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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4차 시국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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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을 강타한 매서운 추위도, 경찰의 해산엄포도 시청 서울광장에 모인 1천 여 시민의 촛불을 막지 못했다. 2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시국미사가 변변한 조명도 없이 서울광장 축축한 잔디 위에서 8시 30분이 되어야 간신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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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7시에 미사가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경찰은 단식농성중인 용산범대위 대표단의 서울광장 접근부터 막기 시작했다. 음향장비 반입도 막았다. 단식 9일째였던 최헌국 목사(기독교 대책위)는 경찰에 둘러싸여 항의하다 경찰이 밀어 실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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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식 9일째였던 최헌국 목사(기독교 대책위)는 경찰에 둘러싸여 항의하다 경찰이 밀어 실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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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에 참석하려는 김인국 신부를 막아선 경찰들. |
경찰은 촛불을 끄면 미사를 허용하겠다고 했지만 김인국 목사는 “그런 놈의 미사는 못 한다”면서 경찰의 요구를 거부했다. 경찰은 서울시가 미사를 불허했고 서울광장 무대에서 왕궁 수문장 캐릭터 행사가 열리고 있다며 미사에 참석한 시민들을 모두 둘러쌌다. 그러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들이 둘러싼 경찰들 앞에 피켓과 현수막 등을 들고 경찰을 등지고 서서 시민을 둘러싸 보호했다. 기자들이 터트리는 카메라 스트로보 불빛과 서울시 신청사 공사장의 홍보 전광판 불빛 사이로 드러난 경찰 헬멧의 굴곡은 이날 시국미사의 절박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날 경찰은 해산에 나서지는 않았다. 8시 20분께 음향장비가 간신히 광장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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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신청사 공사장의 홍보 전광판 불빛 사이로 드러난 경찰 헬멧의 굴곡은 이날 시국미사의 절박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
미사를 시작하며 전종훈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신부는 "문규현 신부님이 쓰러져 돌아가셨다"고 말하자 순간 서울광장은 얼어붙었다. 시민들이 웅성거리자 전종훈 신부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다시 살아나셨다"면서 “문 신부님은 수술을 받으셔야 한다”고 밝혔다. 시민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전 신부는 이어 “다 죽어야 한다면 다 죽는 날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김인국 신부는 강론을 통해 “배울 만큼 배운 재판장들이 조롱을 받는 것은 다 돈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인국 신부는 “2007년 삼성내부에서 양심선언으로 삼성문제가 밝혀졌지만 특검조차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면서 “다 삼성이 키운 떡값의 강아지들이고 자유로운 영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높은 사람들에게 아이들 걱정 없이 키울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하려 망루에 올라간 사람들에게 특공대를 투입하지 않았다면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버지가 죽었는데 그 아들에게 6년을 선고하는 그런 미친놈이 어디 있느냐”면서 강하게 재판부를 비난했다. 김인국 신부는 용산참사와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판결을 한 판사들을 향해 “그들은 돈과 권력에 미친 자들이다.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큰 회사에서 돈을 받아먹을 거지들이다. 아귀들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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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사제단은 4차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시국선언문에서 “국민의 보편적 권리를 위해 마련된 갖가지 권능을 특정 자본권력과 극소수를 위해서 그릇되게 남용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국민에게는 가혹한 철퇴를 휘두르고 있으니 도저히 정부라고 볼 수 없어 신앙과 양심의 이름으로 국민 불복종을 선언할 결정적인 때가 닥쳤다”고 밝혔다. 이어 “권력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진리를 확고부동하게 만들지 못하면 무참히 얻어맞고 일터에서 쫓겨나 감옥에 갇히는 불쌍한 종살이는 나날이 극심해질 것”이라며 “부디 불굴의 정신으로 정부의 탈선과 광기를 잠재우고 새로운 국가 공동체를 준비하는 일에 다 같이 신명을 내자”고 호소했다.
미사는 9시 30분께 끝났다. 미사에 참가한 시민과 신도들은 용산참사 유가족들에게 힘을 내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참가자들은 용산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고 미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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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차 시국미사에 참가한 용산참사 유가족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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