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단턴은 1939년 뉴욕에서 태어나 1984년에 이 책을 쓸 당시엔 프린스턴 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었다. 최근 2008년엔 하버드대 도서관장을 맡았다. 작고 값어치 없어 보이는 기록으로 역사와 문화를 재해석하는 미시문화사학자(微示文化史學者)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한글판은 조한욱 교수의 손을 빌어 1996년에 나왔다.
정전인 김부식의 삼국사기보다 일연의 삼국유사가 훗날 우리에게 더 많은 상상력과 해석의 여지를 주는 것처럼 단턴은 줄곧 작은 것에서 출발해 인문학을 재편성하고 있다.
세밀하게 읽기, 작은 것에서 읽기
번역자 조한욱도 탄던 같은 사람이다. 나는 이 사람의 대학원생 시절 논문이 맘에 들어 조한욱 전독(全讀)주의자가 됐다. 조한욱은 서강대 사학과 대학원에서 ‘막스 베버의 가치 개념’으로 1981년 석사를 받은 뒤 미 텍사스주립대에서 ‘미슐레의 비코를 위하여 : 미슐레가 불역한 비코의 신과학에 대한 해석’으로 1991년 박사를 받고 지금까지 한국교원대에서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고양이 대학살》《문화로 본 새로운 역사》《포르노그라피의 발명》《프랑스혁명의 가족 로망스》등을 옮겼으며 사상사, 문화사, 역사이론에 관한 글을 여러 편 썼다. 2000년에 쓴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책세상, 2000.7)는 거의 완결판이라 할 만큼 매력적이다.
이 책에 나오는 6편의 논문은 18세기 프랑스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서로 완전히 동떨어진 주제다. 언뜻 보면 역사적으로 아무 값어치도 없어 보이는 것들이다. 농민들의 민담, 파리의 한 인쇄소의 고양이 죽이기, 몽펠리에 주민들의 도시 설명서, 한 경찰관의 조서, 백과전서의 서문, 한 시민의 ‘서적 주문서’라는 6개 논문은 그러나 조금만 들어가 보면 서로 연결돼 있다.
이렇게 흩어진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춘 뒤 보이는 18세기 프랑스는 어떤 정전도 줄 수 없는 전혀 새로운 감동을 준다.
마더 구스 이야기의 의미
마더 구스의 노래는 300년 전 마더 구스라는 영국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들려주던 프랑스 이야기다.
프랑스 왕국의 상황은 지역마다 대단히 달라서 프랑스는 혁명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19세기 들어서조차 통일된 국가라기보다는 각 지역을 기워놓은 누더기로 남아 있었다. 근세 초 프랑스는 대단히 안정적이었다. 프랑스 농민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토지를 소유하지 못해 농업 노동자로 바뀐 영국의 자작농보다는 덜 자유로웠지만 봉건영주의 초야권 행사가 있던 엘베 강 동쪽의 독일에서 노예로 전락한 농노보다는 더 자유로웠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에게 경제적 독립을 얻기에 충분한 토지를 거부하고 그들이 생산한 어떤 잉여물이라도 짜내가는 영주제도로부터 도피할 수 없었다. 남자들은 로마시대에 쓰던 것과 같은 쟁기를 들고 여기저기 퍼져 있는 좁고 긴 농지의 흙을 갈고 공동 목초지를 위해 충분한 그루터기를 남기기 위해 원시적인 낫으로 곡식을 베며 새벽부터 땅거미가 질 때까지 일해야 했다. 여자들은 25-27세에 늦게 결혼했고 5-6명의 아이밖에 낳지 않았는데 그 중 2-3명만 살아남아 성년에 달했다. 대다수 사람들은 만성적 영양실조에서 살았다.
300년 전 프랑스의 맨 얼굴
1347년 흑사병이 최초로 휩쓴 시점부터 1730년대 인구와 생산성이 비약으로 늘기 전가지 약 4세기 동안 프랑스는 엄격한 봉건제도와 맬서스적 빈곤의 덫에 걸려 있었다.
