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차가운 것이 만나 온순해졌다. 마이클과 한나의 만남은 이렇다. 한나와의 첫 만남 이후 열병에 시달린 마이클은 한나와의 재회 이후 자신의 뜨거움을 자각한다.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한나는 마이클을 만나 자신의 차가움을 조금씩 벗겨낸다. 맨살과 맨살이 만나고 몸의 굴곡들이 뒤엉키면서 이 둘과 세상은 서서히 온순해진다. 생각하기에 따라 사랑이라는 사건은 신비롭고 재미있다. 어떻게 사랑하지 않던 사람들이 만나 사랑에 빠진단 말인가. 그리고 어떻게 사랑하던 사람들이 마치 남이 된 것처럼 이별한단 말인가. 만남과 이별, 그리고 사랑은 모든 관계의 서술 속에서 반복된다. 만나서 사랑하고 이별한다. 이것을 압축적으로 ‘사연’이라고 부른다. 이 사연들이 <채털리 부인의 사랑>, <오디세이>, 그리고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만들어 낸다. 한나와 마이클은 만남을 거듭하며 자신들의 사연 속에서 문학 작품들의 사연을 진행시킨다. 어디에선가 들었던 것 같은, 어디에선가 일어났던 것 같은 사연들, 자신들의 것 같기도 하고 남의 것 같기도 하고 꿈인가 싶으면 현실인 시간들이 교차된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사연이 마이클과 한나에게 각각 다른 체험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영화 속에서는 마이클의 낭독이 ‘문자’와 ‘음성’으로 전달되지만 이것은 마이클의 시점에서 영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글을 모르는 한나에게 마이클의 문자와 음성은 이미지이고 행위이며 때로는 촉각적인 체험일 것이다. 만약 영화가 한나의 시선으로 전개되었다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마이클의 낭독은 가상의 이미지로 재연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사례를 스트븐 달드리 감독의 <디 아워스 The Hours, 2002>에서 목격한 바 있다.
문자와 음성의 개별적 체험, 따라서 영화를 진행시키는 핵심적인 모순은 ‘문맹’이다. 문맹은 마이클과 한나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지속시켰던 숨은 전제이면서 동시에 한나가 마이클을 떠나게 만든 간접적인 동기이다. 그리고 한나와 마이클을 법정에서 재회시킨 근본 모순이면서 한나와 마이클이 다시금 관계를 맺게 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즉 이 영화에서 문맹은 모든 관계의 입구이면서 동시에 출구이다.
문맹은 읽기와 듣기 사이의 거리를 만들어낸다. 문제는 읽기와 듣기 사이의 거리를 권력의 차이로 이해할 것인가 그리움의 깊이로 이해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읽기와 듣기는 엄연한 권력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언제나 읽기는 높은 지위의 권력을 누린다. 마이클은 변호사고 한나는 죄수다. 마이클은 자신의 시간이 진행되는 동안 정의(justice)에 대해 고민했고 한나는 수치심(shamed), 혹은 책임감에 충실하게 살아왔다. 마이클은 세계를 구현하는 원리들을 읽고 한나는 직무적인 명령을 듣는다. 마이클은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한나의 증언이 한나에게 불리할 것임을 알지만, 한나는 자신의 일인데도 자신의 증언이 자신에게 불리할 것임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권력의 차이를 그리움의 깊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읽기는 듣기를 그리워한다. 즉 읽어준다는 행위는 그것을 듣는 자가 없을 때 허공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갑자기 한나가 사라지고 함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는 동안 마이클은 읽기를 수행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법전을 읽는, 불구의 읽기에 그치고 만다. 대상이 없는 읽기, 자기 자신을 위한 읽기는 곧 허공을 향한 읽기에 다름 아니다. 허공은 자기 자신과 동일시된다. 한나가 없는 상황에서 그의 읽기는 사연과 이야기 속의 긴박함도, 애절함도 사라진 무미건조한 기계적인 행위에 그치고 만다. 그것을 들어줄 사람이 부재한 읽기, 읽는 자와 듣는 자 사이의 사연으로 승화되지 못하는 자폐적인 반쪽의 독백 말이다.
