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국민모임 진보결집과 2011년 진보대통합

[쿠오바디스 진보정치 그리고, 노동자 정치세력화](1)

[기자 말]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진보정치 세력 재편 판짜기가 다시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노동.진보정치는 통합 논의가 이뤄지면 여러 개 당이나 정치세력이 하나가 되기보다는 있는 당(세력)이 더 쪼개지고 목표한 것과 달리 새로 다른 당(정치세력)이 생겨나는 경향이 있었다. 재편 논의 과정에서 통합에 반대하는 그룹이 그대로 잔존하거나 떨어져 나가면서 반쪽짜리 논란도 따라왔다.

  국민모임 신당추진위 발족 기자회견

거대 양당 체제라는 한국정치사에서 2011년 진보대통합 논의는 원내 20석 이상이라는 꿈을 꾸며 진행됐다. 하지만 진보대통합은 끝내 비극적 진보정치사의 한 단면으로 남게 됐다. 민주노동당은 통합진보당으로 합쳐지자마자 원래 민주노동당에서 더 줄어든 세력만 남았다가 공안탄압으로 주류정치의 뒤안길에 앉았다. 진보신당(노동당)은 원외 정당으로 남아 이제는 이름이 잊혀져가고, 주요 당직자들 생계마저 어려운 지경이 돼 가고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원내 유일 진보정당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정의당 사정도 녹녹치 않다. 2016년에 연합정치 없이 독자로 지역구 의석을 얼마나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렇게 비극으로 끝난 진보대통합의 후과는 진보정치에 대한 불신을 넘어 진보운동 세력 전체에 대한 평가로 남을 정도다.

하지만 진보세력이 암중모색하며 호흡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2016년 총선은 1년여 앞으로 다가왔고, 진보정치 역시 제2 재편기로 들어서고 있다. <참세상>은 2015년 국민모임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진보재편(결집) 과정을 2011년 진보대통합 논의에 비추어 살펴볼 예정이다. 또 진보정치의 상수가 돼 버린 야권연대에 대해 여러 방향에서 접근해볼 생각이다. 이를 통해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오랜 꿈이 현재 어디를 발 딛고 서 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도 짚어 볼 것이다. 진보정치, 노동자 정치세력화 쿠오바디스~


지금부터 4년 전인 2011년 1월 20일,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이 국회 귀빈식당에 모였다. 여기서 ‘진보정치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진보진영 대표자 1차 연석회의’가 열렸다. 본격적인 진보대통합의 서막을 알리는 회의였다. 이들은 “2011년 안에 광범위한 진보세력이 참여하는 진보정치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해 노력한다”고 합의문을 발표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분당 상황이 민주노총 내 정치적 혼란으로 지속되자 하나의 당으로 합치기 위해 사회당까지 대통합이란 이름으로 모으려 한 기획이었다.


대표자들은 △2012년 총선, 대선 승리 위해 2011년 안에 광범위한 진보세력 참여, 진보정치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노력 △한반도 평화 실현, 비정규직 철폐, 한미FTA 폐기, 민중생존권 쟁취, 생태환경 보존 등 당면 현안 공동대응과 대중적 진보대통합운동 전개 △진보세력이 폭넓게 참여하는 연석회의 확대발전 등도 합의했다. 1차 연석회의엔 4개 조직 외에 진보정치세력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 모임,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 7개 단체가 참가했으며 빈민단체가 참관했다.

이날 김영훈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은 새로운 진보정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면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진보정치 승리를 위해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2011년 벽두부터 시작해 2012년 4월 11일 19대 총선까지 진보대통합 협상-야권연대 협상으로 이어지는 진보정치사는 어느 정도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이후 결과는 진보정치 몰락과 전체 진보운동에 큰 상처를 남기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당시 19대 총선을 1년 3개월 여 앞둔 시점에서 시작된 진보대통합과 2015년 진보정치 세력의 부활을 꿈꾸는 국민모임-진보결집의 본격행보는 시기와 주요 목표에 비슷한 측면이 많다. 그래선지 진보진영에선 우려와 기대감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국민모임이 통합진보당 세력을 제외한 정의당, 노동당, 정동영 계, 노동정치연대 등을 주요 세력으로 진보 결집을 추동하다 국민모임 자체가 신당창당을 추진하는 모양새로 바뀌면서 우려는 더 나오고 있다.

