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문제에서 우리의 문제로

[질문들]

용산시대의 무한 루프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소통을 강조하며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했다. 청와대는 권위주의, 제왕적 대통령 문화의 상징이기에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새로운 시대의 출발점이자 ‘소통하는 열린 대통령실’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대통령실 이전에 사람들은 예감했다. 앞으로 집회하러 용산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대통령의 ‘소통’에 큰 기대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대통령실 앞 집회에 경찰이 어떻게 대처할지는 궁금했다.

‘용산시대’ 첫 집회는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행진이었다. 집무실 이전을 하기도 전에 집무실 예정지인 국방부 앞을 지난다는 이유로 행진은 금지됐다. 집회 신고일은 4월 19일이었다. 경찰은 집시법 제11조 제3항의 대통령 관저에 집무실도 해당한다며 이 조항을 적용해 ‘집무실 앞 100m 이내’ 집회는 모두 금지 통고하는 방침을 세웠다고 했다. 주최 측은 행정법원에 금지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를 신청했고, 집무실이 관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원의 결정으로 행진할 수 있었다. 그 뒤로도 경찰은 매번 집무실 앞 집회를 금지했고, 주최 단체는 집행정지를 위해 법원으로 갔다. ‘집회신고 → 경찰 금지 통고 → 주최 측이 변호사 선임해 행정법원에 경찰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 → 재판부 인용 결정 → 집회 개최’의 무한반복으로 1년이 흘렀다. 똑같은 집행정지 신청이 반복되니 법원의 결정도 ‘복붙’이다. 하나 마나 한 금지 통고를 몇 번 하고는 그만둘 것으로 생각한 내가 안이했던 걸까? 경찰은 예상보다 집요했다. 집행정지 가처분 이후 본안 소송 1심에서 패소한 후에도 경찰은 끝까지 법적 판단을 받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대법원까지 소송을 끌고 가겠다는 것이고, 그때까지 ‘집회 금지–집행정지 신청’의 무한 루프에 가두겠다는 의도다. 이 무한 루프는 시간과 돈을 요구한다. 불필요한 과정에 발생하는 비용은 고스란히 집회 주최 단체의 몫이 된다. 집회를 할 수 있긴 하지만 부수적 피해가 발생하는 무한 루프를 끊어낼 수는 없을까?

  5월 10일 집회 사회를 보고 있는 랑희 활동가 [출처: 변정필 기자]

집회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집회가 열리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다. 그러니 집회 금지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원으로 달려가는 수고를 할 수밖에 없다. 결국 불필요한 과정을 겪긴 하지만 부당한 조치는 집회를 한 것으로 해결됐다. 그런데 문제가 정말 해결된 것일까? 반복적인 법원의 결정에도 상황이 바뀌지 않는데 우리는 권리를 쟁취한 걸까? 개별적인 대처로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 상황의 주인공만 바뀌는 ‘무한 루프’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했다는 착시가 ‘무한 루프’를 유지하는 동력이 된다. 두려운 것은 이 상태가 번거롭지만 그럭저럭 넘어가는 일, 부당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 ‘규칙’처럼 자리 잡는 것이다. 집회의 권리는 ‘모두의 권리’지만, ‘우리의 권리’를 지키는 싸움으로 모두의 힘을 모으기는 쉽지 않다.

금지를 거부한다

경찰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방식이 우리의 규칙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규칙을 따르지 않겠다는 선언이 필요하다. 나와 동료들은 이 선언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 고민했다. 그래서 우리는 본래의 절차로 집회를 하기로 했다. 관저에 집무실이 포함된다는 주장은 오직 경찰만이 하고 있다. 경찰의 금지처분은 법적 근거도 없으니 ‘집회신고 → 집회 개최’라는 간단한 과정에 다른 절차가 끼어들 필요는 없다. 대통령 취임 1년이 되는 날 ‘집회 금지를 금지한다’는 제목으로 집무실 앞에서 집회하겠다고 신고했다. 예상대로 용산경찰서는 금지통지서를 가지고 찾아왔다. 정보경찰은 금지통지서를 전달하면서 가처분 소송을 할 예정이냐고 물었다. 친절한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물어서 더 화가 났다. 당연한 절차인 양 그런 질문을 왜 하냐고 따졌다. 경찰의 질문에 지난 1년 동안 이 쓸데없는 절차가 깊게 굳어져 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바로 그것이 지금 이 상황의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우리는 금지된 집회를 했다.(1) 경찰은 금지 통고 이후 별다른 조치가 없자 집회를 안 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 같다. 대통령실 앞에 가자 202경비대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집회를 하러 왔다고 대답했다. 그는 전쟁기념관 앞으로 가면 된다고 친절히 안내했고 나도 친절하게 거기가 아니라 여기라고 알려줬다. 그러자 그는 그럴 리가 없다며 당황했고, 나는 신고를 했으니 이곳에서 하겠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경찰에 밀려서 신고된 장소에서 멀어졌지만 계획했던 집회를 했다. 지나던 시민도 참여했으니 성공한 집회라고 자평한다. 지금은 금지집회를 했다며 날아올 경찰의 소환장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언제쯤 금지집회를 또 한 번 할지 궁리 중이다.

