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일본, 감정노동 피해 산재로 일부인정..그러나 우리는?

[감시 통제, 벼랑 끝 감정노동자](10) 독일, 일본 감정노동자의 현실

여론조사 기관 C사에 취직한 카렌 K. 매일 같이 그녀는 회사로 가서 컴퓨터에 앉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건다. 통화가 시작되면 카렌은 상냥하게 인사하고 의견을 묻는다. “대화할 때는 상대방이 알 수 있도록 웃으세요. 컴퓨터에 정보를 기입할 때는 잘못되지 않도록 똑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5시간 동안 항상 반복되는 일상이다.

전화를 하면 카렌은 가능한 친절하게 말해야 한다. 반복되는 동일한 질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귀찮다는 듯 화를 내거나 말없이 전화를 끊어버린다. 1시간이 지나면 이미 웃는 것도 힘들다. 마지막에는 감정이 사라진다.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전화하지 않으면, 시간당 6유로(약 8,500원)의 임금은 깎기고 만다.

11월 초 독일 언론 <노이에스도이칠란트>는 카렌의 이야기를 전하며 독일에서의 ‘감정노동’에 주목했다.

콜센터, 핫라인에서 일하는 많은 이들은 카렌과 같은 상황이다. 화난 소비자와 장시간 기다려 지친 사람들은 전화상담 노동자들에게 불쾌감을 퍼붓는다. 그러나 회사는 직원들이 모든 상황에 대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감정노동에 대한 독일이나 일본에서의 제도적 대응은 국내에 비해 진전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차이가 크지는 않다. “손님이 왕”이라는 교훈은 독일이나 일본에서도 통용되기 때문이다.

다만, 독일에서는 비정규직 증가, 서비스업 확대, 경쟁 강화 등 산업 여건의 변화에 따라 감정노동을 포함해 심리적 질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감정노동에 대한 특별한 노동 정책은 없지만 일반 노동자에 대해 노동보호와 산재 요건에 ‘심리적 부담’을 강조, 포괄적인 대책을 마련 중이다. 일본에서도 업무에 의한 심리적 부하를 직무상 스트레스에 따른 산재로 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감정노동자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은 물론 감정노동을 산재로 인정하는 부분적인 조치조차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감정노동으로 인한 직무 스트레스로 발생하는 정신과적 증상이나 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해달라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 개정안이 국회에 입법발의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다.

  독일통합서비스노조(Verdi)가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격무에 시달리는 감정노동자의 일상을 퍼포먼스로 표현하고 있다. [출처: http://www.verdi.de/]

“손님이 왕”이라고 명령하는 똑같은 기업들

독일에서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한 것은 최근이다. 독일에서는 올해 초중반 ‘심리적 부담’, ‘스트레스’ 등이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잇따라 발표됐고, 특히 지난 5월초 10년 간 심리적인 문제로 인한 병가가 약 2배 증가한 것으로 밝혀지며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단초가 됐다.

2001년에는 3,360만 명이 심리적인 문제로 병가를 냈지만 2010년 이 수는 5,350만 명으로 10년 간 6.6%에서 약 13.1%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의료서비스, 사회복지, 교육 분야 노동자, 여성과 비정규노동자가 보다 심한 심리적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독일 노동정책 전문가 우타 크렐만 좌파당 연방 하원의원은 이 같은 정부 자료를 공개해 독일 사회를 흔들었지만, 정작 독일 정부는 법적인 조치는 필요없다는 입장이다. 학문적인 연구도 사회적 여건도 갖춰지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전체 노동자의 심리적 질병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독일, 노동자 건강에 심리적 건재 포함

독일에서 심리적 부담에 대한 정부 대책은, 유럽이 WHO 지침을 토대로 1989년 6월 12일 노동에 대한 “노동자 건강보호와 안전 개선을 위한 조치 수행” 지침을 도입한 것을 모델로 한다. 1946년 WHO의 정의에 따르면, 건강은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인 건재를 포괄하며 질병으로부터의 자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유럽 지침을 독일에서는 1996년 8월 노동보호법을 개정하며 국내법에 적용한다. 여기에서는 ‘심리적 부담’이라는 개념은 등장하지 않지만 전체맥락과 핵심 개념은 심리적 부담을 포괄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법은 노동자 건강 보호를 위해 기술, 노동조직, 노동조건, 사회적 관계, 일자리 환경에 대한 조치를 계획해야 한다고 서술한다. 특히 1997년 독일연방법원 판결은 노동보호에 대해 건강 개념은 노동자의 심리적인 건재를 포함한다며 심리적 부담에 대한 보호 의무를 명확히 한 바 있다.

