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새해 들어 예멘이 새삼스럽게 국제적 주목을 받으면서 미국의 대테러 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이 예멘에서 대테러 전선을 넓히면서 ‘새로운 전쟁’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작년 3월 한국인 여행객들을 폭탄테러로 살해한 예멘의 ‘아라비아 반도 알카에다(AQAP)’ 조직이 ‘성탄절 항공기 테러’ 미수사건 배후에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미국이 AQAP에 대한 보복 공격하는 방안을 고려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범인으로 지목된 나이지리아 출신 대학생 압둘무탈라브가 실제 범인인지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서방 정보당국의 무책임한 대응도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와 접한 예멘 북쪽 국경지대 사다 주(州)는 사실상 전시상태다. 사다 주 일대는 아프간-파키스탄 접경지대처럼 정부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무법지대가 되어버렸다. 예멘 정부의 언론 통제로 인해 어느 정도의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는지는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상황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미국 정보기관들과 예멘 정부는 아프간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주장하지만 알카에다가 어디에 얼마나 들어와 있는지는 모르고 있다. 예멘의 친미정부인 살레정부는 물밑에서 알카에다 조직과 얽혀 있다.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이 북부 시아파 반군을 진압하려고 알카에다를 불러들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예멘의 정치불안정과 복잡한 정세
현재 예멘은 부패하고 무능한 독재체제인 살레정부에 대한 무장봉기로 인해 내전중이다. 통일 이후 살레 정부는 남부 지역과 북서부의 소수 시아파인 후티족들에게 지속적인 차별정책을 실시함으로써 분노를 일으켰으며,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크게 두 가지 사건이 발생하여 정세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하나는 살레 정부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확실한 증좌없이 북서부 후티족들의 반란에 이란이 개입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란 끌어들이기’를 시도한 것이다. 여하튼 결과적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끌어들이기’에 성공하여 지원을 얻어냈다. 현재 사우디아리비아와 미국의 공습으로 인해 수많은 인명이 희생을 당하고 있다.
둘째, 알카에다가 등장한 것이다. 남부의 저항 운동이 대중적인 지지를 획득하는 상황에서, 알카에다의 개입을 꺼리는 남부 저항운동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알카에다가 개입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알카에다의 개입은 결과적으로 서방의 개입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 주는 것이며, 이러한 이유로 서방과 알카에다와의 관계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알카에다의 개입은 ‘테러와의 전쟁’ 정책 폐기의 상징적 조처로 추진해왔던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지연시켰다.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풀려난 수용자 5명 중 1명이 테러전에 복귀했다는 확인불가능한 미 국방부의 비밀정보가 폐쇄 조처를 당분간 유보시켰다. ‘성탄절 항공기 테러’ 미수사건의 경우 용의자인 압둘무탈라브와 협력했던 예멘의 알카에다 조직원 4명중 2명이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풀려났단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미국은 과거에 민족주의와 종교적 열정으로 무장한 아프가니스탄 전사들을 꺾는 대신 이들을 도왔으며, 이들이 소련과 결사항전을 펼치며 승리할 때는 이들의 호전성을 높이 샀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을 계기로 시작된 신냉전 시기에 빈 라덴과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들은 파키스탄 정보부인 삼군통합정보부를 매개로 해서 미 중앙정보국과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자금 지원을 은밀히 받았다.
이러한 은밀한 지원에 힘입어 빈 라덴은 1988년에 이르러서는 미국의 묵인 하에 전 세계 26개국에 걸쳐 활동하는 알카에다 그룹을 만들게 된다. 그것은 알카에다와 같은 극우익 성향의 이슬람 운동이 중동 지역의 공산주의나 좌파, 민족주의적 흐름을 막아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전쟁을 부르는 석유에 대한 탐욕
문제는 미국이 살레 정부를 밀어주고, 이에 살레 정부가 미국에 등 떠밀려 대테러전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AQAP를 배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멘의 ‘배신’과 미국의 공세에 몰린 AQAP는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 AQAP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에서 활동하는 테러조직이다. 이들의 목표는 사우디 친미왕조를 몰아내고 아라비아 반도를 미국 지배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상황 및 이해관계가 대테러전을 확산시키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예멘 주민들이 떠안고 있다. 예멘 국경지대에서 민간인 살상, 학대, 가혹행위, 폭격, 난민사태 등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라크, 아프간에 이어 세 번째 전쟁이 될지도 모른다.