  5월 10일 202경비단이 대통령 집무실 앞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집회참가자를 막고 있다. 횡단보도 양쪽으로 이중으로 사람 벽이 쳐졌다. [출처: 변정필 기자]

왜 가처분 소송을 하지 않고 굳이 처벌의 위험이 있는 금지된 집회를 했는지 질문을 받았다. 법원의 도움을 받는 것이 부당한 권리침해에 맞서는 싸움일 수 있다. 우리 집회도 집행정지를 신청하면 당연히 인용되고 아마 (늘 그랬듯이) 건너편 전쟁기념관에서 하라고 조정됐을 것이다. 하지만 위법한 조치가 분명한데 법정에서 물어야 할 이유가 없고, 판사에 의해서 우리의 집회 계획이 조정돼야 할 이유도 없다. 평화적인 집회라면 그 자체로 보호받는 것이 권리이고 집회는 신고만으로 가능해야 한다. 법원의 허락도, 조정도 필요 없다. 법원이든 국회든 국가가 개입할 곳은 경찰의 업무다. 다시는 경찰이 반복해서 동일한 집회 금지를 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하고 구체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 경찰의 반복적인 집회 금지, 집회의 권리침해를 중단시키려는 국가의 역할을 하지 않겠다면 방법은 하나다. 권리의 주체가 경찰의 금지 통고를 거부하는 것. 불복종으로 강요된 규칙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법원으로 가지 않았다.

낡은 것들의 귀환을 막기 위해

법, 제도와 같은 사회의 규칙을 바꾸는 것은 힘의 문제이다. 권력은 규칙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설계할 자원이 많다. 그래서 권력을 갖지 못한 이들은 불복종과 저항의 연대로 규칙을 바꾼다. 인권의 원칙에 바탕을 둔 규칙이 존엄한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도록 거리에 나선다. 규칙을 바꾸는 거리의 투쟁이 집회의 규칙을 바꾸는 힘이 되기도 했다. 벌금과 체포를 감수하고, 피 흘리고 목숨을 잃기도 한 시민의 투쟁으로 야간 집회 금지, 금지장소 조항의 위헌 결정을 끌어내고, 물대포 사용을 금지할 수 있었다. 이것은 집회의 권리 보장을 위한 기준선으로 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기준선을 무너뜨리려 한다. 경찰, 여당, 대통령은 건설노조의 1박 2일 집회 이후 건설노동자의 권리와 함께 집회의 권리까지 흔들고 있다. 건설노조 집회가 폭력집회가 아니었음에도 마치 문제적 사건이 벌어진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집회를 통제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야간집회 금지와 불법전력 단체나 출퇴근 시간대 집회 제한, 심지어 물대포까지 언급하고 있다. 노조를 탄압하면서 노동의 권리를 파괴하는 규칙으로 바꾸고, 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저항의 수단인 집회의 권리를 파괴하는 규칙으로 바꾼다.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규칙을 바꾸려는 권력을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시민의 저항을 통해 낡은 것으로 만들었던 것들이 귀환하려고 한다. 낡은 것은 사라지지 않고 기회를 엿보다 등장할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들고 있다. 건설노동자들은 노동조합 활동으로 노동 현장을 바꿨다. 안전하지 않고, 임금을 떼이며, 존중받지 못한 노동을 낡은 것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에 건설노동자들은 ‘노가다’로 돌아가지 않겠다며 싸우고 있다. 집회도 물대포를 맞으며 경찰의 통제를 받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 낡은 것들의 귀환을 막기 위한 ‘우리의 싸움’으로 만드는 힘이 필요한 때다.

  5월 10일 집회참가자가 종이 박스 위에 피켓을 쓰고 있다. [출처: 변정필 기자]

<각주>
(1) 변정필, 법원 판단 거스른 경찰의 반복적 집회 금지는 “괴롭힘”, 참세상, 2023.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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