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자발성과 의식성의 조화로운 통일

『2008 촛불항쟁-배반당한 개미떼들의 꿈』(박석삼,문화과학사)

2008년 촛불항쟁을 계기로 시민권력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권위주의적이고 독선적인 국정운영이 시민대중으로 하여금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시작된 항쟁은 언론장악, 한반도 대운하 건설, 공기업 민영화 등에 대한 저항으로 번져나갔지만 8월 15일을 끝으로 그 위력을 상실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정권의 공권력 앞에 제대로 힘도 못쓰고 무기력하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촛불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지방선거에 직접 참여해서 권리를 행사하고, 인터넷과 트위터 및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시민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러한 시민권력을 둘러싸고 수많은 언론과 네티즌들 그리고 식자층을 중심으로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쟁점의 핵심은 대중의 자발성이었다. 당시 한편에서는 대중의 자발성에 대한 긍정의 힘을 강조하면서 낙관적인 입장을 표명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조직되지 않은 운동으로서 구심점의 부재, 대안 부재, 자신의 이익에만 민감한 중산층 운동의 한계, 매체주의적 낙관론이나 대중에 대한 일면적 분석의 문제 등을 이유로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했었다.

그동안 촛불항쟁을 둘러싼 평가가 난무했었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연구성과가 연구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평가는 대부분 객관화를 빙자한 주관적인 감성과 편향성을 드러낸 추상물에 불과하다. 그것은 그들이 실천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면서 관심반 호기심반으로 몇 차례 현장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논리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현장에서의 직접적인 체험이 매우 부족하다. 그들은 언론과 인터넷에 의존하여 전문가주의적인 글쓰기를 했기 때문에 분석력과 생동감이 떨어진다.

그런데 이번에 2008년 촛불항쟁에 대해 풍부한 자료와 열정과 통찰력이 빛나는 본격적인 탐구서가 발간됐다. 저자는 항쟁 속의 슬로건과 실천 그리고 아고라에 올라온 수많은 글들을 분석하면서, 촛불항쟁이 신자유주의에 위협당하는 소외된 대중들의 즉자적인 항쟁이라고 규정하고, 문화절대론, 중간계급론, 촛불/다중 예찬론을 공박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아고라에 올라온 수많은 글과 여러 자료들을 섭렵하여 항쟁의 전개과정을 복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으로나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2008년 5월 초부터 8월 15일까지 100일간의 항쟁 속에서 싸워온 촛불들이 어떤 열망을 품고 있었고, 어떻게 싸웠는지, 왜 이길 수 없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청와대’와 ‘광화문’을 외치며 끝없이 걸었던 촛불들, 물대포와 소화기의 분사에도 굴하지 않고 밧줄을 당기며 그날 그곳에 있었던 촛불들에게는, 그 순간 하나하나가 소중했고, 그때 그곳에서 가졌던 그 마음과 서로에 대한 사랑이 소중할 것이기 때문에, 작은 움직임이라도 빠짐없이”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17쪽).

저자는 촛불항쟁을 국민을 배반한 정권에 대한 항쟁이고, 억압당하고 왜곡당한 반신자유주의 투쟁이며, 신자유주의 경찰독재국가에서의 미발달한 낮은 단계의 투쟁으로 규정하면서, 항쟁의 키워드로 여성과 청소년과 탈모던(네티즌과 재기발랄한 투쟁)을 분석하고 있다.

