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5천만 원 있어야 법조인 된다

[진보논평] 돈이 신분을 결정하는 나라

진보전략회의(준)는 한국사회 주요 전략아젠다에 대한 진보적 정책생산을 목표로 모인 연구자, 활동가들의 전략네트워크이다. 사회운동의 통합적 활동이 가능하도록 운동과 운동을 이어주고 지역, 부문, 현장에서 운동기획을 자극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표방하고 있다. 진보전략회의(준) 회원들이 주요한 사안에 대해 발표하는 '진보논평'을 민중언론참세상에 게재한다.- [편집자 주]


요즘 전국 40여 개 대학들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유치를 위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격전을 벌이고 있다. 전쟁이래야 머리를 쓰는 전쟁은 아니고 누가 돈을 많이 쓰느냐 하는 전쟁이지만 말이다. 사실 사법시험 합격자를 간신히 1년에 몇 명 배출하던 대학으로서는, 로스쿨에 선정될 경우 변호사를 매년 150명씩 배출하게 되니 학교 위상이 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환골탈태하는 꼴이다. 횡재를 노리고 한 번쯤 투기해 볼만 하다. 그래서 투기의 장이 되었다.

다른 대학들을 젖히기 위해 온갖 로비와 갖가지 치사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교수 빼가기도 예사인데 연구실적물의 질이 아닌 양으로 법학교수가 거래되고 있다. 돼지고기 팔리듯이. 전용 도서관을 짓고, 실무경험을 가진 변호사를 교수로 영입하느라 예산을 물 쓰듯 쓰고 있다. 전교생이 낸 등록금으로 법학분야만 잔치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또 등록금은 계속 올라간다.

정작 로스쿨 문제의 핵심은 다른데 있다. 로스쿨에 들어가길 원하는 학생은 고액의 사설학원에 다녀야 할 것이다. 내신성적으로 학생을 뽑기 전에는. 대학생까지 모두 학원에 다니게 되면, ‘사교육의 천국’이라는 말이 그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법학교수 그만두고 로스쿨 입시학원 강사 하는 것이 나을 거라는 말도 대학가에 돌고 있다. 로스쿨에 입학하면 3년간 1억 원 가량의 수업료를 내야 한다. 책값도 들어가고 노트북 등도 사야 할 것이다. 하숙비와 용돈을 합쳐 3년간 최소한 3,000만 원 정도는 들어갈 것이 뻔하다.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면 3년간 7,000-9,000만 원을 벌 수 있는데 이를 포기하고 말이다. 이를 다 합치면 로스쿨 다니는 비용이 최소 2억5천만 원 이상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2억5천만 원을 미리 투자할 수 있는 사람만 변호사나 판검사가 될 것이다.

천국의 하느님과 지옥의 염라대왕이 다툼이 생겨 소송을 했는데, 하느님이 졌단다. 천국에는 변호사가 한 명도 없어서...... 그래서 변호사직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아봐도, 가난한 사람이 전문직으로 갈 수 있는 문은 이미 닫혔거나 닫히고 있다. (치)의학전문대학원, 약학전문대학원, 한의학전문대학원, 경영전문대학원, 물류전문대학원 등이 성업 중이고, 앞으로 건설전문대학원과 IT전문대학원이 문을 열 것이며 교육전문대학원도 만들 것이라고 정부에서 발표한 상태다. 돈 없는 사람은 앞으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약사, 물류관리사, 회계사, 건축사, IT 기술자, 교사 등의 직업을 가질 수 없다.

각종 전문대학원들은 상류층 자녀의 신분을 유지시키며, 노동자의 신분상승을 막는 견고한 틀이다. 따라서 모든 계층에게 접근성이 보장되기 전에는 설립되지 말아야 한다(이런 의미에서 등록금후불제가 꼭 필요하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조차 로스쿨 설립에 찬성했다. 법조인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과연 그렇게 될까? 대학에서 자신의 전공을 충실하게 공부한 인재들이 로스쿨에 들어가야 법조인의 전문성이 강화 될 텐데, 학업에 열중한 학생은 결코 로스쿨에 입학할 수 없다.

강의 빼먹고 부지런히 학원에 다닌 학생만 로스쿨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니 무슨 전문성 강화가 되겠는가? 돈 없는 사람도 혼자 공부 열심히 하면 변호사 될 수 있던 길을 없애고, 대신 돈 제대로 내고 로스쿨 다닌 엘리트만 된다는 것이지! 로스쿨, 입학생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그까짓 500-1,000명 늘어나 봐야 모두 그림의 떡이다. 지역별로 안배해도 마찬가지다. 지금 설립 중지 운동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말

박정원 님은 상지대 교수 및 전국교수노조 부위원장으로, 진보전략회의 회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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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 로스쿨 , 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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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다.돈다...

    [2억5천만 원 있어야 법조인 된다] 씨불 쥐뿔도 없는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법조인은 못시키겠네. 돈없어도 공부 잘하는 아이란 이제 신화나 전설을 뒤적여야 발견하겠구나... 이런 개 엿같은 세상...로스쿨이 그런 거 였구나.

  • 청년

    안녕하세요?

    로스쿨의 실상에 대한 글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로스쿨로 학생이 몰리는 문제는 로스쿨 제도 자체가 아니라 사법세력의 기득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스쿨 인원을 소수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다수로 하여 현재 소수만이 획득할 수 있는 변호사자격증을 좀 더 대중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로스쿨 학비의 경우 로스쿨뿐만 아니라 고등교육의 대대적인 무상교육 투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시점에서 로스쿨 설립 중지 운동을 펼쳐나가는 것이 얼마나 적절한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특히 저자께서 "각종 전문대학원들은 상류층 자녀의 신분을 유지시키며, 노동자의 신분상승을 막는 견고한 틀이다. 따라서 모든 계층에게 접근성이 보장되기 전에는 설립되지 말아야 한다."하고 하는 부분에서는 기존의 고시체계로 했을 때는 조금이나마 돈없는 사람들이 그 안으로 편입될 수 있다는 전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시제도는 이미 젊은이들을 수년간 고시원에 내모는 폐해 등이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습니다.

    한 번의 시험으로 결판을 내는 고시에 비하면 일정기간 해당 교육기관에서 공부한 사람에게 관련 자격증을 부여하는 방식이 더욱 더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학생이 로스쿨 학비를 마련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는 무상교육 운동이나, 정부차원의 저금리 학자금대출 요구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한마디

    로스쿨이 설립되는 대학교에는 학부(법학과)가 없어지게 됩니다.
    로스쿨이 없는 다수의 대학교의 법학부 졸업자를 위한 장치는 무엇일까요?
    그들이 법조계로 진출할 최소한의 기회가 없다면 로스쿨은 일본에서 로스쿨이 실패한 것처럼 우리도 실패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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