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둔 것이 죄라는 말이 실감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인간의 행위는 이윤을 얻기 위한 행위로 해석되고 있어 의식주나 통과의례와 같은 삶의 필수적인 영역들이 공유나 사회적인 의미를 잃어버리고 투자의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주택, 결혼, 출산, 육아, 장례 등이 통과의례나 사회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윤이나 손해의 기준으로 비용과 편익을 계상하는 투자의 일종으로 인식되고 있다. 교육이나 의료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아니 교육이야말로 모든 투자의 최종 선택지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대를 물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육에 들인 비용과 이후의 소득과의 기회비용이 직접 대비된다. 하기에 지금은 더 나은 교육기회를 얻기 위해서, 부와 권력을 획득하기 유리한 학교와 학과에 진입하기 위해 살인적인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늘 불안에 떨고 있는 당신의 자녀 교육 전쟁은 유치원 정도에서 시작하고, 한 때는 피아노와 미술과 태권도 사이에서 그 이전에는 주산과 웅변과 한글에서 지금은 영어를 두고 한숨만 쉬고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할만하다. 뭐 어느 것이 더 나은지 별 관심이 없이 살아왔다 하더라도 경험적으로 알 수 있었으며, 사실 이것과 저것 사이에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태권도학원에서 한글도 가르치고, 퇴근할 때까지 애들도 봐주고 했기 때문이다.
그저 그렇게 살아 왔으니 문제다. 이제 당신의 투자 전략이 어느 수준인지 확인해 보자. 혹시 당신은 지금 대학입학제도가 수학능력 점수로 진행된다고 알고 있는가? 좋은 대학에 소위 학벌있는 대학에 자녀를 보내고 싶은 욕망에 불타는 당신에게 다시 묻는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수학능력 시험에 고득점하면 된다고 알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고 답하면 당신은 전략이 없거나 실패할 것이 분명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
수학능력시험 점수는 대입에 필요한 여러 전형자료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것을 반영하지 않는 입시절차가 허다하고, 반영하더라도 각 대학 나름대로 변형해서 사용하고 있다. 또 다른 전형자료인 고등학교의 성적도 여러 형태로 변형되고 비틀어서 고교를 등급화해서 사용하고 있으며, 논술이라는 것도 당신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논리적인 긴 글쓰기 같은 것은 없다. 오히려 대입에서 중요한 것은 영어 에세이이며, 이명박 정부 들어 입학사정관제라는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는 제도가 돌출하고 있다.
대입이 그러려니 한다면 고등학교는 잘 보낼 자신이 있는가? 혹시 당신이 서울에 살고 있다면 서울이 고등학교 평준화여서 문제가 된다는 언론의 호들갑을 이미 신물 나게 듣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의 학생들의 학력을 떨어뜨렸다는 또는 사교육비를 증가시킨다는 주범으로 주목된 고등학교 평준화는 평준화를 도입하던 당시에는 망국적인 과외를 근절시키기 위한 대책으로 마련된 것이다. 고등학교 평준화는 학교를 평준화한 것도 아니고 학생들을 평준화한 것도 아니다. 교육과정이 달라진 것도 아니고 학교시설이나 환경 여건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평준화와 비평준화의 다른 점은 오직 한가지다. 학생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개별 학교에서 교육청으로 바뀐 것. 그래서 개별학교에 학생들이 입학원서를 내던 것이 교육청으로 바뀐 것뿐이다.
그런데도 평준화를 보완한다는 명분으로 특수목적고등학교, 자율학교, 자립형학교 등 별 헤어일 수 없는 종류의 학교들이 생겨나더니 급기야는 이미 부패로 자리에서 물러난 공정택 교육감이 학교선택제를 전면 확대했다.
서울시 교육청의 설명에 따르면 학교선택제는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학교를 선택하게 함으로써 학교간의 경쟁을 촉진하고 무임승차를 배제하여 교육발전을 도모하자는 취지의 제도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2010년부터 고교선택제를 실시할 예정으로 2009년 8월 30일 학교선택제를 골자로 하는 고등학교 전형요강을 발표하였다. 이는 현재처럼 학생이 학교를 강제 배정받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원하는 학교를 최대 4곳까지 선택하여 지원하면 1-3단계에 걸쳐 추첨하여 학교를 배정받게 하는 방식이다.
1단계에서는, 서울의 전체 학교 가운데 서로 다른 2개 학교를 골라 지원하면 추첨으로 정원의 20%가 배정된다. 2단계에서는, 거주지 학교군이 서로 다른 2개 학교를 선택하여 지원하면 추가로 정원의 40%가 배정된다. 1, 2단계에서 미달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지원자가 초과한 단계에서 탈락한 학생들로 미달 단계의 부족 정원을 추첨하여 채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뒤 3단계에서는, 통학 편의와 1, 2단계 지원 상황, 종교 등을 고려하여 나머지 학생들을 거주지학군과 인접학군을 포함한 통합학교군 내에 추첨으로 배정한다고 발표했다.