“촛불항쟁의 초기에 나타났던 문화적인 감수성에 가득 찬 투쟁, 애교 섞이고 재기발랄한 투쟁은, 공권력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의지할 곳이라곤 도덕적 우위밖에 없는 시민들이 선택하는 저항의 한 방법이다. 물대포에 ‘온수’를 외치고, 전경들에게 ‘오빠 놀아줘’를 외치는 본질은 이런 것이다”(102쪽)라면서, 현대사회의 소외된 대중의 또 다른 모습인 네티즌들이 ‘소속감없고 구속감없는’ 개인으로서 항쟁과 카페에 어떻게 결합하고 실천하였는지, 그 한계는 무엇이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특히 대중의 자발성에 대해서 “다중지성이나 떼지성이 그토록 위대하다면, 자발적인 시민들에게 투쟁을 맡기고 용산범대위는 만들 필요가 없다. 결국 뭉치지 않아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 대중의 자발성이 의식성과 어떻게 조화롭게 통일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143쪽)라고 주장하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패배한 투쟁의 위로와 예찬이 아니라 비판과 반성이다. 이길 수 없었던 투쟁과 무기력하기만 했던 운동에는 뼈아픈 반성의 과제가 남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촛불을 위대하고 영원하다고 예찬하는 ‘촛불/다중 물신론’은 참으로 해롭다”(94쪽)고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이외에도 여러 실증조사와 통계를 분석하여 촛불항쟁의 주체를 밝히고 있다. 그 외에 촛불연행자모임 속에서 활동하면서, 촛불카페들(촛불연행자모임, 애국시민촛불연대, 촛불시민연석회의, 안티엠비 등)의 여러 실천들과 고민들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촛불은 결코 다중이 아니었고, 다중이어서는 안된다는 ‘다중 물신론 비판’외에도 참다운 민주주의와 변혁운동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목차

제1부 배반당한 개미떼들의 꿈

제1장 항쟁의 전개과정

촛불 전야
제1기 촛불의 확산과 성장기
제2기 소강과 대치기
제3기 항쟁의 휴식에 이은 고립과 쇠퇴기

제2장 항쟁 속의 쟁점들

심판인가? 퇴진인가? 타도인가?
촛불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였다
순수와 비폭력론의 고찰
스티로폼 논쟁과 6월 10일의 의미
6월 25일~6월 29일 탄압과 대치의 시기와 6월 30일 미사의 의미
7월 5일의 희극들
깃발회의
배반의 날 8월 15일
항쟁의 고양과 쇠퇴-비폭력 축제론의 허구
촛불과 대책회의의 불행한 만남
운동의 질곡과 한계들

제3장 항쟁의 본질과 특수성

국민을 배반한 정권에 대한 항쟁
억압당하고 왜곡당한 반신자유주의 투쟁
신자유주의 경찰독재국가에서의 미발달한 낮은 단계의 투쟁
촛불들의 실천들
항쟁의 비교를 통해 본 특수성
촛불폐인
여성과 청소년
네티즌
탈모던
애국주의와 민족주의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지성론 고찰
자발성과 의식성
사이버 공간과 아고라-헤게모니의 장

제4장 촛불 주체론

촛불의 슬로건과 실천들
대선과 총선 자료로 본 촛불
통계자료로 본 촛불
민중인가? 다중인가?
실증조사로 본 청소년 연구의 함의

제5장 맺는 말

제2부 촛불 속에서

들어가며 / 촛불연행자모임의 출발 / 민주주의에 대하여 / 탈권위와 개방 / 저항의 원칙 / 인권팀장 사건 / 정식재판청구운동 / 애국촛불과 민민국 / 저항들 / 투쟁과 학습 / 촛불전담변호사 모시기 운동, 연행자․구속자 챙기기 사업, 연행자 콜전화의 운영 / 촛불연행자후원회 / 촛불시민연석회의 / 노무현 서거를 둘러싼 갈등 / DVD 매체사업 / D인터넷신문 / 제2차 촛불연행자대회-쌍방향 집회 / 촛불 실천의 날 / 장엄한 끝장투쟁-노역장 자원과 구출 투쟁 / 나가며


제3부 부 록

보론: 다중 물신론 비판
이택광과 조정환 논쟁 / 제국론의 허구 / 네트워크 투쟁 / 미네르바의 촛불 / 동일성과 특이성 그리고 공통성 / 공적인 것과 공통적인 것 / 민중, 대중, 다중 그리고 엑소더스 / 공통으로 생산한 비물질적 형태의 부 / 절대적 민주주의 / 관념과 몽상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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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성 , 촛불항쟁 , 시민권력 , 다중 물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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