독일 정부는 심리적인 부담이란 “인간의 외부로부터 오며 그에게 심리적으로 효과를 미치는 것으로 파악될 수 있는 영향들의 전체”라고 규정한다. 시간 압력, 노동 강도, 고객과의 어려움과 함께 감정노동도 여기에 속한다.

독일연방의회, 위험평가 항목에 ‘심리적 부담’ 도입

최근 사회적 관심 속에서, 지난 9월 20일 독일연방 의회는 ‘연방 산업재해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위험평가 항목에 심리적 부담에 대한 사항을 수렴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는 연방, 주와 법적인 재해보험의 공동 목표로 규정됐다. 위험평가는 산업재해 요건을 규정해 이후 재해보험 수급에 중요한 기준이다.

독일 정부가 이 같이 심리적인 질병을 산재의 주요 항목으로 부각시킨 이유는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독일통계청에 따르면, 업무성과를 저해하며, 병가의 13%를 야기하고 조기퇴직의 가장 빈번한 이유로 작용할 뿐 아니라 국가경제적인 측면에서 연간 290억 유로가 심리적인 질병 때문에 소모된다.

이 때문에 독일 재계도 나서 노동자단체와 함께 노동자의 심리적인 안전을 위한 조치에 대처하기로 했다.

지난 9월 5일, 한국의 고용노동부에 해당하는 독일 연방노동사회성(BMAS)과 독일고용주연맹(BDA) 그리고 독일노총(DGB)은 공동으로 “노동세계에서의 심리적 건강을 위한 공동 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업무로 인한 심리적 질병은 방지돼야 한다며, 노동과 건강보호, 심리적 질병을 유발하는 위험 평가 개선과 이용, 경영상의 건강 보호에 합의했다.

그러나 실제적인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경영계가 보다 적극적인 조치에는 뒷걸음을 치기 때문이다.

한국 경총에 해당하는 독일고용주연맹은 심리적 질병을 우선적으로 업무에 소급시키는 것은 잘못됐다는 입장이다. 노동권 보호가 이미 충분하며 노동은 오히려 심리적인 건강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진다고 본다. 직장인이 실업자 보다 심리적인 질병을 덜 앓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감정노동의 해결 위해선 비정규직 제한, 사업주 제재 필요

그러나 독일노총은 오히려 ‘반스트레스조치’ 등 사용자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독일노총(DGB)은 스트레스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 사용자에 대해 제재조치를 부과해야 한다며 일자리에서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반스트레스조치’, 경영, 직원협의회와 직원에 대한 결정권 증대, 노동권과 노동법을 준수하지 않는 사용자에 대한 제재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심리적인 부담, 감정노동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노동자들의 기본권부터 지켜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타 크렐만 좌파당 의원은 기본적으로 비정규노동과 불안정노동에 대한 제한, 노동조건 개선과 반스트레스조치가 필요하다고 제기한다.

이외에도 독일 학계에서는 최근 감정노동이 질병을 야기한다고 드러내며 추후 정책 대안의 실마리를 낳고 있다.

<노이에스도이칠란트>에 따르면, 독일 학계에서는 지속적으로 좋은 기분이나 친근감 또는 스스로 가지는 기분과 다른 감정을 기만해야 하는 경우 많은 이들이 병에 들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를 수행한 프리데만 네르딩어 로스톡 대학 교수는 감정적인 불협화음이 감정적 탈진과 녹초를 초래할 수 있다고 전한다.