노르망디의 클훼레에서는 17세기에 1000명의 아기 중 236명이 첫 번째 생일을 맞기 전에 죽었다. 최소한 양친 중 한 명이 죽기 이전에 성년에 도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성인 부부조차 일찍 죽었기 때문에 생식력이 끝날 때까지 살았던 부부도 거의 없었다. 이혼이 아닌 죽음 때문에 결혼은 평균 15년 정도만 지속됐다. 5명의 남편 중 한 명은 아내와 사별하고 재혼했다. 따라서 계모는 모든 곳에서 급증했다. 과부의 재혼율은 열 명 중 하나 꼴이었고 따라서 계부보다는 계모가 많았다. 이런 시회적 토양이 유럽 대륙 곳곳에서 ‘신데렐라’ 이야기를 낳았다.
‘장화신은 고양이’ ‘엄지소년’ ‘신데렐라’ ‘어리석은 소원’은 폐로의 마더 구스 이야기에서 가장 잘 알려진 4개다. ‘장화 신은 고양이’에서 가난한 방앗간 주인이 죽으면서 방앗간은 장남에게, 당나귀는 차남에게, 그리고 막내에게는 단지 고양이 한 마리를 물려준다.
[출처: ‘고양이 대학살’ 등으로 살펴본 민중의식 - 2003년 정리|작성자 큐레이터심] |
상상력이 아닌 현실이 만든 동화
‘엄지 소년’은 프랑스판의 ‘헨젤과 그레텔’이다. 이것은 페로가 희석한 판본조차 멜서스적 빈곤을 잘 보여준다. “나무꾼과 부인이 살았는데 그들에게는 7명의 자식이 있었고 모두 아들이었다. 그들은 대단히 가난했고 7명의 자식들은 하나도 자신을 돌볼 만큼 크지 않아서 큰 골칫거리였다. 흉년이 왔고 기근이 심해 불쌍한 부부는 아이들을 내다버리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을 숲속에 버림으로써 엄지 소년의 부모는 17세기와 18세기 수차례 농민들을 억누르던 문제, 인구 과잉의 재앙기에 살아남기 위해 아이를 버리는 불가피한 선택을 했다. 그래서 프랑스 민담 곳곳에 버려진 아이들의 성장기를 담은 이야기가 뒤엉켜 있다.
버려진 엄지소년들은 경찰력마저 형편없었던 당시 프랑스의 사회상 때문에 여행길 곳곳에서 위험에 직면한다. 엄지 소년이나 헨젤과 그레텔이 깊은 숲속의 신비로운 집의 문을 두드릴 때 그들의 등 뒤에서 짖어대는 늑대는 ‘환상이 아니라 사실’이다.
농민들은 굳이 ‘빨강모자 소녀’(마녀)의 도움 없이도 실현의 삶이 충분히 더 잔인하다는 것을 알았다. 잔인성은 인도에서 아일랜드까지, 아프리카에서 알래스카까지 사회사뿐만 아니라 민담에서 약간씩의 변형이 가해지긴 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나타난다.
18세기 영국에서 자장가와 각운을 맞춘 시구와 음란한 노래들을 별 관련성이 없이 모아놓고 ‘마더 구스 이야기’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 17세기 프랑스에서 페로가 ‘엄마 거위의 이야기’의 재료로 삼은 이야기들과 겉으로 보기엔 별 유사성이 없다. 그러나 영국의 마더 구스 이야기는 나름대로 전적으로 동시대 프랑스의 이야기다.
해학과 풍자와 혁명 사이
‘카프리콘’은 그림 형제의 ‘황금 거위’의 주제를 차용해 그것을 마을의 부유하고 세도 높은 사람(영주)을 풍자하는 해학으로 변형시킨다. 가난한 대장장이가 마을의 신부에 의해 오쟁이를 지고는 지역의 영주에게 혹사당한다. 신부가 부추겨서 영주는 대장장이에게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토록 명령하고 그 사이에 신부는 대장장이의 아내와 즐긴다.
