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서 다행이야. 내 정체성, 논바이너리!

[어서 와요, 소소부부네] 성별 이분법에 갇힌 대한민국에서 ‘제3의 성별’ 존재를 제기하다

논바이너리(non-binary)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 후 성소수자 인권활동을 해온 지난 1년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생기가 있었다는 무나 님이 우리 부부의 집에 놀러 왔다. 논바이너리는 성별/젠더 이분법적 구조의 이 사회에서 자신을 여성이나 남성, 이분법적으로 정체화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것들이 성별 이분법적이고 비성소수자 중심적으로 설계돼 있기에 여성도 남성도 아닌 수많은 사람은 차별을 경험한다.

무나 “저는 지정 성별 여자로 태어났지만, 스스로를 여성으로 느끼지 않고 사람들이 나를 여성으로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렇다고 남자가 되고 싶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저는 저일 뿐인 것 같아요.”

차별을 경험하는 대표적인 공간이 화장실이다. 대부분의 화장실은 남과 여의 이분법적 성별로만 나뉘어 있다. 한국에서 성중립적인 화장실은 매우 적어서, 필요할 때 이용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혐오자들의 공격이나 가짜뉴스로 인해 성중립 화장실에 대해 여성과 남성이 같이 들어가는 위험한 곳이라는 등 오해가 많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성중립 화장실은 성별과 관계없이 1명씩 사용이 가능한 화장실을 가리킨다. 우리 부부가 호주에 갔을 때, 공항이나 기차역과 같은 공적 공간에 잘 마련돼 있던 성중립 화장실을 볼 수 있었다. 성중립 화장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기에 성중립 화장실만 있는 기차역도 있었다. 당연히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고.

  무나 님은 자신을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한 뒤 행동하는 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출처: 무나]

무나 “지하철 공중화장실에서 제가 문을 닫고 들어가려는 순간에 어떤 분이 문을 쾅쾅 두드리는 거예요. 순간 너무 무서웠어요. 그분이 ‘여기 남자 화장실 아니에요’라고 말해서 저는 순간 ‘저 여자인데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 많은 생각이 스쳤어요. 내가 여자가 아니지만 여자라고 말해야 이 화장실을 무탈하게 쓸 수 있어서 그것이 짜증 나는 동시에, 아 내가 여자로 보이지 않아서 저렇게 말을 걸어 온 거면 절반은 성공한 건가? 생각도 드는 거죠(웃음). 성중립 화장실은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나게 먼 미래 같아요.”

소소부부 “성중립 화장실은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나 1명씩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마련하자는 건데, 여성 안전에 위협적이라고 가짜뉴스와 혐오를 퍼뜨려서….”

지금은 이런 경험을 하는 무나 님도 예전엔 머리도 아주 길게 기르고 화장하고 치마를 입었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 그 모습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고.

무나 “예전 그때 그 모습은 그냥 상대방이 원하는 모습에 맞췄던 거예요. 저는 지금의 제 모습에 만족해요. 여성 같기도 하고 남성 같기도 하고, 둘 다 아닌 것 같기도 한 모호한 제 모습. 머리를 짧게 민 것도 마음에 들어요. 세상에는 여성처럼 혹은 남성처럼 젠더표현을 하고, 그렇게 보이더라도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겉모습만으로 사람의 성별정체성을 판단하는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소소부부네를 찾은 무나 님. 왼쪽부터 오소리, 무나, 소주. [출처: 무나]

무나 님은 자신의 지금 모습에 만족하지만, 성별 이분법에 갇혀있고, 젠더표현이 자유롭지 않은 사회에서 다시 머리를 길러야 하나 고민 중이다. 취업 과정 중 마지막 면접만 남아있었는데, 면접관이 머리를 기르면 안 되겠냐고 물어봤단다. 머리가 짧든 길든 똑같은 사람인데 머리 길이로 합격 여부가 달라질 수 있는 세상이라니.

무나 “그 면접관 말로는 자기는 괜찮은데 자기 상사 때문에 머리를 길러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상사 보기에 괜찮은 외모여야 한다는 거겠죠.”

마치 투쟁처럼, 작은 물결이 계속 반복적으로 모이고 만나 거대한 파도가 되는, 그런 모습 때문에 바다를 좋아한다는 무나 님. 무나 님에게 자신을 설명해 주는 ‘논바이너리’라는 말을 만난 전과 후는 무엇이 다를까?

무나 “엄청 달라요. 너무너무 다행이고, 되게 반가웠고. 앞으로 어떻게 될 진 모르겠지만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하고 나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이 저의 삶을 바꿨어요. 가장 큰 부분은 자신감이에요. 나는 그냥 나일 뿐이면 되는 거니까.”

무나 님은 우리나라가 국가적인 통계를 만들 때 제3의 성별을 포함해 설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연히 남성 혹은 여성일 거라고 가정하는 사회가 아니라, 다른 성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는 통계, 그런 사회.

무나 “세상은 객관식으로 여성이냐, 남성이냐 물어요. 나는 주관식으로 내 마음대로 논바이너리라고 답변해요. 저는 저의 이야기를 만나는 분들에게 객관식으로 질문하는 세상에 주관식으로 답변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이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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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리(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소주(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알)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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