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에서 여러 명의 노동자가 사망을 했지만 동료들은 아무 말도 못한다. 회사에 찍힐까봐 두려워서다.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내 아이의 일이 아니면 아이 친구가 폭행을 당하고 돈을 뜯겨도 별 관심이 없다. 괜히 정의의 이름으로 나섰다가 자신의 아이가 불이익을 당할까봐 두려워서다.
최근 일부 외고에서 입학시험문제가 유출되어 난리다. 명문대 진학을 목적을 자녀를 특목고에 입학시키는 학부모가 많아져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근래에 특목고 졸업생이 대거 권력집단에 진입하면서 특목고 진학열풍을 더욱 부추기고 이것이 특목고 학벌로 이어지고 있으며, 결국 학벌주의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일반 대중들은 현실의 고통에 대한 역할 분담과 갈증 해소에 목말라 있음에도 쉽게 나서지 않는다. 이들은 대부분 현실론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국가권력과 소비자본주의에 포섭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저항하고 도전해도 안 될 것이라고 미리 단정 짓기 때문에 스스로 돌파하려는 의지를 배제한 것이다.
한국의 교육문제가 어제 오늘일은 아니지만 점점 절망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왜 일까. 예전에 국가에서 청소년들에게 문화공간을 마련하여 이들의 교육 스트레스와 일탈 행위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고자 콜라텍을 설치한 적이 있다. 한마디로 알코올대신 콜라를 마시며 춤을 추라는 것이다. 정말 어처구니없고 화가 났다. 왜 하필이면 콜라텍일까. 그리고 몇 가지 의아스럽기도 했다. 청소년들에게 콜라를 알코올 삼아 춤을 추라면 제대로 몸짓이 나오기는 하는 걸까. 그래도 춤이라는 것이 약간의 알코올이 체내로 흡수 되어야 어느 정도 몸짓이 되지 않을까. 멀쩡한 정신으로 헤드뱅은 가능할까.
그 후 콜라텍은 언제 사라졌는지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대신 그 자리에는 성인콜라텍이 들어서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접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술과 부킹과 카바레 등으로 변종 및 편법 영업을 하면서 중년들에게 일탈을 꿈꾸는 온상지가 되고 있으며 건전한 노인층들을 울리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유치원을 포함하여 길게는 14년 동안 대학입시만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사이보그 같은 존재들이다. 그 어느 나라보다 밤 문화가 발달한 사회이지만 이렇게 많은 오락 공간 중에서 청소년들만을 위한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은 모순적이다. 대학 입시의 압박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이 그들의 스트레스를 풀만한 장소가 없다는 상황이 청소년 놀이 공간의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있지만, 이러한 부족을 충족시켜 줄 대안들은 항상 일시적인 수준이었다. 이는 대안 마련의 주체인 성인들의 안일한 사고와 태도 때문이리라.
우울하거나 짜증날 땐 헤드뱅이 약이라는데, 1달에 1번씩 이들에게 해방구를 만들어주자. 만 19세가 되어야 알코올 섭취가 가능한 대한민국에서 이들의 성적 욕망과 자유로움은 어떠한 방식으로 채울 수 있을까. 막걸리텍이면 어떻고 소주텍이면 어떤가. 누구나 젊을 시절에 한 번쯤은 일탈을 꿈꾼다는 말은 하지말자. 그것은 자신을 속이고 기만하는 것이다. 인간은 평생 몇 번, 아니 수십 수백 번은 일탈을 꿈꾸지 않은가.
입시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국가가, 미성년자 나이조차 정리 못하는 국가가, 자본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국가가, 1달에 1번 이들에게 놀이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은 어렵지 않을게다. 나아가 입시철폐하는 그 날까지 수능시험을 보는 날 당일에 한해 전국의 모든 수험생들에게 무도회장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도록 열어놓아야 한다. 미친 사회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들도 미친 듯이 신나게 놀 권리가 있다.
청소년들은 우리의 미래다. 2-30년 후에 이들은 이 사회의 중심세력이기 때문에 지금의 선택과 투자는 향후 50년의 미래를 담보한다. 이들에게 아낌없는 투자는 신명나는 세상을 열기위한 초석에 불과하다. 그 조차도 못하는 국가를 어떻게 인정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