이 제도가 가져올 공립학교의 서열화 및 사교육비의 증가, 입시경쟁 과열, 계층간 · 지역간 교육 불평등과 격차 심화 및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대립 심화 등의 부작용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니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서울시 교육청의 말을 따라가 보도록 하자. 그간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서울교육청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쳐 왔다. 과거 평준화 시대 이전에는 학생의 학업 능력이 학교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었지만, 현행 제도에서는 부모의 거주지에 따라 진학하는 학교가 결정되어, 특정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거주지를 이전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고, 거주지를 이전할 형편이 되지 못하는 경우 위장전입이라는 편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제도 변화의 궁극적인 도달점은 학생이다. 그간 많은 교육정책이 입안되고 시행되어 왔지만 학생·학부모를 중심에 두고 추진된 사례는 많지 않았다. 더러 교육 수요자를 존중하는 정책이 발표되었지만 구체성과 실효성이 미흡한 경우가 많았다. 학교선택제의 최대 수혜자는 학생·학부모이다. 내가 희망하는 학교에 진학할 확률을 살펴보면 80%대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60%(1단계 : 20%, 2단계 : 40%)의 학생들이 희망하는 학교에 1, 2단계에서 배정될 것이고, 설령 1, 2단계에서 탈락했다 하더라도 거주지 주변의 학교를 지원했다면 3단계에서 다시 배정될 확률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환상을 심어 놓은 서울시 교육청이 고교선택제 모의 배정 결과 및 2010년 고교선택제 강행을 발표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그리고 학생들이 한참 고입원서를 쓰고 있는 12월에 스스로 고교선택제를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구체적으로 시교육청은 애초 1단계 단일학교군(전체 학교 가운데 2곳 선택)에서 20%, 2단계 일반학교군(거주지 학군 학교 중 2곳 선택)에서 40%를 무작위 추첨하기로 했으나, 2차 배정에서는 교통편과 거주지를 고려해 인근 지역 학생을 우선 배정하기로 했다. 나머지 40% 학생들은 3단계에서 강제 배정한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당신을 위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면 이렇다. 당신이 화곡동쯤에 살고 있는데 목동의 학교에 가고 싶다고 생각해 보면 답이 보인다. 인기가 높아 학생들이 대거 몰리는 강남·목동·중계동 등 이른바 ‘학원밀집지역’ 학교들의 경우, 같은 학군에 속하더라도 상대적으로 통학거리가 먼 학생들은 원하는 학교에 배정될 가능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시교육청 관계자는 “2차 모의배정 결과, 목동 등 일부 지역 학교는 경쟁률이 20~30 대 1까지 치솟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학급당 인원을 40명까지 늘리고 학급 수도 가능한 많이 배정하기로 했지만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이런 대책을 마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거주지에서 먼 학교를 배정받는 학생을 최소화하자는 뜻일 뿐 특정 지역 학생들을 배려하는 차원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 났을까? 시교육청은 단지, 11월 12일과 13일 두 차례 학부모 4명(노원, 양천, 중구, 도봉)과 교장·교감 6명(노원, 양천, 여의도, 도봉, 강서, 성동)의 의견을 듣고 4년 동안 준비해왔다는 선택제 시행 방법을 시행을 코앞에 둔 시점에 바꿨다. 이날 동아일보는 시교육청은 “선호 학교 인근 학부모로부터 항의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밝혀 이들 지역 주민의 민원이 작용했음을 시사했다.
학교에서 성적을 올리기 위한 학생들의 전쟁만이 아니라 교육정책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전개하기 위해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여기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고교 선택제는 도입 초기부터 부유층을 위한 제도였다. 당시 교육감 선거를 앞둔 공정택 교육감은 강남 학부모들을 돌면서, "강남 학생들은 절대 퍼내기 없다. 장담한다" 고 했다. 이에 대해 강남 주민들은 몰표로서 화답했다. 그리고 이번에 목동과 중계동 등을 위해 제도를 비틀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고교선택제는 학생들의 선택권 보장이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과열화된 대학입시제도하에서 입시경쟁교육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선호 비선호 학교를 구분 짓는 고교등급화 정책이다. 이는 서울시교육청의 두 차례 모의배정 결과에서도 드러나듯이 대학입시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소위 입시명문고를 중심으로 특정 지역, 특정 학교로의 쏠림 현상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애초부터 쏠림과 몰림은 예상되었던 일이기에 어려운 학교들을 위한 정책적인 배려가 선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강행하다가 지역에 철옹성을 그어 놓고 ‘너희들은 이 곳에 들어오면 안돼‘ 라고 소리치는 이번 방안은 사기극의 수준을 뛰어 넘는 짓이다.
자 이제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자녀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오늘도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연장하고, 그저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자조하며, 자녀의 등을 학원으로 떠 밀어 넣기만 하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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