대장장이는 요정의 도움으로 영주가 시킨 엄청난 양의 일을 두 번이나 손쉽게 완수한다. 세 번째로 영주는 ‘카프리콘’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지만 대장장이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다. 요정은 그에게 자신의 다락방에 올라가 바닥에 구멍을 뚫고 그가 무엇을 보건 “‘달라붙어라’고 주문 걸어라”고 지시한다. 먼저 그는 잠옷을 이빨로 물고 음부에서 벼룩을 잡는 하녀를 본다. “달라붙어라”라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그 자세로 고체가 됐다.
마침 신부가 용변을 볼 수 있도록 여주인이 요강을 가져오라 한다. 벗은 모습을 감추려 뒤로 걸어간 소녀는 여주인에게 요강을 주고 그 둘이서 신부를 위하여 그것을 들고 있을 때 “달라붙어라” 소리에 셋이 함께 붙게 만든다. 마을 사람 전체를 달라붙게 만든다. 영주는 그에게 돈을 지불하고서야 모든 사람들이 떨어져 자유롭게 된다.
자코뱅 당원이라면 화약 냄새가 풍기는 방식으로 이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특권층을 비꼬지만 약 올리거나 장난을 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주인공은 그들에게 모욕을 준 것으로 만족한다. 그는 혁명을 꿈꾸지 않는다. 지역의 권위자들을 조롱한 뒤 그는 제자리로 되돌려 놓고 자신이 아무리 불행해도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사회 비판에 근접한 다른 이야기에서도 주인공의 저항이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백선 걸린 장’이 왕과 두 거만한 공주에게 승리를 거두었을 때도 그는 그들에게 삶은 감자와 검은 빵이라는 농부의 식사를 먹게 한다. 그리고 공주를 얻은 후에야 왕위의 후계자로서 정당한 자리를 찾는다. 라 라메는 공주를 웃기려는 시합에서 일종의 벼룩 곡예를 이용해 공주를 얻는다. 거지를 사위로 맞아들인다는 생각을 견디지 못한 왕은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고 공주를 한 궁신과 결혼시키려고 한다. 마침내 공주가 두 청혼자와 같이 침대에 들어가 그녀가 원하는 사람을 선택하기로 결정된다. 라 라메는 경쟁자의 항문에 벼룩을 파견해 두 번째 시합도 이긴다.
“상스러움”은 18세기 난롯가에서 배가 아프도록 웃게 만들었을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사회질서를 전도시킬 정도로 용기있는 결심을 농민들의 뱃속에 넣어주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상스러움과 혁명 사이엔 상당한 거리가 놓여 있었다.
‘고양이 대학살’에 나타난 민중의식
‘고양이 대학살’은 1730년대 파리 생세브랑 가의 한 인쇄소에서 당시 인쇄소의 견습공들이 일으킨 사건을 노동자 니콜라 콩타가 기록한 것이다.
그 인쇄소에서는 제롬과 레베이예라는 견습공들이 살았는데 그들은 춥고 더러운 방에서 살면서 고양이도 싫어하는 찌꺼기로 연명했고, 근무시간에는 상급자와 주인에게 갖은 모욕과 핍박을 받았다. 반면 인쇄소 주인의 부인이 기르던 ‘그리스’라는 회색 고양이는 구운 새고기를 먹는 등 풍족했다.
고양이들은 밤새 견습공들의 숙소 주위에 번성하여 밤새도록 울어대어 피로에 지친 견습공들의 수면을 방해했다. 이에 흉내내기에 능숙한 레베이예는 주인과 부인의 침실 근처에서 밤새도록 울어대 주인에게 고양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아내기에 성공한다.
그들은 여주인의 고양이 그리스부터 시작해 눈에 띄는 모든 고양이를 잡아서 반쯤 죽인 채로 마당에 던져 놓고 모의재판을 치른 후 교수형에 처했다. 사건 후 레베이예는 최소한 스무 번에 걸쳐서 당시의 상황을 무언극으로 재연했고, 모든 노동자들이 기뻐하였다.