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에서 발견한 과학

[박석준의 의학철학 이야기](1) - 기획연재를 시작하며

흔히 비판적 사회의식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한의학에 친밀도가 높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 사람 중에는 단순히 수동적으로 한의학적 치료를 선호하는 것만이 아니고 직접 한의대에 들어가 한의사가 된 사람이 적지 않다. 한의학 이외에도 한의학과 뿌리를 같이 하는 단전호흡이나 여러 가지 기공 수련을 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두고 단순한 민족적 의식의 발로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우리가 배웠던, 그리고 지금도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분명 근대 서양적 가치관이다. 이에 비해 한의학은 전근대의 동양(정확하게는 동아시아)에서 형성된 이론이며 그 동안 한의학 자체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의학의 근간이 되는 세계관과 방법론은 아직도 전근대의 동양이다.

따라서 오늘날 제도권의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한의학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필자 자신도 한의학을 처음 접하면서 느낀 당혹감은 일반적인 상상을 넘어선 것이었다. 필자는 3대째 한의학을 업으로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다른 사람에 비해 한의학적인 분위기에 익숙했음에도 막상 들어가 본 한의학의 세계는 너무도 이질적인 것이었다.

이런 차이 때문에 대부분 한의대에 들어간 학생들은 최소 1-2년의 방황기를 갖게 되고 때로는 이를 극복하지 못하여 자퇴하거나 그럭저럭 졸업을 하더라도 한의학의 진수에 다가서지 못하고 무늬만 한의사인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러한 사정을 필자는 오래 전에 이렇게 쓴 적이 있었다.

나의 직업은 한의사다. 한의대가 없는 대학 출신으로는 좀 드문 직업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경제과를 나와 한의학이라는 매우 생소한 분야를 접하면서 당혹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부딪친 것이 그때까지는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나의 인식 체계가, 한의학이라는 거울에 비춰지면서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대상화되어 버리고 만 것이었다. 이는 한편으로는 어색한 것이기도 하였다. 학문에서는 물론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자신의 인식 행위를 스스로 대상화하고 느껴야 한다는 것은 어색함을 넘어서 괴롭기까지 한 일이다.

그전까지는 음양(陰陽), 오행(五行), 기, 천지인(天地人), 우주, 운기(運氣) ... 이 모든 것들이 ‘이상한 것들’로써 ‘비과학적인 어떤 것’ 아니 별다른 관심의 범주에조차 끼어들지 못했던 것이었으나 이제는 책 속에서는 물론 강의실과 진찰실에서 언제나 논의되고 이에 의해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하는 것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런 당혹감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걸로 밥 벌어먹어야 한다는 비감한(!) 현실 앞에서 우선은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외우고 시험보고 나면 빨리 지우고 또 외우고 ... 그것도 서양 과학과 서양의학을 포함하여. 이런 세월이 지났다. 가뜩이나 외우는 데는 재주 없던 나에게는(그 열등감을 없애기 위하여 나는 늘 외우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다고 늘 주장해 왔던 터였다) 너무도 과중한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 날로 먹어만 가는 나이와 이에 비례해 늘어만 가는 주력(酒歷+酒力)은 나를 더욱 곤경에 몰아넣었다.

그러나 이런 ‘이상한’ 논리들을 받아들이면서 점점 나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바로 그 ‘이상한’ 논리나 개념들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로 우리의 일상생활은 아니었던가 하는 깨달음이었다. “기가 막힌다” “감기(感氣) 걸렸다” “간(肝)이 부었다” “대담(大膽)하다” “비위(脾胃)가 좋다” “간담(肝膽)이 서늘하다”는 말들은 정확히 한의학 용어이면서 동양 사상의 바탕에서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융해되었던 말들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한의학은 아니 동양 사상은 이질적인 어떤 것으로 바뀌어 버렸는가. 그 자리에 무엇이 들어와 있는가. 피클은 감칠맛이 나지만 김치는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치즈는 감미롭고 된장은 구린내가 나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더욱 더욱 나를 혼란시킨 것은 내가 그토록 열망하던 ‘과학’이 바로 그 이상하던 한의학 속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기존의 과학관을 포괄해 버리는 거대한 것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는 한의학으로도 난치병을 고치는 수가 있고, 양방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면도 있고 하는 따위의, 그야말로 소가 뒷걸음질치다 쥐 잡는 격으로 한의학에도 ‘어쩌다 과학’이 있다는 식의 발견과는 정반대로, 한의학을 기초로 하지 않으면 오늘의 의학은, 나아가 모든 과학은 진정한 과학에서 점점 멀어질 뿐이며 새로운 과학의 기초는 바로 한의학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는 발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김치와 된장이 아닌 피클과 치즈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게 되었는가, 더욱 심각하게는 왜 이런 사실조차가 여태껏 아무런 반성 없이 숨쉬듯 당연한 사실로 받아 들여져야 했는가 하는 충격이 나를 사로잡았다. 여기에는 ‘제국주의의 논리’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는 곧 주체의 문제이다. 지금 ‘집’이어야 할 우리의 집은 ‘집’이 아니라 ‘한옥’이라 해야 하며 옷도 ‘한복’이고 의학도 ‘한의학’이다. 서양의학을 일상생활 속에서 ‘양의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도 불편해져 버린 현재의 기원은 제국주의에 있지만, 이를 생명의 양식으로 생활화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이다.

나는 지금 우리 것이 최고라는 고루한 국수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우리 것도 좋으니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자는 저급한 절충주의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과학을 찾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밀한 부분을 보되 완전한 전체를 놓치지 않는 과학, 격렬한 투쟁을 보되 궁극적인 조화를 지향하는 과학, 정신과 물질을 통일하여 이론에서나 실천에서나 하나인 과학을 찾자는 것이다. 이것의 가능성을 한의학에서 본다. 새로운 과학의 패러다임을 한의학에서 본다(1993년).

물론 그러한 패러다임이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요즘의 일이고 당시로서는 말 그대로 ‘가능성’만을 보았을 뿐이었다. 앞으로 이 난을 통해 그 가능성을 펼쳐보고 싶다. 여러분의 비판적 참여를 기다린다.
덧붙이는 말

박석준 님은 대전대에서 한의학을 공부하고 1999년부터 동의과학연구소장을, 2004년부터 대구한의대 한의과대학(사상의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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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사이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군요^^ 앞으로도 좋은글, 열린 토론 기대하겠습니다.

  • 사람사이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군요^^ 앞으로도 좋은글, 열린 토론 기대하겠습니다.

  • 낙화유수

    되는군요.
    그런데 제목이 한의학에서 발견한 과학?이라...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 낙화유수

    되는군요.
    그런데 제목이 한의학에서 발견한 과학?이라...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 한걸음

    의료생협관계자입니다. 양한방 협진문제에 대해서도

  • 한걸음

    의료생협관계자입니다. 양한방 협진문제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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