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전략회의(준)는 한국사회 주요 전략아젠다에 대한 진보적 정책생산을 목표로 모인 연구자, 활동가들의 전략네트워크이다. 사회운동의 통합적 활동이 가능하도록 운동과 운동을 이어주고 지역, 부문, 현장에서 운동기획을 자극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표방하고 있다. 진보전략회의(준) 회원들이 주요한 사안에 대해 발표하는 '진보논평'을 민중언론참세상에 게재한다.- [편집자 주]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으로 삼성재벌의 비자금 문제가 다시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알다시피, 삼성은 편법증여와 상속문제, X파일 등 대선비자금 사건 등으로 삼성과 총수 일가의 비자금 문제는 오래 전부터 관심사였지만 검찰과 법조계, 언론과 권력의 비호로 번번이 실체가 규명되지 못하고 깃털만 처벌되는 선에서 적당히 마무리 되어 왔다. 그러나 삼성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고발로 인해 다시 삼성의 비자금 문제와 총수일가의 세습경영 문제가 더러운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몇몇 시민단체는 삼성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고 사주 일가를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쟁점은 검찰의 삼성 비자금 수사에 맞춰져 있다. 법관과 검찰 최고위층에도 삼성장학생이 있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은 그동안 삼성관련 수사들이 진실규명에 이르지 못했던 이유를 확인시켜 주었다. 이를 증명하듯 검찰은 고발장을 받고도 떡값 받은 명단없이 수사할 수 없다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검찰이 자신의 생살을 도려내는 각오로 삼성을 수사하지 못할 것이 분명한 만큼 특검을 통해 비자금 수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또한, 김용철 변호사의 공개자료를 근거로 이건희 총수를 비롯하여 관련자들에 대한 구속수사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삼성은 대한민국 수출의 22%, 세수(稅收)의 8%,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23%, 상장기업 매출의 15%와 이익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재계 1위 기업이다. 미국 특허보유만 하더라도 삼성전자가 미국 전체 순위 2위(2006년, 2451건)에 해당할 정도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수식의 이면에는 무노조 경영으로 악명높은 삼성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 부패와 비리, 정부의 지원과 특혜 등으로 성장해 왔다. 삼성 비자금 수사는 삼성재벌의 족벌 경영과 세습 경영을 유지해 주었던 부패와 비리의 사슬을 끊는데 매우 중요한 고리임에 틀림없다. 이와 더불어 민간재벌의 경제력 집중에 따른 폐해를 시급히 시정해야 한다.
그동안 이 문제는 수없이 거론돼 왔고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재계의 반발과 로비에 부닥쳐 무산되고 말았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여러 부침을 거듭하며 축소되었고 그 결과 계열사간 상호출자와 채무보증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부당내부거래로 부실계열사를 무단 지원하는 관행도 지속되었다. 삼성 또한 마찬가지인데, 2003년 카드부실사태로 삼성카드에서 대규모 부실이 발생하자 이를 메우기 위해 3조원 가까이 유상증자를 했고 삼성전자를 동원해 수 조원을 투입 부실을 떠안았다. 또한 삼성자동차의 위기로 2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되고도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삼성자동차의 부채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이자를 포함해 두 배가 넘는 5조원이 넘는 규모로 불어나고도 나 몰라라 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의 문제는 이건희 일가의 족벌, 세습 경영의 문제만은 아니다. 법조, 금융, 정부 등 권력집단 전반에 삼성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총수일가의 문제일 뿐 아니라 삼성이라는 기업집단 그 자체의 문제이다. 족벌 경영은 대규모 기업집단을 유지하는 하나의 형태이다. 문제는 재벌이라는 기업집단의 시장지배력, 집중된 경제력이 사회적 통제 수단도 없이 전횡을 일삼고 있다는데 있다. 특히 삼성은 산업에서의 독점은 별도로 한다하더라도 금산분리원칙을 깨고 은행을 소유하기 위해 각종 로비를 감행하고 있어 금융과 산업질서 전반을 위협하고 있다. 생명보험회사를 통해 기존의 대병원 뿐만 아니라 중소병원까지 사실상 지배하는 민간보험과 의료기관간 독자적 시스템을 만들어가려는 시도를 벌이고 있으며, 이는 상업적 의료체계의 완성을 뜻하며 의료의 공공성이라는 싹마저 없앨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재벌의 위기가 곧 사회전체의 위기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97년 IMF외환위기를 불러온 주범이 바로 재벌기업들이라는 사실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때문에 재벌기업에 대한 통제는 족벌체제를 제어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재벌의 사회적 통제를 어떻게 형성하는 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재벌의 해체는 소유지배구조의 분산이 핵심이 아니다. 총수 일가를 퇴진시키고 기업집단을 몇 개로 쪼개 놓는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똑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총수일족을 견제하고 기업투명성 강화를 위해 도입된 사외이사제, 결합재무제표 의무화 등은 외국투기자본의 진입 통로로 악용되었다. 기업집단의 분산도 몇 개의 재벌(!)로 쪼개 놓은 효과만 낳았을 뿐, 업종별로 시장독점은 더 강화되고 있다. 가령, 현대의 경우 기업집단을 몇 개로 분리하여 일족끼리 분산되어 있어도 현대차는 기아차를 흡수하여 자동차 업종에서 시장지배력은 더 강화되고 있다. 지난해 정몽구 현차 회장의 구속에서 보듯 비자금과 같은 비리문제는 똑같이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 부의 편법상속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상속세, 증여세를 높였어도 신세계와 같이 세금을 내고 ‘합법적으로’ 부의 세습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오늘날 재벌해체는 족벌체제의 문제보다도 ‘개인소유의 독점기업’의 문제임을 분명히 해야 할 때이다. 이는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넘어서 삼성의 기업성격을 바꿔 내는 문제이다. 즉, 산업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독점기업의 소유를 ‘개인’에서 ‘사회 또는 국가’로 전환시켜 나가는데 있다. 또한 이러한 기업집단을 주식시장에 상장하기 위해서 기업의 투명성을 높여 나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경영에 대한 실질적 통제를 확보해 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삼성그룹은 이미 몇몇 특정 개인이 소유할 수 없는 기업집단이다. 삼성은 자산총액 246조(공정자산 129조), 자본총액 91조, 매출액 150조, 순이익 12조3천억원(2007년 4월 기준)을 내는 기업이다. 앞서 본대로 한국경제 전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형성하고 있는 기업집단이다. 그런데, 이를 지배하고 있는 이건희 일가의 삼성그룹 지분은 이건희 1조7천억, 부인인 홍라희 6천3백억, 아들인 이재용 1조1천억(2005년9월 현재) 등으로 총 4조원을 넘지 못한다. 이들은 4% 정도의 지분으로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고작 그 정도의 지분을 갖고 부정부패와 탈법적인 방법으로 기업을 유지 운영해 왔고, 각종 불법적인 방법으로 부를 상습 했다. 때문에 이건희 일가는 퇴출되어야 하며 이는 4조원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출자총액제한, 부패비리 기업인 퇴출 등 합법적 수단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이제 삼성과의 싸움은 족벌, 세습 경영체제를 해소하고 소유구조를 ‘분산’시켜 내는 문제를 넘어 ‘개인적’ 소유에서 ‘사회적’ 소유로 바꿔 나가기 위한 싸움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장의 얼굴과 이름만 바뀐 채, 재벌구조의 폐해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이번 비자금 수사는 이를 밝혀내고 재벌지배구조를 실질적으로 해체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삼성이라는 기업집단의 경제적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하여 어떻게 사회적 소유로 전환시켜 나갈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촉발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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