이런 마이클에게 다시 한나가 찾아온다. 이제부터 마이클에게 새로운 갈등이 생긴다. 그것은 한나에게 읽어주던 시간과 혼자 읽던 시간 사이의 거리, 문학과 법전 사이의 거리, 그리고 수치스러움(shamed)와 정의(justice) 사이의 거리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이다. 사람이 모이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법정에서 마이클은 다시 한나와 관계를 만들어 낸다. 마치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모를 때 그 둘만 은밀하게 사랑했듯이, 이번엔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지만 오직 단 둘만 진실을 알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다. 마이클은 한나가 문맹이란 것을 이제야 눈치 챈다. 꼼짝할 수 없게 찾아온 진실 앞에 선 마이클은 지독한 갈등 끝에 결국 그것을 외면하고 만다. 사랑으로 시작했던 마이클과 한나의 만남은 마이클이 만남(면회)을 회피하면서 결국 한 순환을 종료하게 된다. 이 과정을 거쳐 마이클은 진실도 외면하고 사랑도 외면하는, 결국 영혼이 사라진 기계적인 인간이 되고 만다. 그리고 마치 주문에 걸리듯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게 된다. 텍스트에서 사연을 제거한 정황만을 추론하고 변론하는 변호사, 가족을 보살피지 못하는 아빠, 사랑하지 못하는 남자. 이제 문맹은 마이클에게 찾아온 새로운 질병이다. 그는 그 자신을 읽어내지 못한다.
마이클이 자신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은, 거꾸로 말하자면 마이클의 사연을 귀담아 들어줄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제적 개인인 마이클로부터 시작한 영화는 결국 마이클의 생애에 대한 질문으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다. 마이클은 자신을 누구에게 읽어주어야 할 것인가? 마이클의 회복은 가능할 것인가?
마이클은 결국 다시 한나를 찾게 된다. 모든 삶의 입구이자 출구였던 한나와의 관계가 다시 시작된다. 마이클은 다시 읽고 한나는 다시 듣는다. 마이클은 자신을 향해 있던 영혼의 문맹을 깨고 다시 읽기에 애절함과 감동, 눈물을 싣는다. 마이클이 자신을 향한 문맹을 허무는 동안 한나는 일평생 자신을 억눌렀던 문맹을 스스로 허물기 시작한다. 동시적인 사건으로 진행되는 두 인물의 눈뜨기는 길고 오래되었던 둘의 만남이 도달하게 되는 새로운 지평이다. 그러나 둘의 사연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랑은 끝났으나 사연은 끝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거쳐 성사된 만남에서, 마이클과 한나는 이제 각자의 출구를 향해 걸어가게 된다. 일평생을 괴롭혔던 사랑이라는 사건의 종료. 한나에게 마이클은 곧 책이었다. 한나의 욕망을 구현하고 존재를 실현시켜 주는 존재. 첫 번째 만남에서 그러했듯, 이번에도 한나가 먼저 떠난다. 한나가 책을 딛고 올라서면서 책으로 존재하는 마이클과 한나의 육체가 마지막으로 포개진다. 한나의 발은 한나의 생을 반영하듯 거칠고 안쓰럽다. 한나를 떠나보내고 마이클에겐 이제 스스로의 사연을 써내려가야 할 시간이 찾아온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고백되는 시간을 통해 마이클은 다시 온전한 존재로 세계 속으로 복귀한다. 이제 마이클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사연이 되어 세계를 떠돈다.
이 세계는, 복잡한 삶의 지층들이 얽히고 뒤엉킨 혼란이다. 그러니 담담히 살 일이다. 세계라는 강물을 향해 자신의 사연이라는 배를 띄우고 강 저편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의 언덕을 만날 그 순간을 위해 말이다.
by(e) Gh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