미국은 예멘에 육군 특수부대와 정보요원들을 파견했으며 대테러전 무기·자금을 내주기로 결정했다. 또한 앞으로 18개월간 7000만 달러를 들여 예멘 대테러 병력을 훈련시킬 계획이다.
하지만 미국이 예멘에서 전쟁을 일으킨다면 제 발등을 찍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치르는 전쟁의 총비용이 3조에서 6조 달러 사이의 천문학적인 액수로 추산되는 상황에서 예멘에서의 전쟁은 오바마로 하여금 그 어떠한 정책도 추진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또한 경제회복이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에서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예멘에 집착하는 이유는 잠재적인 석유 매장량 때문이다. 예멘 남부의 마실라-샤뱌 분지(Masila-Shabwa Basin)에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 매장지가 존재한다고 추산하고 있는데, 전 세계가 향후 50여 년 동안 소비할 수 있을 만큼의 양이라고 추산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예멘과 소말리아 사이에 위치한 국제적 석유 수송로인 밥 엘-만답(Bab el-Mandab) 해협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밥 엘-만답 해협은 예멘 남부와 미군 기지가 있는 지부티, 에리트리아 사이에 위치해있으면서 홍해와 아덴만, 아라비아해를 연결하기 때문에 걸프만에서 생산되는 석유나 기타 다른 수출품들이 수에즈 운하로 들어오려면 반드시 이 해협을 통과해야만 한다.
이런 지역이 예멘 남부의 석유 매장지와 함께 미국과 서방이 군사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면, 이곳을 통해 중국이나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국가들에 들어가는 석유의 수송을 차단할 수 있는 막대한 전략적 이점을 얻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멘에서의 전쟁은 소말리아 및 아프리카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실용주의자 오바마의 결단이 필요하다
오바마는 확실히 국익을 중시하는 실용주의적 미국 대통령이다. 게다가 네오콘을 비롯한 보수세력 뿐만 아니라 행정부내의 일부 관리들이 오바마를 견제와 감시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그가 ‘핵 없는 세상’을 주창했지만 아프가니스탄 추가 파병의 필요성을 역설한 직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역시 미국 대통령답다.
현재 미국은 예멘이 주권국가이기 때문에 지상군을 배치할 생각이 없어서 정보 공유, 훈련, 자금 지원에만 나설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들이 주권국가의 주권을 존중한 적이 없었던 과거의 경험을 떠 올리면 그리 신뢰할 것이 못된다.
오바마는 노벨평화상 수락 연설에서 미국 이익의 근간이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다고 분명히 선포했다. 그러면서 한시적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의 이익을 최적화하면서도 국력의 한계를 고려하겠다는 뜻이다.
이처럼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전략이 유효해 보인다. 하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매우 위험하다. 현재의 미국의 능력이 지속가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지금이라도 취할 조치는 자명하다.
오바마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답게 민중의 행복은 군대의 폭격과 무력진압으로 민중을 굴복시켜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며, 아프가니스탄과 예멘은 테러리즘의 진원지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테러리즘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바로 미국의 군사 행동이며 파키스탄, 이라크 등에서의 군사작전을 확대한 뒤부터 더욱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 그것이 미국이 다른 국가와 동등하게 어울리면서 조화로운 국제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아바타>는 우리가 두른 세계의 폐해를 진단하면서 신인류의 탄생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게 신인류의 탄생을 촉구한다는 것은 정말 지난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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