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econoi.co.kr] |
우리 사회 구성원은 65세 이상이 되면 먹고 살아갈 방편으로 자식에게 기대거나, 얼마 안되지만 자기 몸뚱아리 굴려서 입에 풀칠하거나, 젊어서 벌었던 돈을 조금씩 깍아 먹거나 하면서 살아간다.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재테크니 뭐니 하면서 미리 준비를 했던 이들은 그나마 여유있는 삶을 살아간다. 나이 들어 좀더 여유있게 살아가려면 최소 5억은 가져야 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65세쯤 5억을 호주머니 아니 통장에 가지고 있을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우리국민의 5%, 아니 1%라도 될까?
20년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노후에 살아갈 수단을 전적으로 개인의 능력이나 운명으로 치부해왔다. 1988년 국민연금이란 제도를 도입하기 전까진 말이다. 1988년 이후에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노후소득을 책임지는 시스템이 ‘형식적으로는’ 갖추어 졌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자기가 버는 소득의 9%(월급쟁이는 4.5%)를 매달 보험료라는 명목으로 60세 까지 내면 명목상으로 65세 이후에 매달 지급되는 연금으로 먹고 살수가 있다. 만약 이렇게만 될 수 있었다면 국민연금은 국민한테 사랑받는 제도로 진즉 자리잡았을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매달 정기적으로 꼬박꼬박 소득을 올리는 이보다는 불규칙적인 수입으로 연명하는 이들이 많아 국민연금에 가입해야 할 이들 중 50%에 달하는 이들이 가입해 있지 않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노후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이는 국민의 절반밖에 안된다. 하지만 이 절반의 숫자도 그리 만족스럽지가 않다.
40년을 다 채워봐야 이들이 나중에 받을 소득은 현재 소득의 60%밖에 안된다. 최근에 이걸 40%로 줄여버렸다. 연금제도가 자리잡은 유럽의 경우 최소 70%정도이다. 비정규직이 늘고, 고용이 불안전하다보니 그나마 40년을 꼬박 채우기가 힘들다. 평균 20년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불안정고용의 확산 추세는 줄어들기는 커녕 더욱 늘어날 조짐이라 ‘반의 반의 반으로’ 줄어드는데다가 이마저도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있다. 이런 사정이다보니 항간에 ‘국민연금의 8대비밀’이란 문서가 대중적 인기를 끌만큼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은 커질대로 커져 있다. 믿음직하지도 못한데 달마다 꼬박꼬박 몇만원 자기 임금에서 떼어가니 ‘눈 뜨고 코 베어가는’ 세상이 따로 없다고 생각될 정도이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매달 떼어가면서 쌓아두는 돈이 2045년, 2050년, 2070년 정확한 년도가 언제일지는 주장하는 이마다 서로 다르지만 암튼 한푼도 남지 않고 없어진다고 한다. 원인은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도록 애초부터 설계되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 몇십년 후에 없어질지 모르니 보험료는 올리고 지급하는 돈은 줄여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셈법으로 논쟁을 거듭하다가 올해 4월에 보험료는 그대로 두는 대신에 지급하는 돈은 줄이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그래도 시기는 늦추어질지언정 고갈되기는 마찬가지이다. 뭐 그 시기가 몇십년 후이니 현재를 살아가는 이에게 피부적으로 실감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월급통장에서 빠져나가는 돈은 더 커지니 불만은 그만큼 커질 것임은 자명하다. 아마도 5년을 텀으로 해서 이런 셈법에 따른 논란은 계속 반복될 전망이다.
그런데 나중에 고갈될 운명에 처해 있더라도 국민연금기금에는 당분간 엄청난 돈이 쌓이게 된다. 지금 200조원이 넘는 돈이 쌓여 있다. 이 돈이 2030년쯤 되면 20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크기로 늘어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 쌓이는 돈의 용처를 두고 또 다른 논란을 겪게 된다. 그냥 은행에 쌓아두면 이자도 얼마 안되니, 투자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동안은 안정성 위주로 투자를 하다가 이젠 ‘수익성’ 위주로 투자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돈을 늘리고 있다. 올해에는 10조 정도인데, 최근 이를 더 확대되는 법안이 통과되어 기하급수적으로 주식시장에 투자되는 돈이 늘어날 전망이다.
그리고 돈을 운용하는 주체를 금융투자전문가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어 있다. 어차피 없어질 돈이지만 당분간 계속 쌓이는 돈을 주식시장을 키우는 ‘저수지’로 활용할 생각인 게다. 국민들의 호주머니 쌈짓돈을 주식투기판, 돈투기판의 종잣돈으로 쓸 사고인 셈이다. 물론 핑계는 있다. 은행에 쌓아놓아 버는 이자보다 요즘 주가도 팡팡 뛰니 수익이 더 많아지고, 그에 따라 연기금의 안정성도 더 높아질 게 아니냐는 소리이다.
보수우파쪽에서는 연기금 주식투자를 늘리는 것을 ‘연기금 사회주의’라고 딴지 걸기도 한다. 보험료 올리고, 연금으로 지급되는 돈을 줄이고 하면서 앞으로 20년 이상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돈은 주식투기판에 쏟아 넣으려고 하는 이 상황을 두고 좋아할 이는 금융자본가와 소수 주식을 가진 이들 밖에 더 있겠는가? 그리고 세계 경기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투자수익을 항상 낼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얼마나 불확실한 전망이란 말인가? 투자원금을 몽땅 까먹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전혀 다른 방향으로 국민연금의 제도 설계와 쌓여 있는 돈의 쓰임새를 모색하는 것이 타당한 일이다. 현재 쌓이고 있는 국민연금기금 중 일부(주식투자에 쓰려고 하는 액수만큼도 굉장히 액수이다)를 최근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보육, 간병, 노인돌보미 등 사회서비스를 위한 공공인프라를 세우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공공주택, 공공의료 그리고 평생교육을 위한 종잣돈으로 활용하면, 당장은 수익을 낼 수 없어 돈이 없어지는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지만 이는 향후 주거, 의료, 교육, 간병, 보육 등 사회서비스에 개인이 지출할 돈을 줄여주는 기본 토대로 작용하게 된다. 물론 미래에 지출할 비용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 지출하는 비용도 줄이는 효과를 발휘할 것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과정과 대책을 진행시키면서 노후소득에 대한 제도 설계 및 대책을 긴 호흡을 갖고 진행하는 일도 병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매년 수레바퀴 돌 듯 사회적 논란을 되풀이하면서 결국에는 노동자, 민중의 부담만 키우고, 노후소득도 책임지지 못하고, 결국 금융자본의 배만 살찌우는 결과만 낳게 되는 현재의 국민연금에 대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작업, 이제 시작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