2011년 진보대통합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진보결집

국민모임을 향해 나오는 많은 우려 중 하나는 2011년 진보대통합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 순탄하게 진보결집을 이뤄낼 수 있을까란 본질적인 물음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또 국민모임이 단순 진보정치 세력 통합에 머무는 게 아니라 실제 진보정치에서 멀어져간 노동자와 국민을 모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나오고 있다.

2011년 진보대통합과 2015년 진보결집은 비슷한 듯해도 많이 다르다. 일단 국민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민교협 소속 교수, 학자들이 진보대통합에도 핵심 인자로 관여했다는 사실은 비슷하다. 특히 국민모임 신당추진위원장인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는 진보대통합 당시에도 합의 중재자로 회의를 이끌어 갔다. 또 노동당, 정의당이 논의 대상이란 점도 비슷한 구성원이란 점에서 생소하지 않다.

김세균 교수는 2011년 진보대통합 1차 회의에서 ‘진보정치세력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 모임 대표’로 참석해 “신자유주의적 지배 전략을 종식하기 위해서는 진보정치가 활성화돼야 한다”며 “분산돼 있는 진보적 역량을 하나의 연합된 정치세력으로 모아야 하는 것이 연석회의의 시대적 과제다. 차이를 넘어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약속드린다”고 말한 바 있다.

반면, 진보결집과 진보대통합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민주노총이 중심에 서 있느냐 없느냐다. 진보결집 논의는 민주노총 전직 위원장 3인이 발을 담고 있지만, 민주노총이 조직적으로 참가하지는 않는다. 민주노총 불참은 국민모임 후보가 각종 선거에서 민주노총 지지후보로 선정되기 위한 지난한 논의를 다시 거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노총이 조직적으로 참가하지 않는 이유는 현 민주노총 지도부가 민주노총 최초로 직선제로 당선되면서 진보정치 통합 자체를 반대하며 당선됐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선거 당시 진보정치 통합도 주요 쟁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진보결집 신당이 민주노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당장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민모임은 신학철 화백, 연극인 오미애 대변인 등 예술가들이 전면에 나섰다는 점이 눈에 띤다. 정치가 교착상태일 땐 예술가들이 앞에 나서야 일이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큰 차이는 정동영 세력으로 대변되는 민주당 일부 진보성향 정치인들의 합류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2010년 용산참사 발생 이후 본격적으로 노동.진보 정치 사안에 발 벗고 나섰다. 특히 쌍용차, 한미FTA 문제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와 외통위에서 아젠다를 이끌어내는 데 핵심 역할을 하며 2011년 야5당 연석회의를 통한 야권연대 기반의 중심이었다. 그래서 용산참사 유가족들이나 쌍용차 노동자들과 스킨쉽이 많고, 최근 강경 투쟁을 해온 노동, 민중운동 진영에서도 우호적이다.

국민모임은 국민을 모을 수 있을까?

이미 노동.진보정치가 활력을 잃은 데다 진보정치의 핵심 동력이었던 노동자들의 관심이 멀어진 상황에서 진보정치 세력결집이 이뤄져 원내 20석 이상을 얻을 동력을 만들 수 있느냐가 주요 관심 포인트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민주노총 지역본부, 전국농민회총연맹 등과 함께 오랫동안 지역운동을 하며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200명에 가까운 지역구 후보를 내며 정당지지율을 10%이상으로 끌어올려 전성기를 맞은 바 있다. 그러나 국민모임의 면면엔 이렇게 지역구에서 몸 바칠 선수 급은 안보이고, 상층 명망가만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동당 초기부터 진보정치에 몸담고 지역정치를 일구어 왔던 진보정치 인사 A씨는 현재 국민모임 합류에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정의당이나 노동당 외에 국민모임에 합류하고 있는 교수 층이나 예술가 층에 지역구에 뛰어들어 지역정치를 일구고 엄청난 정치비용을 쏟아 부을 사람이 있느냐는 문제의식이다.

이미 노동당도 지역조직이 상당수 무너져 내렸고, 정의당은 2016년에 50명을 지역구 후보로 발굴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동영과 함께 국민모임에 합류한 세력이 얼마나 지역 조직력을 가지고 움직여 주는냐가 관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는 정동영 세력이 아직 검증되지 않아 정의당이 정동영 세력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진보정당 외곽단체 진보의 합창 2011.5.16