이에 대해 일부는 감정노동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 때문에 노동자들에 대한 감정조절 교육이 갈수록 중요해진다고 주장하지만 아우그스부르크 대학의 다니엘라 라스테터 교수는 고유 감정에 교육된 방법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라스테터 교수는 “내가 나의 마음세계에 외부의 규정을 지속적으로 개입시켜야 한다면 (...) 난 언젠가는 무엇이 나의 실제 감정이고 조작된 감정인지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전혀 친절하지 않더라도 고유 감정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상에 좋지만 기업의 요구와 충돌한다. 연구는 또 주체적인 노동자가 다양한 격무에서 보다 잘 처리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콜센터나 여론조사기관, 상담회사에서 이런 경우는 드물다.

일본, “노동자의 정신 건강의 유지, 관리 주목”

일본 <레이버넷>에 따르면, 감정노동은 일본에서도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일본에서도 감정노동에 한정된 별도의 공적 지원이나 제도가 부족한 상황이다.

일본에서 감정노동은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의한 산재 인정 기준에 따라, ‘업무에 의한 심리적 부하’로 규정한다. 또 일본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한 직무 분석의 맥락에서, 감정노동을 노동의 내용으로 인정한다.

일본 사회에서 최근 감정노동의 문제가 증가한 사실은 통계로 잘 알 수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정신질환을 문제로 신청한 산업재해는 1,257명에 달했다. 이 중 사회복지 및 간호사업은 111명, 의료업 87명, 경비업 및 건물 청소업 등은 74명으로 간병인 및 간호 노동을 하는 이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다른 업종에 대비해 이 분야 노동자 수 비율을 고려해야 하지만 산재 인정 건수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일본에서는 예를 들어, 한 노동자가 정신 장애를 입고 자살할 경우 직무 내용과 질병 사이의 인과 관계를 입증할 수 있을 때 산재로 인정된다. 일본에서는 노동자의 정신 건강의 유지, 관리를 위해서도 주목하고 있는데, 노동안전위생법에 따라 사업자는 사업장에서 노동자 마음 건강 유지를 위한 적절하고 효과적인 조치를 실시하도록 ‘노동자 마음 건강 유지 증진을 위한 지침서’를 정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라 발병의 원인이 된 작업을 했다고 인정되면 산재로 인정된다. 또한 이 때문에 노동자가 자살이나 자해 등을 일으키면 사용자에 대해 사용자 책임과 안전 배려 의무 등 직장 환경을 배려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한 책임 등을 물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감정노동만을 문제로 산업재해가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재 산재 인정 기준에서는 감정노동과 같이 장기간 지속되는 저강도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발병과의 인과 관계를 증명하는 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 재계, “감정교육 강화하자”...노동계, “사업주가 피해방지책 내라”

현재 일본 사회에서는 다양한 방면에서 이러한 감정노동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의 건강관리를 담당하는 이들은 채용 시 감정 노동에 대한 적응성을 고려해 감정노동에 견딜 수 있는 ‘강한 마음’을 기르는 훈련을 실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노동계는 이는 감정노동에 의한 피해를 노동자에 전가하는 조치라며 비판한다. 일본 노동운동은 먼저 감정노동에 의한 피해 방지를 최우선으로 취해, 사업주가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파악하고 예방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아직은 미약하긴 하지만 예를 들어, 일본 노동과학연구소 만성피로연구센터는 노동과 피로를 연계해 관리하는 시스템이 감정노동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연재 순서>

(1) 감정노동자, 회사의 ‘감정통제’와 ‘감시’에 두 번 운다
(2) 흰 옷에 가려진 통제의 그늘, 간호사
(3) 강요된 웃음, 백화점 판매 노동자
(4) 감시와 통제, 돌봄 노동자
(5) 과로사 아니면 자살, 사회복지사
(6) 1인 승무, 공포와 싸우는 지하철 승무원
(7) 인력퇴출프로그램의 결말, 죽어가는 KT노동자
(8) 불법파견의 비극,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9) 퇴출악몽에 자살충동까지, 콜센터 노동자
(10) 독일과 일본, 감정노동자의 권리
(11) 감정노동자의 현실, 감정노동자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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