노조는 이 과정을 사실상 모르쇠로 일관했다.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금속노조는 금속노동자 신문을 통해 사실을 왜곡하며 미디어충청의 잘못으로 몰아갔다.

이 과정에서 입을 닫고 침묵하기로는 사회진보연대도 마찬가지다.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실장이 SNS에 올린 글들은 사실관계에도 맞지 않았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상상하면서 블라인드 교섭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게 정치적으로 몰고 갔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서 활동하는 사회진보연대 소속의 금속노조 활동가들도 똑같은 행태를 보였다. 기자의 취재를 물리적으로 방해했고, 조합원들에게 미디어충청 때문에 교섭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식으로 사실을 왜곡했다.

이들의 이러한 행태는 비단 언론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것에 있는 게 아니다. 앞서 금속노조의 교섭권 문제처럼 더 큰 문제를 야기했는데, 그것은 바로 운동사회의 논쟁을 봉쇄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노조라는 조직적 권력을 등에 업고 물리적으로 봉쇄했다.

하지만 금속노조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교섭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에도 불구하고 조직적으로 취재활동을 방해하지는 않았다는 공문 한 장으로 입을 닫아 버렸다. 사회진보연대 또한 후속조치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모른 척하며 이야기 안 한다는 불문율이라도 생긴 것인가? 과연 이런 일들이 문제가 생겼을 때 사회운동조직에서 취하는 행동이라 볼 수 있는가 반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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