A씨는 “정동영 전 장관이 국민모임에 맞는 총선급 후보를 얼마나 데려오느냐를 모두 지켜보고 있다”며 “안철수 신당 당시 전라도를 보면 기초의원 공천에서도 떨어진 지역 토호 같은 인사들이 몰려들었다. 최다 당적 이동자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을 데려와 내년 총선을 하겠다고 하면 원내 교섭단체는 안 된다”고 평가했다. 이어 “만약 국민모임 진보결집 논의 과정에서 노동당의 조직적인 결합이 어렵게 되고, 정동영 그룹만 합치면 아무것도 안 된다”며 “정동영의 실리와 노동당의 명분이 같이 가야 정의당도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정의당이 국민모임에 ‘보여준 게 없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A씨는 국민모임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4월 재보궐 선거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한 것이 패착이라고도 했다. 그나마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새정치연합 내 진보적 성향 의원들이나 시민운동 진영 인사들이 국민모임에 붙어줘야 야권 새판 짜기가 가능한데 너무 일찍 패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모임 창당준비위원 명단이 나오면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자기 지역구에서는 누가 합류했는지부터 보게 된다. 총선에 경쟁력 있는 사람들이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국민모임에 갈 동력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움직일 뭐가 없다”며 “결국 4월 재보궐 선거에서 국민모임이 얼마나 바람을 일으키는지를 보고 움직일 텐데 현 구도 상 필요한 전국적 거물급을 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지금은 창당 준비단계라 재보궐 선거 대응은 어렵다’고 했어야 하는데 먼저 질러놓기만 했다”고 지적했다.

“중매 선다고 나섰다가 살림 차리고 결혼하려는 모습”

2011년 진보대통합의 가장 큰 실패 원인이 됐던 진보신당의 대통합 안건 부결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을 들어 국민모임이 자초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번 진보결집도 노동당에서 대의원 대회 통과가 어려운 구도인데, 국민모임 행보가 노동당 진보결집파에 힘을 실어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당의 진보결집행이 무산되고 2011년과 같이 일부 지도부 탈당으로 국민모임에 합류하면 진보결집은 또 명분을 잃게 될 수 있다.

  2011년 초 진보신당 당대회

노동당에선 국민모임이 진보정치 세력 결집을 촉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4.29 후보 발굴 과정은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민모임이 직접 당선 가능한 후보를 내세워 국민모임 신당의 획기적 계기 형성에 관심이 더 가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노동당 지역 당협의 한 관계자 B씨는 “국민모임이 여론조사가 잘 나오자 진보결집 추진에서 마음이 점점 멀어지고 노동당이나 정의당을 빼고 국민모임 신당을 잘 키우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며 “중매 선다고 왔다가 자기들이 살림 차리고 결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진보결집파인 B씨는 2011년 진보대통합 상황에 비해 올해 상황은 훨씬 수세적이라고 봤다. 2011년 진보대통합이 옳고 그름을 떠나 최소 원내 20석이라는 자기 전술적 목표를 분명히 하고 상당한 대중운동 단체의 결합력을 가지고 진행됐다면, 지금은 대중조직의 관심이 거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특히 2011년에는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모두 제도권 정치 안에서 노동과 한미FTA 등의 의제를 주도할 정도의 당력이 있었지만, 현재는 비교할 수 없이 줄었다. B씨에 따르면 이번 노동당 내 진보결집은 좌파 정치세력의 소멸을 막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그는 “진보결집이 대단한 감동을 가지고 실현되어야 한다는 기대는 좋은 일이지만, 우리 현실을 분명히 봐야 한다”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진지함이 필요하다. 자원도 실력도 없으면서 의욕만 앞세웠다가 총선이 끝나고 대중적으로 소멸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국민모임 중심의 진보 재편 논의가 합의 막판에 넘어야 할 또 다른 난관으로 노동당을 어떻게 잘 설득해 내느냐가 중요한 문제 일 수밖에 없다. 국민모임이 제안한 4자 연석회의에서 소수 정당인 노동당에 대해 정의당과 정동영 계 등이 중앙당, 광역시도당, 지역 당협 운영에 있어 얼마나 배려해 주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다. 이 문제는 진보대통합 당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막판 핵심 쟁점 중 하나였으며, 실무협상의 가늠자가 되기도 했다.

정동영과 노회찬.심상정.천호선으로 대변되는 정의당 지도부 사이의 국민모임 주도권 문제도 이후에 터져 나올 수 있다. 국민모임 신당으로 통합할 경우 한시적으로 정동영 전 장관 쪽과 정의당 쪽의 주도권 다툼 속에서 교수 그룹이 양쪽을 중재하며 공동대표 체계를 이루면서 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어느 순간 권력 투쟁으로 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또 국민모임 주도 인사들에 젊은 층이 거의 없다는 지적도 넘어야 할 큰 난관 중 하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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