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은 가히 “역사의 해”라 불릴 만할 정도로 한국근현대사에서 획을 긋는 사건들의 주년이 계속되고 있다. 일제강점 100주년, 한국전쟁 60주년, 4·19 50주년, 5·18광주민중항쟁 30주년이 겹쳤다. 역사비평은 지난 90호의 일제강점 100년 특집에 이어, 이번 91호(2010년 여름)에서 한국전쟁 60주년 대특집을 기획했다.
남북한은 60년 전 참혹한 비극을 겪었지만 반세기가 넘는 현재까지도 적대적 공존의 형태는 변함이 없다. 더구나 최근 남북관계는 다시 긴장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남북한의 극단적 대립과 갈등은 결국 민중에게 그 고통이 전가될 따름이다. 역사비평은 전쟁 60주년을 되돌아보며 평화의 소중함을 진지하게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어느 호보다 한국전쟁 관련 글에(특집, 기획)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특집Ⅰ에서는 기존에 국가와 남성 중심에서 전쟁을 바라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여성, 디아스포라 등 소수자의 눈으로 한국전쟁과 국민 형성의 문제에 접근했다. 이를 통해 분단국가에서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정한 국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유산을 어떻게 인식하고 극복해야 하는지를 성찰해보고자 했다.
함한희는 “한국전쟁과 여성―경계에 선 여성들”을 통해 전라북도 임실군의 전쟁체험을 다루면서 전쟁이 여성들로 하여금 선택하도록 한 활동이나 의식이 어떤 것이었으며, 그들의 삶의 변화가 당시 사회문화적 상황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를 살펴보았다. 여성은 전쟁과정에서 스스로의 선택보다 집안 남성의 선택에 따라 좌와 우의 경계, 즉 비국민과 국민의 경계에 내몰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전쟁의 위기 속에서 존재의 긴장과 혼란을 경험하게 된 여성은 자신을 제압하고 있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자신들이 서 있는 경계에서 새로운 문화가 태동될 수 있도록 바꾸고자 했음을 밝혀냈다.
김귀옥은 “분단과 전쟁의 디아스포라―재일조선인 문제를 중심으로”에서 한국전쟁으로 공고해진 분단구조가 남북의 이산가족뿐만 아니라 해외 디아스포라 공동체에도 분단을 가져왔음을 밝혔다.
대만국립사범대학에 재직 중인 왕엔메이는 “한반도 화교들의 한국전쟁”에서 지금까지 한국 학계가 주목하지 못했던 한국화교들의 한국전쟁 경험을 다루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한국화교는 한국인들과 같이 피난길에 올라야 했고, 공산주의자로 몰려 공포에 떨어야 했으며, 목숨을 잃기도 했다. 중공군이 한국전쟁에 가담하면서 한국화교 역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 정부와 그들의 조국인 중화민국 정부로부터 그 어떠한 전후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외면당했다. 필자는 한국전쟁에 대한 한국화교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의 전쟁경험도 한국역사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모니까는 “‘수복지구’ 주민의 정체성 형성과정”에서 38선 분단으로 인해 38선 북쪽에 놓인 ‘수복지구’가 전시에는 유엔군의 아래에 있다가, 전후에는 남한으로 편제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이곳 ‘주민’이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요구받는 과정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어떤 인식을 갖고 ‘과거의 인민’을 국민으로 만들어갔는지, 또 이에 주민이 어떻게 대응하며 정체성을 형성해갔는지를 서술했다.
특집Ⅱ에서는 한국전쟁의 성격을 세계사적 안목에서 진단한 두 편의 글을 실었다. 김동춘은, 한국전쟁이 내전에서 시작했지만 사실상 국제전이었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전쟁의 여파가 교전 당사국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정치질서와 세계적 냉전질서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김승렬도 유럽의 정치구조가 한국전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측면이 많다고 보면서 한국전쟁의 다양한 흔적들을 추적했다.
한국전쟁을 좀 더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하기 위해서 두 편의 글을 실었다. 정병욱은 「일본인이 겪은 한국전쟁」에서 한국전쟁에 일본인이 참전함으로써 한반도에 식민지 질서가 재생되는 모습을 서술했다. 그의 글은 영화 <작은 연못>에서 일본인이 미군의 통역관으로 등장하는 모습과 겹쳐지면서 더욱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황상익은 참혹한 한국전쟁 속에서 오히려 의학기술이 발달한 아이러니를 분석했다. 황상익에 따르면 한국전쟁 때 혈관수술 등 미세수술이 발달했고, 헬리콥터를 이용한 전상군인 후송 등이 체계화되었다. 그러나 그는 전쟁을 통해 의학기술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전쟁이 끼친 피해를 생각할 때 전쟁으로 인한 의학발전이 결코 미화되거나 합리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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